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역에 붙은 ‘난곡동 할매께’…48년 만에 갚은 500원 차표 빚
15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역사에 직원들이 ‘난곡동 할매’께 적은 편지가 게시되어 있다. 박민규 기자
15일 오전 서울 영등포역, 출근길 열차를 타려는 시민들 사이로 편지 하나가 보였다. 편지에는 “어머니께서 보여주신 마음을 오래도록 잊지 않겠습니다”, “저희에게 소중한 가르침과 감동을 선물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 편지는 영등포역 역무원 직원들이 ‘난곡동 할매’에게 보내는 답장이다.
한국철도공사와 영등포역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오전 11시쯤 자신을 ‘난곡동 할매’라고 밝힌 한 80대 여성이 영등포역을 찾아 신문지에 싼 현금 500만원과 편지를 건넸다.
할머니는 편지에서 48년 전 사연을 소개했다. 편지는 “저는 아주 오레된 빗을 이제야 갑푸려 합니다”로 시작한다. 할머니는 1978년 10월 전북 정읍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영등포역에 왔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때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학생이었는데 돈이 없어서 제 차표만 사고 우리 아이는 표가 없었다”고 썼다.
할머니는 “역장님은 우리 아이 차비로 500원을 내라고 하셨지만, 우리가 가진 것은 토큰 한 개밖에 없었다”며 “사정을 했더니 고맙게도 가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그는 “저는 절을 하고 돌아서면서 이 돈은 죽기 전에 갚겠다고 다짐을 했다”라며 “지금은 많이 늦었지만, 그리고 많이 부족하지만 조금이라도 받아달라”고 했다. 과거 기차푯값 500원을 1만 배로 갚은 셈이다. 할머니는 최근 투병하던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그간 가졌던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편지와 돈을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6일, 자신을 ‘난곡동 할매’라고 밝힌 한 80대 여성이 영등포역에 남긴 편지. 한국철도공사 제공
영등포역 직원들은 처음에 현금 수령을 고사했으나, 할머니의 뜻이 완강해 돈을 받기로 했다. 할머니의 신원을 알 길이 없자, 당시 현장에서 할머니를 맞았던 직원을 비롯한 역무원들이 함께 답장을 작성해 알림판에 게시했다. 직원들은 답장에 “어머니께서는 저희에게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 누군가에게 받은 배려와 친절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보여주셨다”며 “부디 언제든 영등포역에 찾아와 달라”고 적었다.
영등포역 관계자는 “할머니께서 성함이나 연락처를 남기지 않고 가셔서 고마움을 전할 방법이 없었다”며 “이번 추석 명절에 영등포역을 다시 이용하실 수도 있어, 그때 보실 수 있도록 명절까지 답장을 계속 걸어둘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달받은 500만원은 코레일 규정에 따라 기타 수익으로 처리한 후, 구체적인 사용 방안은 내부 상의를 거쳐 결정할 예정이다.
편지를 읽어보던 김지훈씨(24)는 “영등포역에서 매일 지하철을 타는데 이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다”며 “할머니와 영등포역, 모두 감동이다”고 말했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