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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October 1, 2026

서울시의 포용금융, 손실 앞에서는 각자도생 [HERI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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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시청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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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돌봄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돌봄의 공백을 메우고 취약한 이웃에게 일자리를 제공해도, 그 가치가 당장의 담보나 매출로 환산되지는 않는다. 은행에도 이유는 있다. 예금을 맡긴 사람의 돈을 지켜야 하고, 대출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을 엄격히 따져야 한다. 그러나 개별 은행의 합리적인 판단이 사회 전체를 위한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담보가 부족하거나 수익이 늦게 나는 사업을 계속 밀어내면, 지역에 필요한 서비스와 일자리도 함께 줄어든다.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 기존 금융의 심사 기준으로는 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가장 돈이 필요한 곳으로 돈이 흐르지 못하는 구조적 틈을 메우는 일은 공공정책의 몫이다.

사회연대금융은 바로 그 틈에서 기업의 상환 능력과 사회적 가치를 함께 살핀다. 현장을 이해하는 전문기관이 자금을 연결하고 경영 상황을 점검하며, 어려움에 처한 기업의 회복을 돕는다. 금융에서 배제된 이들에게 접근 기회를 넓힌다는 점에서 포용금융과도 맞닿아 있다. 문제는 문턱을 낮춘 다음이다. 더 큰 위험을 감수하도록 정책을 설계했다면, 불가피한 손실이 생겼을 때 누가 어떻게 나누어 감당할지도 미리 정해야 한다.

서울시가 2012년 조성한 ‘사회투자기금’은 이러한 포용금융의 취지를 제도로 구현한 선구적 정책이었다. 제도권 금융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에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서울시는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민간 사회연대금융 중개기관을 수행기관으로 삼았다. 서울시가 수행기관에 무이자로 자금을 빌려주면, 수행기관은 자기 자금을 일부 보태 기업들에 연 3% 안팎의 낮은 금리로 다시 빌려주는 구조였다. 이 기금은 수년간 수백개 사회연대경제 기업이 자생력을 키우는 데 힘이 됐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붙었다. 기업이 돈을 갚지 못하더라도 수행기관은 서울시에 원금을 전액 상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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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이 선의의 정책이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대출받은 기업들의 매출이 급감했고, 일부는 회생과 파산 절차에 들어가거나 상환 능력을 잃었다. 기업에서 돈이 돌아오지 않자 수행기관의 상환에도 차질이 생겼다. 서울시는 수행기관인 ‘한국사회혁신금융’과 그 대표이사를 상대로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하고 대여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양상은 매몰찼다. 한국사회혁신금융의 전체 대출은 모두 10건이다. 이 가운데 5건, 29억5천만원은 정상 상환했다. 소송 대상은 나머지 5건인데, 그중 4건(약 10억원)은 아직 만기가 남아 있다. 서울시는 일부 이자가 연체됐다는 이유로 기한의 이익 상실을 주장하며 이 4건까지 전액 일시 상환을 요구했다. 약속된 만기를 기다리지 않고 남은 돈을 한꺼번에 갚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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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혁신금융 측 설명에 따르면, 서울시 담당 공무원은 “연체금리가 약 10%로 높은 1건의 원금을 먼저 갚는 것이 유리하다”고 권유해 이를 따랐다. 하지만 원금을 먼저 갚느라 다른 대출의 이자가 밀렸고, 서울시는 이 이자 미납을 이유로 먼저 갚은 해당 건을 포함한 5건 모두에 소송을 걸었다. 서울시가 수행기관에 지급해야 할 이차보전금 200만원 남짓을 연체이자와 상계해달라는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사회혁신금융은 회수 가능한 대출금은 전액 갚겠다는 입장이다.

소송의 법적 판단과 별개로, 이 구조가 애초의 정책 목적에 부합하는지 물어야 한다. 은행이 선뜻 빌려주지 않는 곳에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하게 하면서, 돌려받지 못한 돈은 수행기관이 모두 책임지게 했다. 연 3% 이내의 금리 마진으로 심사와 관리 비용까지 충당해야 하는 수행기관에 부실 위험을 온전히 맡긴 것이다. 수행기관 대표이사 개인에게는 연대보증까지 지웠다. 이 조건을 받아들여야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으니, 협상이 아니라 통보였다. 코로나19와 뒤이은 경기 침체로 부실이 현실이 되자, 서울시는 위험을 분담하기는커녕, 기꺼이 험지에 뛰어든 수행기관을 희생양 삼아 기금 회수에만 몰두하고 있다. 한국사회혁신금융만의 문제도 아니다. (사)한국마이크로크레디트 신나는조합, 재단법인 밴드 등 다른 7개 수행기관들도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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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공공자금을 허술하게 관리하자는 뜻은 아니다. 부실한 심사와 방만한 운영에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만 성실하게 심사하고 관리했음에도 구조적으로 피하기 어려운 손실까지 모두 개별 기관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공공이 위험을 전혀 나누지 않는다면 수행기관은 살아남기 위해 가장 안전한 기업부터 고르게 된다. 은행에서 밀려난 기업이 정책금융에서도 다시 밀려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기금의 회수율은 높아질지 몰라도, 정책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한국사회혁신금융
한국사회혁신금융

손실을 다루는 방식은 금융 설계의 핵심이다. 취약한 곳에 담보 없이 돈을 보내는 금융에서 손실은 예외가 아니라 예정된 비용이다. 서울시도 소상공인 정책자금에서는 이를 인정한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이 보증을 서고, 부실이 나면 재단이 대신 갚아 그 손실을 공공 재정이 흡수한다. 하지만 누구도 재단 이사장에게 개인 보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사회투자 프로그램 ‘그로스 펀드(Growth Fund)’는 초기 손실의 3분의 1 이상을 공공 보조금으로 먼저 흡수해 중개기관의 부담을 덜어준다. 30년 역사의 미국 지역개발금융기관(CDFI) 기금은 연방정부가 보조금과 지분투자, 보증으로 중개기관의 자본력을 키워주며 위험을 적극적으로 분담한다. 프랑스의 사회연대금융 중개기관 ‘프랑스 악티브(France Active)’ 역시 공적 정책금융기관의 재보증으로 다층적인 위험 분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공익적 대출을 늘리려면 그 대출을 가능하게 하는 비용도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게다가 연대보증은 이미 공공 영역에서 걷어내고 있는 장치다. 국내에서도 혁신과 창업을 옥죄는 폐해를 막기 위해 2018년 공공기관의 법인대표자 연대보증이 전면 폐지됐고, 2025년에는 중소기업 옴부즈만의 권고로 전국 74개 지자체가 조례에서 연대보증 조항을 삭제했다. 오직 서울시만이 시대착오적인 낡은 금융의 잣대를 휘두르고 있다.

이 문제는 갑자기 불거진 것이 아니다. 수행기관들은 코로나19 당시부터 위기에 처한 기업에 긴급자금을 빌려주다 생기는 손실을 민간 중개기관 홀로 감당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당시 회의 기록에 따르면, 서울시도 돌려받지 못한 대출금의 일부를 기금이 부담할 수 있도록 조례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논의는 시정이 바뀌면서 제도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 끊어진 약속의 경위를 살피고 이제라도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일은 서울시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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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맞는 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일이다. 포용금융에도 위험을 함께 감당하는 책임이 필요하다. 신영복 아카이브
‘함께 맞는 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일이다. 포용금융에도 위험을 함께 감당하는 책임이 필요하다. 신영복 아카이브

앞으로의 사회연대금융에는 예상 손실을 감당할 재원과 공공·민간의 명확한 위험 분담 기준을 설계 단계부터 갖춰야 한다. 중개기관 평가에도 재무적 잣대뿐 아니라 사회적 성과까지 정당하게 반영해야 한다. 현장의 전문성을 빌려 쓰겠다면, 기관이 자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보장해야 한다. 포용금융의 성패는 단순히 ‘얼마를 빌려줬는가’로 측정되지 않는다. 은행 밖으로 밀려난 사람과 기업이 다시 일어설 기회를 얻었는지, 이 제도가 본래 목적대로 지속될 수 있는지 살피고 책임지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다.

민간에 위험을 떠넘기는 정책금융은 기만이다. 공공정책의 필요에 의해 만든 험지에서 기꺼이 위험을 감수한 파트너들을 법정으로 내몬다면, 앞으로 어떤 민간 기관이 사회적 가치를 위해 선뜻 나서겠는가. 서울시의회도 이 소송의 무리함을 지적하며 중재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서울시는 강제집행 중심의 소송을 거두고 대화와 조정에 나서야 한다. 서울시가 사회투자기금을 통해 진정 빌려준 것은 단순한 금전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마땅히 함께 감당해야 할 ‘위험’이었다.

[Tip] 기사 속 금융·법률 용어

· 이차보전(금): 이자 차액을 보상해 준다는 뜻으로, 돈을 빌린 사람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국가나 지자체가 대출 이자의 일부를 대신 내주는 지원금입니다.

· 상계처리: 서로 갚아야 할 빚(채무)이 있을 때 이를 ‘퉁치는(상쇄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받을 돈 100만 원과 줘야 할 돈 100만 원이 있을 때, 서로 주고받은 것으로 셈을 끝내는 방식입니다.

· 연대보증: 돈을 빌린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할 때 대신 갚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일반 보증과 달리, 돈을 빌린 사람과 똑같은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한 번 실패가 개인의 파산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커서 현재 공공기관에서는 대부분 폐지하는 추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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