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권 가격이 월급 절반”인 나라에서도 패배하지 않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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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데이먼 갤것(63)이 첫 방한했다. 소설 세편으로 2003년부터 세차례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끝에 2021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국내 유일하게 번역 소개된 ‘약속’이 당시 수상작이다. 부커상에서 호명된 한국 소설(국제 부문)이 크게 역주행하는 한국에선 낯설 법한 문학 풍경을 그가 들려줬다.
“남아공에선 문학이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부커상 수상 때 정부 차원의 어떤 언급도 없었어요. 의도가 아니라 문학에 너무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남아공의 현재 실업률은 30%를 넘는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갤것이 말을 이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였다.
“30살 이하 실업률은 50~60% 육박할 겁니다. 저소득 청년은 책 한권에 월급 절반을 써야 할 판이에요. 침체된 독서 문화에 실업률도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갤것은 “도서 관련 세제·도서관 지원 등 출판 활성화 정책을 취하지 않는 정부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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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갤것의 책은 “대부분 중산층 백인 중년 여성들이 사본다.” 겹겹의 역설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정치·사회성 두터운 갤것의 작품, 개중 특히 ‘약속’ 안에서 백인은 풍자와 고발의 대상이다. 소설은 부동산 일부를 흑인 하녀에게 물려주라는 레이철의 유언을 그의 남편과 자식들이 지키지 않은 채 흐르는, 남아공 백인 스와트 가문의 근 40년을 좇는다. 그사이 가족 4명이 죽으면서 치르는 4차례의 장례식은 시대 변화상을 비춰내지만 ‘약속’은 엔간히 지켜지지 않는다. 갤것의 말마따나 “주려던 땅이래 봐야 황무지고 집도 망가진 것”이다. 개인(과 사회·국가)의 ‘약속’은 장례를 거듭하며 멸렬해 간다. 갤것은 “많은 백인들이 작품과 제게 분노를 표했었다”고 말했다.

갤것의 조부는 상급심의 판사였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 격리 정책) 시대의 수혜자이자 가해자로서 다수의 백인들이 1994년 정책 폐지 이후로도 “기존의 특혜나 권력을 포기하지 않았”던 건 물론 “양심의 가책도 품지 않고 있다”고 갤것은 본다. 나아가 작가는 “어떤 선행도 사익에서 비롯하는 경향”에 주목해 왔다. 이처럼 자신이 속한 주류 세계에 대한 집요하고 냉철한 ‘직면’을 과업 삼으면서 미래를 전망해 보려 하지만, 이제 청년 세대는 책을 보기 어렵거나 보지 않는 형국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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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먼 갤것은 16일까지 열리는 ‘2026 서울국제작가축제’(한국문학번역원 주최) 참가차 방한했다. 숱한 문학 행사에 불려 다닌 그로서도 역대 “가장 멀리 온 대담 행사”다. 갤것은 남아공 작가로서 노벨 문학상까지 거머쥔 네이딘 고디머(나딘 고디머, 부커상 1974년, 노벨상 1991년), 존 맥스웰 쿠체(존 맥스웰 쿳시, 1983·1999년 두차례, 2003년)에 이어 세번째로 부커상을 받았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채석장’(The Quarry, 1995), 2003년, 2010년 부커상 최종 후보였던 ‘굿 닥터’(The Good Doctor)와 ‘낯선 방에서’(In a Strange Room) 등이 대표작이다.

첫 소설은 고등학생 때 썼다. 이를 제출받은 영어 교사가 책으로 출간시켰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절정이던 당시, 조부와 언쟁하긴 했어도 정치의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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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변화의 계기를 묻는 기자에게 “대학생 때 정부 긴급조치에 맞서 시위하다 구속되기도, 곤봉으로 얻어맞기도 했다. 그 전까지 특혜적으로 분리된 환경에서 자랐고, 소설도 아름답고 추상적인 예술로만 생각했다”며 “역사·정치적 글을 25살 무렵 처음 썼다”고 말했다.
갤것은 유산을 받을 권리(?)가 있는 흑인 하녀 살로메에게 목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 철저히 대상화한다. “논란과 비난이 컸던 부분”이다. 갤것은 이에 “지금도 남아공엔 살로메와 같이 완전히 묵살된 채 살아가는 수백만 여성을 볼 수 있다”며 ‘풍자’가 아닌 “현실 그대로”로서 “그들의 삶에 대한 무지를 독자들이 불편하게 느끼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는 스스로 “남아공에서 백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매우 복잡한 경험”이라며 “역사적 범죄에 우리가 얼마만큼 공조했는지, 우리 과거에 더 큰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로 나아간다.
“백인으로서 역사적 죄책감을 덜 수 없었던 게 큰 슬픔으로 다가오고. 1994년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간 정권이 이뤄낸 변화가 극히 적다는 점도 너무 안타깝습니다.”
갤것은 법조인이 되라던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작가 말고는 되고 싶은 것이 없어 작가가 되었다”고 말한다. “수년간 작가로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척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며 “주변의 많은 동료 작가들이 아직도 굉장히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그에게 부커상 첫 최종 후보와 최종 수상 중 더 기쁜 때를 물었다. “운명”처럼 작가가 되었으나 제 길을 끊임없이 회의했음을 고백하는 듯 답변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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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후보에 처음 올랐던 순간요. 무명의 투명 인간이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고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더 중요하고 의미가 깊었어요.”
그런들 남아공에서 ‘문학’이 생존할 수 있겠는가. 작가가 말했다.
“어린 시절 자라면서는 스스로를 번역해 세계에 설명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지금은 아닙니다. 세계가 남아공으로 와야 합니다. 어느 나라 못지않게 남아공은 중요한 곳이에요. 유럽이 세계 중심이던 시대는 이미 지났고요, 그런 분위기가 한국에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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