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ily Newsstand · Free, Always
Saturday, October 3, 2026

숲속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인생샷 남겼네…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2]

Translate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일본의 오쿠치치부 산에서 촬영한 별뉘 혹은 코모레비. 신비로운 켈트풍 음악이 들릴 것만 같은 풍경이다. [Σ64/위키피디아]

일본의 오쿠치치부 산에서 촬영한 별뉘 혹은 코모레비. 신비로운 켈트풍 음악이 들릴 것만 같은 풍경이다. [Σ64/위키피디아]

명사. 1. (한국) 볕뉘 2. (일본) 코모레비木漏れ日 3. (미국) 대플드 라이트(dappled light) 4. (과학기술) 틴들 효과(Tyndall effect) 【예문】숲속에서 마주친 별뉘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길을 잃었구나.

볕뉘다.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볕, 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울창한 나뭇잎 사이, 좁은 창틈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상황을 의미한다. 본래 뜻에서 확장된 의미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보살핌이나 보호를 뜻하기도 한다.

더 엄밀히 말하면 햇볕은 해가 내리쬐는 뜨거운 기운을 뜻하니, 해가 내쏘는 광선 햇살이 더 맥락상 어울리지만 사전 이름만 빌려 쓴 주제에 표준국어대사전에 감히 저항할 수 없는 노릇이다. 넘어가자.

다만 볕뉘는 다소 범용적인 표현이라, 숲속에서 켜켜이 층진 나뭇잎 사이로 커튼처럼 드리운 햇빛만을 정확하게 지칭하지는 않는다. 완벽히 부합하는 단어는 애석하게도 우리말이 아닌 일본어 사전에 존재한다. 코모레비(木漏れ日·こもれび)다. 나무(木), 스며들다(漏れる), 햇빛(日)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 이 단어의 뜻은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¹이다.

일본국어대사전에서는 코모레비의 최초 용례로 시인² 와카야마 보쿠스이(若山牧水, 1885~1928)의 1911년도 시집 ‘노상(路上)’ 속 문구를 소개한다.

“삼나무 숲 사이 상념에 잠긴 내 얼굴 앞에, 볕뉘의 그늘 속에 앉아 있는 개 한 마리(杉の木の間ものおもふわが顔のまへ木漏日(コモレビ)のかげに坐りたる犬)”

1928년 촬영한 와카야마 보쿠스이. 흑백 사진 아니었으면 영화 ‘똥파리’ 감독 양익준으로 헷갈릴 뻔했다. [www.bokusui.jp 공공 저작물]

1928년 촬영한 와카야마 보쿠스이. 흑백 사진 아니었으면 영화 ‘똥파리’ 감독 양익준으로 헷갈릴 뻔했다. [www.bokusui.jp 공공 저작물]

햇볕의 따스함이야 곧잘 느끼는 일상의 감각이지만, 빛의 커튼은 예사롭지 않다. 마치 헤드라이트 불빛처럼 실체감을 갖고 내리꽂히는 햇살의 존재감이라니, 게임에서 희귀 아이템이 등장했을 때 알려주는 빛기둥과 똑 닮았다.

우리가 빛의 통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틴들 효과 덕분이다. 왠지 상쾌한 이름은 아일랜드의 물리학자 존 틴들(John Tyndall, 1820~1893)에 빚진 것이다.

가시광선의 파장과 비슷한 크기(40~900nm)의 미립자가 대기 혹은 액체 속에 분산돼 있을 때 빛을 비추면 산란, 빛의 통로처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숲속에서 마주친 코모레비의 경우, 공기 중의 먼지 등 미세 입자에 광선이 사방으로 산란하며 광선의 궤적이 눈에 보이게 된다.³

환상적인 코모레비도 따지고 보면 먼지 때문이라니 산통을 깬다. 문학청년의 감도 높은 감수성을 깨트리는 일은 언제나 짜릿하다.

¹ 원문 樹木の枝葉の間から漏れてくる日射し。(나무의 가지와 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일본국어대사전 정선판 인용.    │    ² 일본의 전통 정형시인 단가(短歌)를 짓는 시인을 가인(歌人)으로 부른다. 단가를 엮은 시집은 가집(歌集)이라고 한다.   │    ³ 안개·연무·수증기의 경우 입자의 크기가 훨씬 크기 때문에(5~100μm) 틴들 효과보다는 미 산란(Mie scattering)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본문에서는 거기까지 구분하지는 않는다. 예상했겠지만 독일 물리학자 구스타프 미에(Gustav Mie, 1868~1957)가 붙인 이름이다. 과학자들 어지간히 자기 이름 붙이는 거 좋아한다.

¹ 원문 樹木の枝葉の間から漏れてくる日射し。(나무의 가지와 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일본국어대사전 정선판 인용. │ ² 일본의 전통 정형시인 단가(短歌)를 짓는 시인을 가인(歌人)으로 부른다. 단가를 엮은 시집은 가집(歌集)이라고 한다. │ ³ 안개·연무·수증기의 경우 입자의 크기가 훨씬 크기 때문에(5~100μm) 틴들 효과보다는 미 산란(Mie scattering)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본문에서는 거기까지 구분하지는 않는다. 예상했겠지만 독일 물리학자 구스타프 미에(Gustav Mie, 1868~1957)가 붙인 이름이다. 과학자들 어지간히 자기 이름 붙이는 거 좋아한다.

서인호, 2002, Basic 고교생을 위한 화학 용어사전(신원문화사).

서인호, 2002, Basic 고교생을 위한 화학 용어사전(신원문화사).

용액(왼쪽)은 빛이 그대로 투과하지만 콜로이드 상태(오른쪽)에서는 빛이 이동하는 경로가 보인다. [ZuzanaBrabcova/위키피디아]

용액(왼쪽)은 빛이 그대로 투과하지만 콜로이드 상태(오른쪽)에서는 빛이 이동하는 경로가 보인다. [ZuzanaBrabcova/위키피디아]

영미권에서는 볕뉘를 대플드 라이트(dappled light)라고 부른다. 얼룩덜룩한, 얼룩진 빛이라는 뜻으로,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빛보다는, 이로 인해 지표면에 밝은 원형과 어두운 그림자가 불규칙하게 뒤섞인 채 나타나는 빛의 패턴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대플드 라이트의 아름답고 몽환적인 패턴은 윤곽이 불분명한, 몽글몽글한 원형의 빛무리가 여럿 겹친 덕분이다. 근데 왜 하필 원형일까. 벌레가 나뭇잎을 정성스레 갉아 먹었다고 치기엔 모양이 비슷비슷하다. 나뭇잎에 겹친 모양 때문이라고 하기에도 다소 억지스럽다. 이유는 태양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됐기 때문이다.

별뉘와 코모레비가 햇볕이 드리우는 ‘과정’이라면 대플드 라이트는 그로 인해 생겨난 ‘결과’에 가깝다. [Unspalsh/Sobolev Maksim]

별뉘와 코모레비가 햇볕이 드리우는 ‘과정’이라면 대플드 라이트는 그로 인해 생겨난 ‘결과’에 가깝다. [Unspalsh/Sobolev Maksim]

[DrBob/위키피디아]

일단 핀홀 효과pinhole effect부터 알아야 진도가 나간다. 이는 바늘로 뚫은 것처럼 아주 작은 구멍을 통과한 빛이 - 렌즈 없이도 - 반대편 면에 뒤집힌 상을 맺는 광학 현상이다. 초등학교 혹은 국민학교 시절 한 번쯤 해봤을 바늘구멍 카메라가 핀홀 효과를 이용한 과학 실험이다.

핀홀 효과의 정확한 원리를 규명한 것은 부와이흐 왕조(현재 이라크 지역) 바스라 출신의 수학자·천문학자·물리학자이자 ‘광학의 아버지’ 이븐 알하이삼(ابن الهيثم Ibn al-Haytham, 965~1040)의 공로이지만 , 현상 자체는 훨씬 오래전부터 관찰됐다. 기원전 5세기 묵자(墨子·기원전 470~391) 에 이어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 도 일상에서 관찰한 핀홀 현상에 대한 기록을 남겼을 정도다.

“왜 태양 빛이 사각형 구멍을 통과할 때 - 예컨대 바구니 구멍처럼 - 사각형 모양이 아니라 원형을 만들어내는가?” - 아리스토텔레스, 문제들(Problemata) 15권 6절⁴

방금 기초 과학 수업에 한 번 끌려갔다가 온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 태양의 둥근 모양이 투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뭇잎이 겹치고 겹치며 만들어낸 수많은 핀홀들이 태양의 모습을 투사한다.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 덕분에 태양을 닮은 얼룩들은 - 파도 위의 윤슬 마냥 - 시시각각 움직이고 사라지고 나타나고 반짝인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대체로 아름답다.

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Problemata(문제들)’ 15권에 수록됐으나, 해당 문헌 자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단독 집필이 아닌 후대 소요학파가 편찬한 것으로, 핀홀 효과에 관한 부분 역시 아리스토텔레스가 활동했던 기원전 4세기와 무관한 이후 기록일 가능성이 있다. E. S. Forster가 번역한 아리스토텔레스 전집(1927)과 W. S. Hett가 번역한 문제들(1936–37) 두 서적의 번역을 교차해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그리스어 원문의 뉘앙스를 살리려면 사각형 모양(rectangular)이 아니라 직선으로 각진 모양(rectilinear)으로 번역해야 하나, 가독성과 의미 전달을 고려해 사각형으로 번역했다.

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Problemata(문제들)’ 15권에 수록됐으나, 해당 문헌 자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단독 집필이 아닌 후대 소요학파가 편찬한 것으로, 핀홀 효과에 관한 부분 역시 아리스토텔레스가 활동했던 기원전 4세기와 무관한 이후 기록일 가능성이 있다. E. S. Forster가 번역한 아리스토텔레스 전집(1927)과 W. S. Hett가 번역한 문제들(1936–37) 두 서적의 번역을 교차해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그리스어 원문의 뉘앙스를 살리려면 사각형 모양(rectangular)이 아니라 직선으로 각진 모양(rectilinear)으로 번역해야 하나, 가독성과 의미 전달을 고려해 사각형으로 번역했다.

핀홀 효과. 어린 시절 바늘구멍 카메라를 떠올려 보자. [DrBob/위키피디아]

핀홀 효과. 어린 시절 바늘구멍 카메라를 떠올려 보자. [DrBob/위키피디아]

와카야마 보쿠스이의 문장을 생성형 AI로 재구성했더니 ‘진격의 보쿠스이’가 튀어나왔다. 프롬프트가 문제이겠지만, 일단 AI를 탓하고 싶다. [그록]

와카야마 보쿠스이의 문장을 생성형 AI로 재구성했더니 ‘진격의 보쿠스이’가 튀어나왔다. 프롬프트가 문제이겠지만, 일단 AI를 탓하고 싶다. [그록]

다음 편 예고 : 건전지 오래 놔두면 나오는 흰색 가루 ‘그거’

[그거 사전]의 두 번째 책 [그거 사전 2]가 출간됐습니다. 1권 출간 이후 시즌 2를 연재하며 독자 여러분의 과분한 애정과 관심을 받은 덕분입니다. 연재분을 포함해 아직 소개하지 못한 62개의 ‘그거’를 담았습니다. 더 집요하게 더 유쾌하게 사물들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View the original on 매일경제 →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