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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September 12, 2026

학술서와 대중서 사이, 가지 않은 길로 간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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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영 작가 ⓒ 정인욱 사진작가, 참여사회 제공
이라영 작가 ⓒ 정인욱 사진작가, 참여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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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책 l 이라영 작가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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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을 졸업하고 한 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교육 연구원으로 일하며 문화정책의 많은 현실과 맞닥뜨렸다. 행정이나 정책 관련 일에서 나는 무력했고 싸우지 않기 위해 참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월급과 경력을 축적해야 생존할 수 있는 젊은이는 ‘나’를 죽이고 견딜 뿐이었다. 퇴근 후에 죽어 있는 나를 깨워 글을 써왔다. 객원기자나 통신원 활동을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내 생각을 풀어놓으려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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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유학을 가게 되면서 글 쓰는 활동이 끊겼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원고료도 없는 웹진에 계속 비평을 올렸다. 그러다 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내게 다른 지면을 연결해 주며 원고료를 받고 끊이지 않게 글을 쓸 수 있게 해줬다. 누군지 여전히 모르지만 이 지면을 빌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뛰어난 모범생도 아니면서 매력적인 날라리도 되지 못한 나는 대체로 애매하게 잘했다. 달리 말하면 모든 면에서 조금씩은 다 부족했다. 나의 이런 점을 누군가가 신랄하게 말한 적 있다. “이것도 저것도 어느 정도는 다 되지만 한 가지를 특별하게 파고들지는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라서 그대로 수긍했다. 나의 애매한 정체성을 정돈해 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부작용이 났다. 한 가지로 정리되기 힘든 성향을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내 생각은 글로, 그림으로, 혹은 무대로 이어졌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나는 차라리 발바닥으로 쓴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내 눈과 귀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야 직성이 풀렸다. ‘답사’와 ‘작업’을 열심히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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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인간이 고집은 세서 혼자 꾸준히 글을 쓰다 보니 꼬박꼬박 일간지에 칼럼을 쓰는 기회가 생겼다. 특별한 목적 없는 딴짓을 너무 열심히 한다는 게 민망해서 아무에게도 내가 쓰는 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책을 내자는 연락을 받고 편집자들을 만나보기도 했지만 책을 쓰는 건 주저했다. 글쓰기를 두려워한 적은 없지만 출간에 대해서는 무지했기 때문이다. 2012년 동녘 출판사의 이정신 편집자에게 연락이 왔다. 그다음 해에 서울 합정동 어딘가에서 처음으로 이정신 편집자와 마주 앉았다. 마음을 정하고 출간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까지는 2년이 더 흘렀다.

2016년 드디어 나의 첫 책이 출간되었다. 마흔이었다. ‘소수자를 위한 일상생활의 정치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는 안 싸우고는 살 수 없던 나의 30대를 관통한 생각들이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책 한권을 만드는 일에 대해 많이 배웠다. 책을 출간해서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의 수많은 책 중에서 누가 이 책을 사겠나 싶었다.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나온 지 올해 10년이 되었다. 작년에 이정신 편집자가 이 책과 관련해 연락해 주었을 때 ‘드디어 때가 되었구나’ 생각했다. 많이 팔리는 책이 아니니 이제 절판을 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절판하기에는 아깝다며 소량으로 재쇄를 또 찍을 예정이라고 했다.

말하고 싶지만 숨고 싶은 모순 속에서 늘 부유하는 인간으로 살았다. 숨고 싶은 나를 움츠러들지 않게 계속해서 꺼내주는 사람들의 손길이 있어서 책이 출간되었고 또 후속 작업으로 이어졌다. 올해 ‘쇳돌’ 출간 이후 과분할 정도로 좋은 말들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한권의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하지 않는다. 이어져 온 작업들과 연결되어 있다.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는 밥상에서 새치와 임연수어의 관계에 대한 나의 발견으로 글을 시작한다. 지역 방언으로 시작한 이 도입부는 내가 고집스레 붙들고 있는 어떤 세계에 대한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학술적인 글쓰기와 대중적인 글쓰기, 그 중간의 글쓰기를 표방한다고 했을 때 한 출판계 사람이 “이도 저도 아니어서 망할 수 있기에 보통 지향하지 않는다”고 충고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여전히 나는 그 중간과 혼종의 성격을 가진 ‘연구예술’의 가능성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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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영 작가·예술사회학

■ 그리고 다음 책들

타락한 저항

‘지배하는 피해자들’이라는 부제처럼 피해자의 위치를 점하고 저항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권력 행위를 하는 사회의 어떤 흐름을 다루었다. 혐오가 놀이가 되는 사회에서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반지성주의를 화두로 삼은 사회비평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반지성주의란 단지 무지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알기를 거부하는’ 태도를 말한다. 혐오와 차별은 이러한 반지성주의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안타깝게도 이 책을 출간했던 2019년보다 지금 한국사회의 반지성주의는 더 극심해졌다.

교유서가(2019)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미국 작가 21명을 중심으로 그들이 나고 자란 지역을 돌아다니며 쓴 에세이이다. 21명 중 남성은 2명이다. “‘정상’ 권력을 부수는 글쓰기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설명하듯,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중심과 정상성의 틀에서 벗어난 목소리를 꾸준히 찾아가는 작업이었다. 내가 읽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삶과 문학을 널리 나누고 싶었다. 이 책의 서문에 내가 쓰고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나는 백인 남자들의 저서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사람을 지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문예출판사(2020)

말을 부수는 말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목소리 불균형에 대한 나의 참을 수 없음에서 출발한다. 단지 목소리의 규모만이 문제가 아니라, 권력이 계속해서 약자와 소수자의 언어를 왜곡하는 것에 대한 분노다. 권력은 개념을 점령하려 들고 소수자의 목소리를 교란시킨다. 심지어 그들의 저항의 언어까지 빼앗아간다. ‘고통’에서 ‘아름다움’에 이르기까지, 재개념화 하고 싶은 21개의 화두를 쫓아간다. (권력의) 말을 부수는 (저항의)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불화해온 언어들과 싸운 흔적이다.

한겨레출판(2022)

쇳돌

여전히 나는 ‘이 책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잘 모른다.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운 이 책이 나와 가장 많이 닮았다. ‘쇳돌’은 철광석의 우리말로, 쇠붙이 성분이 들어 있는 돌을 뜻한다. 양양철광산을 배경으로 한 나의 가족사에서 출발해 산업사, 지역사, 노동운동사로 나아간다. ‘폐광 후 노동자들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사라진 목소리를 추적한다. 역사의 장에서 누락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복원하여 거시사 속에 접혀 들어간 미시적 얼굴들을 입체적으로 살려내는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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