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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September 18, 2026

청와대, ‘파병 반대’ 시민사회 활용해 양면게임 펼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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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로 꾸려진 한국군파병반대 긴급행동 활동가들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이란 호르무즈 파병 불가 입장을 결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시민사회단체로 꾸려진 한국군파병반대 긴급행동 활동가들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이란 호르무즈 파병 불가 입장을 결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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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은 미친 짓이다.”

이라크 파병을 다룬 지난 2003년 9월25일치(제476호) 한겨레21 표지 제목은 23년이 흐른 지금 돌이켜봐도 원색적이다. 이 기사는 당시 이라크 파병을 강하게 반대했던 시민사회의 주장을 전달하는 내용이었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라크에 한국군을 파병하기로 하자 약 35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을 발족시켰다. 이 단체는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반전평화운동의 구심체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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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인사들은 임기 첫 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일을 ‘이라크 파병’ 결정이라고 말한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진보진영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린 첫 번째 계기가 이라크 파병이었을 것”이라고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서 적었다.

하지만 이라크 파병 당시 시민사회가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니었다. 당시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정책사업단장을 맡았던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명예 교수는 한겨레에 “이라크 파병 논란 당시 청와대와 파병을 반대한 시민단체는 긴밀하게 소통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당시 파병 반대운동을 펴던 시민사회가 문재인 민정수석, 외교안보 핵심당국자와 수시로 대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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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12월8일, 유럽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주둔한 자이툰 부대를 전격 방문했다. 노 대통령은 장병들과 환담하고 영내 식당에서 자율배식한 음식을 함께 들었다. 대통령기록관 누리집
지난 2004년 12월8일, 유럽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주둔한 자이툰 부대를 전격 방문했다. 노 대통령은 장병들과 환담하고 영내 식당에서 자율배식한 음식을 함께 들었다. 대통령기록관 누리집

지난 2003년 4월 비전투원 이라크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건설공병단 서희부대, 의료지원단 제마부대가 이라크로 갔다. 하지만 미국은 전투병 추가 파병을 요구했고, 시민단체는 더욱 거세게 파병 반대운동을 벌였다. 노 전 대통령은 시민사회의 파병 반대가 미국과의 파병 협상에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애초 미국의 요구는 1만명 이상의 전투병력 파견이었다. 결론은 전투병 3천명을 보내되 비전투 임무를 주는 것이었다. 이런 절충적 해법을 찾고 미국의 양해를 구하는 데서 시민단체의 강력한 파병 반대운동이 큰 의지가 되었다.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운동과 매우 비판적인 국민 여론이 있었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도 이런 수준의 파병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재단이 펴낸 노무현 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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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2004년 시민사회의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이 참여정부의 대미 협상력을 키운 것은 정치학의 ‘양면게임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1988년 미 하버드대 정치학과 로버트 퍼트남 교수는 국제정치와 국내정치를 엄격하게 구분해온 기존 학계 관행을 비판하며, ‘양면게임’(two-level games)개념으로 국내정치와 국제관계의 연계와 상호작용을 설명했다. 이 개념은 외교는 국가 간 협상이란 외부 게임과 국내정치란 내부 게임이 두 차원에서 동시에 진행된다는 게 뼈대다. 정부가 대외 협상에서 합의하려는 내용이 국내에서 국회와 이익집단, 시민사회에도 동의(국내 비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 이라크 평화·재건사단(자이툰부대) 창설식이 열리고 있다. 국가기록원 누리집
지난 2004년 이라크 평화·재건사단(자이툰부대) 창설식이 열리고 있다. 국가기록원 누리집

한국은 지난해 7월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도 양면게임이론을 활용했다. 이 협상에서 한국과 미국은 미국산 쌀과 소고기에 대해 추가 개방하지 않기로 최종 합의했다. 미국은 협상 초기부터 미국산 쌀 수입 확대와 소고기 수입 규제 철폐를 강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여러 가지 논리로 미국을 설득하다가 어느 단계부터는 2008년 광화문 100만명 (광우병) 촛불집회 사진을 가지고 다니면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 대표에게 보여줬다”며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 같다”고 전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호르무즈 파병과 관련해 “전쟁에 관여 또는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며 “그런 형태의 파병이든 군 자산 파견이든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이렇게 강조했지만, 앞으로 미국이 파병 압력을 거둬들일지는 불투명하다.

한국이 ‘전쟁 파병 불가’란 원칙을 지키려면 국회 파병 동의안 통과의 어려움, 시민사회 반대 등 다원화된 의사결정 구조를 내세워 미국의 압력에 버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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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파병을 두고도 시민들은 ‘파병은 미친 짓이다’든 ‘파병은 국익이다’든 각자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쳐야 한다.

시민사회가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 게 우리의 협상력을 키워 국익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파병 관련 의사결정과정이 이재명 대통령과 청와대에 쏠리게 되면 미국에 유리해질 뿐이다. 정부가 ‘전쟁 파병 불가’란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호르무즈 파병을 반대하는 시민사회와 상호 신뢰를 형성하고 솔직한 소통부터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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