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마신 ‘맥주 한 캔’의 배신…33년 간 추적했더니 확 늘어난 ‘뜻밖의 질병’
맥주 이미지. 프리픽
“한잔은 괜찮겠지.” 퇴근 후 마시는 맥주 한 캔, 저녁 식사와 곁들이는 와인 한 잔 정도는 과음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한 잔’도 암 위험이라는 측면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국에서 30년 넘게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 알코올과 관련된 암 사망자가 1990년 약 1만1361명에서 2023년 2만3126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특히 간암뿐 아니라 대장·직장암, 유방암, 식도암 등 여러 암에서 알코올의 영향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최근 CNN 보도에 따르면, 이번 연구는 미국 마이애미대 밀러 의과대학 산하 실베스터 종합암센터 연구진이 수행했다. 친메이 자니 박사 등이 참여한 연구로, 지난 2일 의학저널 ‘랜싯 지역보건-아메리카스’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세계질병부담연구(GBD) 자료를 이용해 1990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의 알코올 기인 암 사망 추이를 분석했다. 연령과 성별, 암 종류, 지역별로 나눠 알코올이 암 사망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도 살폈다.
결과는 뚜렷했다. 알코올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암 사망자는 1990년 1만1361명에서 2023년 2만3126명으로 103% 증가했다. 특히 55세 이상에서 알코올 관련 암 사망률이 20~54세보다 훨씬 높았고, 남성이 여성보다 높았다. 하지만 연구진은 알코올과 관련된 암 사망 부담이 고령층이나 남성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암 종류와 연령대, 성별에서 알코올이 차지하는 사망 부담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간암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니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 가장 놀라운 결과로 “알코올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암의 범위가 매우 넓다는 것”을 꼽았다. 일반적으로 술을 많이 마시면 간암 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연구진은 대장·직장암, 식도암, 유방암, 췌장암, 전립선암 등에서도 알코올의 영향을 확인했다.
연령과 성별에 따라 양상도 달랐다. 55세 이상 남성에서는 간암의 알코올 기인 사망률이 가장 높았고 식도암, 대장·직장암이 뒤를 이었다. 같은 연령대 여성에서는 유방암이 가장 높았고 간암과 대장·직장암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 20~54세로 범위를 좁히면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남성에서는 대장·직장암이 알코올 기인 암 사망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여성에서는 유방암이 가장 많았다. 특히 이 연령대 남성의 대장·직장암은 간암을 앞질렀다.
그렇다면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셔야 문제가 되는 것일까. 여기서 연구진이 강조한 대목이 ‘하루 한 잔’이다. 자니 박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매일 표준 1잔 정도의 음주만으로도 암 위험을 높이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말하는 표준 1잔은 순수 알코올 약 14g에 해당한다. 일반적인 맥주 355㎖(알코올 도수 약 5%), 와인 148㎖(약 12%), 알코올 도수 40% 증류주 44㎖ 정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알코올을 국제암연구소(IARC)가 분류한 1군 발암물질로 설명하며, 구강암·인두암·후두암·식도암·간암·대장·직장암·여성 유방암 등 최소 7가지 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중요한 것은 술의 종류가 아니다. 맥주, 와인, 소주 같은 증류주를 가리지 않고 알코올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술이 암을 일으키는 과정에는 여러 기전이 관여한다. 알코올에 들어 있는 에탄올은 몸에서 분해되는 과정에서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물질로 바뀐다. 아세트알데히드는 DNA를 손상시킬 수 있는 발암물질이다. 이 밖에도 산화 스트레스, 호르몬 변화, 엽산 대사 변화, 장내 미생물 변화 등이 암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여성 유방암의 경우 알코올이 에스트로겐 등 호르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위험을 높이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도 적은 양의 음주에서 암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NCI에 따르면 일주일에 한 잔 미만을 마시는 여성과 비교해 하루 한 잔을 마시는 여성은 알코올 관련 암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유방암의 경우 음주량이 늘수록 위험도 함께 높아진다. NCI는 2019년 미국에서 새로 발생한 암 가운데 약 5%, 암 사망 가운데 약 4%가 알코올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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