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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27, 2026

코인, 정치적 내러티브를 잃다 [헬로, 크립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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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 샌드마크 에디터·우석대 겸임교수

지난 15일(현지시각) 미국 상원에서 디지털자산 시장구조 법안인 ‘클래리티법’이 좌초했다. 절차 표결 결과는 찬성 49표, 반대 50표. 소수당의 필리버스터를 뚫고 본격 심의로 넘어가는 데 필요한 60표에 크게 못 미쳤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밀어붙이던 암호화폐(크립토) 규제 정비에 급제동이 걸린 셈이다. 하원이 이미 중간선거 전 휴회에 들어간 터라 연내 처리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안이 통과됐다면 미국 코인 업계는 지금보다 우호적이고 명확한 규제 틀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에 가로막혔을까. 하나는 트럼프 일가의 이해충돌 문제였다. 대통령이 지난 한해 밈코인 등 코인 사업으로 14억달러 넘는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민주당은 반대 논리를 펼치기가 매우 수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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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 시장과 업계 내에서 훨씬 크게 벌어진 싸움은 ‘스테이블코인 이자 지급 논쟁’이었다. 지난해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코인 보유자에게 직접 이자를 주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새 법안인 클래리티법에는 거래소 같은 제3자를 통한 우회 보상은 허용될 여지가 남았다. 사실상 이자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문제를 놓고 월가 은행들이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이자성 보상이 허용되면 은행 예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논리였다. 여기에 월스트리트저널까지 사설과 칼럼을 동원해 은행 편에 서면서, ‘월가의 신문’이라는 이름값을 새삼 확인시켰다.

코인 업계가 선거철마다 몇억달러씩 정치자금을 뿌렸다는데도 이리됐으니 역시나 월가의 영향력이 대통령, 다수 여당보다 센 건가 싶기도 하지만, 정작 표결 국면에서 결정타를 날린 건 월가가 아니었다. 미국 전역 5천여개 지역 은행을 대표하는 독립지역은행협회(ICBA)가 공화당 상원의원들을 흔들었다. 그들의 논리는 다르지 않았지만 서사가 달랐다. ①스테이블코인 보상이 허용되면 지역 예금이 1조3천억달러 빠져나가고 지역 대출이 8500억달러 줄어든다, ②그러면 농민과 목축업자, 중소기업의 신용 접근이 무너진다, ③지역 대출로 먹고사는 지역은행이 쓰러지면 그 뒤의 약자들이 다친다는 주장이었다. 약자를 앞세운 호소에 공화당에서 이탈표가 나오면서 표결은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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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비트코인이 18년 전 서브프라임 위기의 폐허 위에 등장한 뒤, 크립토가 오랫동안 내세워온 대표적 명분은 ‘금융소외 구제’였다. 은행 계좌가 없고 금융에 접근할 수단이 없는 14억 금융소외층(unbanked·underbanked)에 새로운 수단을 열어준다는 서사는 블록체인 기술과 크립토의 존재 이유를 숭고하게 만들었다. 나라를 막론하고 주류 금융에서 밀려난 이들을 구제한다고 하니 폭넓게 정당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표결은 반대였다. 크립토가 “우리를 소외시키지 말라”는 시골 미국의 목소리,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앞세운 약자 서사에 밀린 것이다.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2024년 초 미국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 이후 크립토는 빠르게 주류 경제에 편입되고 있다. 블랙록·피델리티의 비트코인 펀드에 수백억달러가 쌓였고, 기관투자자 비중이 계속 늘었다. 지금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것도 결국 주류 안의 주도권 다툼에 가깝다. 스테이블코인 보유와 거래에 보상을 허용하느냐 막느냐, 결국 어느 쪽 금융업이 예금과 결제 흐름을 가져갈 것이냐의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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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표결은 크립토가 오래 기대왔던 대안적 성격이 사실상 사라졌음을 명확히 드러낸 풍경이었다. 금융소외 구제라는 창업 서사는 이제 제 몫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크립토가 앞으로 대중과 정치권에 무엇을 호소할 수 있을지, 새 내러티브를 찾는 일은 지금부터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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