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전쟁은 남자들만 했다고?”···대포 쏘고 군대 지휘한 여성들의 역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 붉은 군대의 여성 저격수들. 메멘토 제공
여자들은 언제나 싸웠다
세라 퍼시 지음 | 정해영 옮김 | 메멘토 | 624쪽 | 3만8000원
2022년 개봉한 영화 <탑건 : 매버릭>에는 여성 전투기 조종사 나타샤 트레이스 대위가 등장한다. 콜사인 ‘피닉스’인 그는 주요 작전에 직접 참여하며 남성들과 다를 바 없는 전투 능력을 보여준다. 1986년 첫선을 보인 <탑건>에서는 여성 조종사를 볼 수 없던 것과 대조된다. 36년의 시차를 둔 두 영화의 차이는 미군 제도 변화와 연결된다. 미국에서 여성은 1993년에서야 전투 항공기를 몰 수 있게 됐다. 그전까지 여성 조종사는 존재했지만, 전투 임무는 수행할 수 없었다.
전쟁에서 여성의 역할은 흔히 피해자 혹은 보호받아야 할 민간인의 위치로 상상되곤 한다. 영화에서 보여지듯 여성이 군사 교육을 받고 전투에 나서는 것도 최근에서야 가능해진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자들은 언제나 싸웠다>를 보면 사실과 다르다. 여성은 언제나 싸워왔다. 특히 현대적인 군 제도가 정립되기 이전 여성들은 남성과 함께 전장의 여러 무대에 존재했다.
16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군대에는 여성이 필수적인 존재였다. 당시 정벌 군대는 한 도시 인구와 비교될 만큼 많은 인원으로 구성됐다. 전투병의 아내 등으로 이뤄진 여성들은 군대와 함께 이동하며 세탁과 바느질을 하거나 도둑질이나 약탈로 음식과 술을 마련해 제공하는 등 다양한 비공식 군사활동을 함께한다. 남편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자 아내가 대신 달려가 총이나 대포를 쏘기도 했다. 이들이 공식 군사 활동에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다.
여성은 ‘전쟁 공동체’(campaign community)에서 활동하는 중요한 인적 자원이었다. 특히 당시 전투의 주요 방식 중 하나였던 ‘공성전’은 여성의 전투 참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례다. 성벽 안에서는 공식 수비대뿐 아니라 여성들이 성 밖의 적들을 향해 돌을 던지고 대포를 쏘며 맞섰다.
전장의 일원을 넘어 영웅적 면모를 보인 여성들도 있다.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한 잔다르크가 대표적이다. 은동고(현 앙골라) 왕국의 여왕이었던 은징가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여러 전투를 치르며 왕국을 지킨 것을 넘어 영토 확장 과정에서 포르투갈에 대항하는 등 저돌적인 지휘관의 모습을 보였다. 로마 제국의 압제에 맞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킨 켈트족 왕비 부디카 등은 남성 지도자도 보여준 적 없는 뛰어난 군사 지휘력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부디카의 승리는 종종 운으로 여겨진다. 은징가 승리에 대한 유럽의 평가는 그가 “역사상 가장 야만적이고 잔인한 여성”이었기 때문으로 치부된다.
전쟁 영웅이 여성일 리 없다는 편견도 존재한다. 스웨덴 비에르셰섬의 바이킹 유적지 비르카에서 발견된 전사 무덤 Bj.581의 주인은 현대 유골 유전자 분석 결과 여성으로 밝혀졌으나, 오랫동안 당연히 남성일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으로 불리는 카지미에시 푸와스키 장군도 유해를 생물학적으로 조사한 결과 여성이거나 간성일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지만, 여전히 미군 기병 부대의 ‘아버지’로 불린다.
여성이 군사사에서 배제된 이유는 무엇일까. 책은 19세기 중반 군대의 보급·의료 체계가 전문화되기 시작하며 여성의 공식적인 군사 참여가 줄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근대 군사 체계가 남성 중심으로 자리 잡고, 보급 체계 전문화로 군대를 따라다니던 여성들이 사라지면서 전장에서 여성의 역할은 점차 줄어든다.
이즈음 군대 내 여성의 지위는 보조적 역할에 한정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여성육군보조부대 대원들은 적기를 추적하고 대공포 운용을 지원하면서도 직접 발포하는 것은 금지됐다. 보초를 설 때도 곡괭이 자루와 호루라기를 지급받았다. 책은 근대 국민국가에서 군 복무가 시민권과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중요한 근거가 됐다는 점에서 여성을 직접적 전투에서 배제하는 방식은 또 다른 차별로 작동했다고 밝힌다. 그렇기에 책은 현대의 민주 국가일수록 여성의 전투 참여를 허용한다고 말한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군대는 의도적으로 여성을 전투에서 배제함으로써 보호와 기사도 정신이라는 미명 아래 여성을 무력화했다…페미니즘 운동은 여성들을 일으켜 세워 그들이 능력 있고 동등하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일깨웠지만, 군대는 여성들에게 사실은 그렇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고, 여성은 전투에 참여할 만큼 훌륭하지 않다고 날카롭게 상기시켰다.”
책은 남성 중심 군사사에서 지워진 여성들의 역사를 복원하고 근대 군사 체계 속 여성의 전투 배제가 단순한 군 복무 문제를 떠나 성평등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지적한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