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바라봄’이 있어…단번의 시선이 4시간 오페라로 [.txt]

광고
같이 들을 클래식
광고
리하르트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프렐류드
광고
광고
안인모의 미락(美樂)클
진주의 작은 정류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 레이더는 기어이 빵집을 찾아냅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차창 밖에 둥그런 곡선으로 메워진 동그랗고 파란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어요. 휴대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는데, 버스는 야속하게도 빠르게 달렸고, 자꾸만 지나가 버리는 바다가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때,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아주머니의 목소리.
광고
“이런 거도 좋다고 찍나, 우린 맨날 본다~.”
어찌나 웃음이 나는지 웃느라 손목에 힘이 빠져버렸어요. 햇볕에 그을려 건강해 보이시는 아주머니는 제 행동이 재밌다는 듯 계속 웃으셨어요. 외지에서 온 제겐 일부러 찾아가야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아주머니에게 남해 바다는 매일의 삶의 터전이니까요. 그녀는 구수하고 푸근한 말투로 이어서 말했어요. “저 앞에 남해대교를 찍어라. 새로 생긴 남해대교가 괜찮다.” 옆자리 아주머니가 거들더군요. “남해대교는 저짝에서 이짝으로 올 때 찍어야지.”
강렬한 햇빛에 보석 가루를 뿌린 듯 반짝반짝 반응하던 바다 빛.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건 없었어요. 바다 아래 멸치들이 일제히 뜀박질하는 듯한 은빛 광채. 지금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어요. “남해엔 꼭 4월5일에 와야 한다. 저기가 다 벚꽃으로 꽉 찬다. 4월5일이 가장 예쁘다.” 가는 내내 제게 말을 거신 옆자리 아주머니의 지갑형 휴대폰 케이스는 반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어요.
고흐는 알까요? 아를의 강가에서 바라본 별이 빛나는 밤을 대한민국 남해의 어느 여사님이 하루에 스무번도 넘게 본다는 것을. 5시간 동안 기차와 버스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과 마주하며 소통한 시간에는 비행기의 편리함과 돈으로 살 수 없는 우리의 정서, 정(情)이 있었네요.
광고
남해에서는 도서관 두곳에서 강연이 있었어요, 인도네시아에서 온 귀여운 아가씨, 러시아에서 피아노를 공부한 피아니스트도 있었지요. 서울 근교에 살다가 며칠 전 남해로 이사 와 맨 앞자리에서 강렬한 눈빛을 보내던 모녀를 잊을 수 없어요. 그 학생은 노래를 만드는 게 꿈이래요. 남해에서 그녀가 보게 될 아름다움은 그녀의 음악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자양분이 되겠지요. 도시의 학원 교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것 말이에요.
본다는 건 얼마나 중요한지요. 마침 살로메의 대사가 떠올라요. 살로메는 예언자 요카난의 육체를 탐하지만 거부당하자, 헤롯왕 앞에서 춤을 춘 대가로 요카난의 머리를 갖게 됩니다. ‘살로메’에서 오스카 와일드는 역할 간 ‘바라봄’을 강조해요. 요카난의 머리를 향해 살로메는 이렇게 말하죠.
“당신이 나를 보았다면, 나를 사랑했을 텐데…. 난 당신을 보았지. 그리고 당신을 사랑했어.” 그리고 살로메는 요카난의 입술에 키스합니다.
왕비는 헤롯왕을, 경비대장과 헤롯왕은 살로메를, 살로메는 요카난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그 욕망은 커져 가요. 와일드의 살로메가 특별한 이유는 세기말 유미주의와 퇴폐주의가 와일드가 설정한 관음증으로 말미암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맞닿았기 때문이에요. 보면 사랑하게 된다는 건, 마치 티브이(TV)에 나오는 배우를 계속 보다 보면 정들고 저절로 멋져 보이는 것과도 같달까요?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밀양아리랑의 가사와 함께 재미난 단어들이 떠올라요. “여보” “여보세요”는 ‘여길 보세요’로 ‘보다’에서 출발해요. “이봐!, 이보게!” “제발 한번만 봐주세요!”에도 ‘보다’의 개념이 들어가죠. 소통하려면 서로 봐야 하고, 얼굴 한번 더 보면 마음이 약해져 용서하게 되죠. 이처럼 본다는 건 모든 인지 활동에서 중요한 시발점이 돼요. 그러고 보니, ‘알다’ ‘이해하다’를 뜻하는 ‘I see’에서 ‘see’의 기능이 좀 더 명확해지네요. 눈으로 본다는 것은, 즉 뇌로 인지하고 납득하는 것. 사계절 중 봄은 너무나 파릇해 눈을 부릅뜨고 보게 되니 ‘봄’인 것이죠.
클래식 음악에도 ‘보다’를 강조한 곡들이 있어요. 프랑스의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의 피아노곡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스무 개의 시선’은 가장 직접적으로 ‘시선’을 강조한 곡이에요. 이토록 아름다운 눈길도 있지만, 금지된 눈길도 있지요. 아름다운 메두사를 바라보면 모두가 돌로 변하는데, 그건 메두사를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포세이돈이 촉발한 사건이었어요.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결정적 시발점은 바로 이졸데가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트리스탄을 향해 칼을 들이댔을 때,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이에요. 이졸데는 트리스탄이 깊이 파고드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완전히 무장 해제되고, 칼을 떨어뜨려요. 바로 그 짧은 순간의 시선 교환으로 두 사람은 비극적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 시선의 선율, 바로 Glance Motif(시선의 동기)예요. 바그너는 이 단 한번의 시선으로 4시간짜리 오페라를 만들어냅니다. 결국 4시간 동안 청중은 ‘시선’의 선율과 그 변형을 끊임없이 들으며 둘의 강렬한 시선 교환을 계속 상기하게 됩니다.
이졸데와 트리스탄의 눈빛이 마주친 순간 두 사람의 눈에서는 ‘동공지진’이 일고 슬픔이 사랑으로 바뀝니다. 바그너는 17번째 마디에서 바로 그 찰나의 애절한 감정을 화성으로 표현하는데 일명 ‘트리스탄 화음’이 됩니다. 그 비통하면서도 처절한 아름다움이란!
모든 시작엔 바라봄이 있어요. 한쪽만이 아닌, ‘서로’의 바라봄, 즉 마주치는 눈길이죠. 강연을 마치고 진주로 돌아가며 마주한 남해대교. 화려한 조명이 저녁 바닷물에 아른거리며 “날 좀 보소!”라고 말하는 듯했어요. 버스에서 만난 여사님 말씀이 맞았어요. 저짝에서 이짝으로 올 때의 남해대교가 멋있더군요. 고흐가 보았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 남해 바다에 보란 듯 펼쳐져 있었어요.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