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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11, 2026

인생 후반전, 가장 아름다운 동행 [6411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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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니어클럽(관장 임선배) 소방안전지킴이활동 현장에서 어르신들의 일하는 모습을 필자(가운데)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고 있다. 필자 제공
보령시니어클럽(관장 임선배) 소방안전지킴이활동 현장에서 어르신들의 일하는 모습을 필자(가운데)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고 있다.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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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식 | 시니어 미디어 활동가

 인간은 나이가 들어도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가슴 깊은 행복을 느끼는 존재인가 봅니다. 30여년을 방송사 피디라는 직함을 달고 치열한 현장을 누볐습니다. 방송 제작이라는 일은 마치 전장과도 같았지요. 하지만 정년이라는 문턱을 넘는 순간, 저는 아무런 준비 없이 거대한 사회의 파도 속으로 내던져졌습니다. 은퇴 선배들이 “현직은 전쟁터였지만 퇴직 후는 지옥이다”라고 말할 때 그저 흘려들었던 것이, 막상 제게 현실로 닥치자 감당하기 힘든 우울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인연이 닿은 ‘보령시니어클럽’은 정체된 제 삶의 물길을 터준 새 물줄기였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노인 일자리 현장에서 땀 흘리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아내고, 그 소중한 순간들을 편집해 세상과 공유하는 미디어 활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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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니어클럽(관장 임선배) 소방안전지킴이활동 현장에서 어르신들의 일하는 모습을 필자(왼쪽)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고 있다. 필자 제공
보령시니어클럽(관장 임선배) 소방안전지킴이활동 현장에서 어르신들의 일하는 모습을 필자(왼쪽)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고 있다. 필자 제공

처음 현장에 나갔을 때 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곳에는 평생 만날 수 있으리라 상상하지 못했던 특별한 분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년에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볐던 운동선수, 후학 양성에 평생을 바친 교장 선생님, 평생 공직에 몸담으며 국가와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 한자리에 모여 계셨습니다. 그 시절, 그분들이 일궈낸 화려한 경력과 황금기 시절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편의 드라마였습니다. 때로는 현장에서 일하시다가도 잠시 짬이 나면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며 구수한 입담으로 자랑을 푸짐하게 늘어놓곤 하셨습니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그 정겨운 무용담을 듣고 있노라면, 저 역시 그 시절의 열정에 전염되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보령시니어클럽의 현장은 참으로 오묘했습니다. 문밖에서는 전직 교장 선생님이었고, 국가대표 선수였던 분들이지만, 현장에 들어서는 순간 그 화려한 계급장은 모두 떼어집니다. 낡은 작업복을 입고, 노란 조끼를 걸친 채 서로서로 그저 ‘어르신’ 혹은 ‘동료’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누구의 지시를 따르는 상하 관계가 아니라, 우리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일하는 똑같은 직위, 즉 ‘동급’으로 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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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화려했던 직함은 잠시 내려놓고, 누군가의 선배나 상사가 아닌 동등한 눈높이에서 서로의 안전을 걱정해주고,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모습. 그 평등하고 소박한 모습이 제게는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나이가 들고 사회적 지위가 사라진 뒤에도 사람은 결국 ‘관계’ 속에서 살아감을, 이곳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일자리 현장에서 만난 80살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말씀하십니다. “집에서 티브이(TV)만 보며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 동료들과 땀 흘리며 대화를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입니다. 한달에 한번 받는 활동비로 손자들에게 줄 용돈을 마련하고, 스스로 경제활동을 한다는 자긍심에 눈을 반짝이는 그분들을 보며 저는 피디로서의 본능을 다시금 꺼내 듭니다. 그분들의 보람찬 일상을 렌즈에 담아 에스엔에스(SNS)에 올리고, 유튜브 구독자가 늘어갈 때마다 저는 비로소 은퇴라는 단어의 무게에서 자유로워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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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으면 동네 경로당에서 고스톱이나 치며 소일했을 시간을 이렇게 생산적인 일을 하며 보낼 수 있게 해준 이 사회와 국가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들을 때면, 저 또한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안전교육을 받으며 태풍이나 장마에 대비하고, 낙상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미끄럽지 않은 신발을 챙겨 신는 일상. 그 소소한 실천들이 모여 우리 공동체를 지탱하고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제 시니어클럽에서의 시간을 통해 ‘노화’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합니다. 노화는 단순히 퇴화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이라고 말입니다. 방송 피디로서 30년, 이제는 시니어 미디어 활동가로서 다시 시작하는 제 인생의 후반전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합니다.

세월이 흘러 머리는 하얘지고 몸은 조금씩 느려질지 모르지만, 우리 시니어들이 품은 삶에 대한 열정과 가치는 결코 낡지 않습니다. 렌즈를 통해 기록하는 어르신들의 웃음소리, 그 속에서 피어나는 동료애와 성취감. 보령시니어클럽은 단순히 일자리를 제공하는 곳을 넘어, 우리가 계급장을 떼고 만난 가장 아름다운 동행의 현장입니다. 오늘도 저는 카메라를 들고 나갑니다. 우리네 인생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그 자체가 눈부신 이야기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 노회찬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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