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처분’ → 농지은행 위탁 → ‘3대 투기’만 선별···농지조사 대폭 후퇴
농림축산식품부가 8일 발표한 농지조사 후속조치는 ‘투기 3대 유형’을 명시하고, ‘투기만 아니라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당초 비투기 농지도 법에 어긋나면 농지은행에 위탁하고 일정 기간 뒤에 처분하는 방안을 내놨다가 거센 반발에 굽힌 것이다.
농민단체 등에선 다행이라며 환영했지만, 정부의 미흡한 소통으로 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날 농지의 3대 투기 유형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농지 취득 후 무단 방치·임대하는 경우’ ‘경매 등으로 농지 지분 취득 후 무단 방치·임대하는 경우’ ‘농업법인을 통해 농지 취득 후 임대 등 부동산 수익을 올리는 경우’로 적시했다.
3대 투기 유형에 해당하면 소명 절차 후 처분명령이 부과될 수 있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정부는 이를 제외하고 고령농이나 상속농지의 휴경, 경사지 등 영농이 어려운 농지 등은 처분하지 않기로 했다. 당초 농지은행에 위탁하고 일정 기간 지나 처분하기로 했다가 물러선 것이다.
정부가 지난 5월 농지 전수조사를 시작하고, 지난달 21일 당정협의로 유예조치를 내놨는데도 농민들의 불안이 해소되지 않았다.
정부가 농지 전수조사를 시작하면서 제시한 명분은 ‘농지 투기 근절과 농지제도의 현실화’였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월 “농사를 안 짓는 사람은 농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일선 농업인 사이에선 투기가 아닌 고령·질병 등으로 휴경해도 농지가 강제 처분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지난달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에 열린 당정협의에서는 비투기 농지에 대해 ‘농지은행 위탁·원상복구 시 처분 유예’로 한발 물러났다. 그러나 유예기간 이후 다시 처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를 의식해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조사 이후 내 농지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정부의 설명이 충분치 않았고 그로 인해 불안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농업인 피해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미흡한 소통으로 농업인의 불안을 야기했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농지를 ‘위탁’하는 곳인 농지은행의 수용 여력이 크지 않았다는 점도 정부가 입장을 바꾼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농식품부는 농지를 팔거나 맡기고 싶어도 농지은행이 모두 받아주지 않는다는 현장 의견을 반영해 매입·수탁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는 향후 농지은행의 매입 대상을 농업진흥지역에서 농업 활용이 가능한 비진흥지역 농지까지 넓히고, 지역별 수요와 영농 효율성을 고려한 매입·공급 방식도 도입한다. 농지은행에서 관련 절차를 한 번에 처리하도록 매입 절차도 간소화할 계획이다.
이날 정부의 후속조치는 농촌의 현실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을 만하지만 헌법상 ‘경자유전 원칙’에 어긋난다는 딜레마는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향후 혼란을 줄이려면 농지 관련 법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 장관은 “경자유전이 지향하는 바는 식량안보를 위해 투기를 막고 농지는 농지로 활용돼야 한다는 것이고, 그 예외를 규정한 것이 농지법”이라며 “과거 법으로 현실을 들여다보면 법 위반이 많아지는 것인 만큼 현실에 맞게 제도 개선을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엄청나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농민들이 불만이 있던 부분들이 후속조치로 상당히 해소됐다”고 평가했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농지 관리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더 했어야 했지만 보강조치는 충분히 이뤄졌다”며 “조사 결과를 미래지향적인 농지제도를 짜는 데 사용해야 논란을 만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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