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유묵 셀프 전시’ 유홍준, 국감서 고개 숙여···“미술사가로서 큰 실수, 공개 주저”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개인 소장품 ‘셀프 전시’ 논란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가 미술사가로서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공개하는 데 주저했습니다. 그게 저의 큰 실책이었습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19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개인 소장품 ‘셀프 전시’ 논란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서 국립중앙박물관에 보내 주신 깊은 신뢰와 박물관 직원들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가치가 저의 중대한 불찰로 한순간에 무너졌다”며 두 차례 머리를 숙였다.
논란은 지난 7월 개막한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 출품된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한 그릇의 밥도 나라의 은혜라는 뜻)이라는 글씨에서 비롯됐다. 박물관은 ‘한인(韓人) 박원근’이라는 서명을 근거로 충북 보은 출신 독립운동가 박원근(1912∼1950)의 유묵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8월10일 박원근이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1874∼1959)이 쓰던 이름이라는 외부 제보가 들어오면서 작품은 전시에서 철수됐다.
박물관은 전문가 검증을 거쳐 9월7일 이 작품이 박중양의 글씨라고 발표했다. 필적과 인장, 일본 유학 시절 박원근이라는 이름으로 글씨를 팔았다는 기록 등을 종합한 결과였다. 박중양은 일제강점기 중추원 부의장과 일본 제국의회 귀족원 의원 등을 지냈으며, 3·1운동을 진압하기 위한 자제단을 조직하는 등 친일 행위에 앞장선 인물이다.
박물관은 8월12일 사과문을 내고, 9월7일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다시 사과했다. 유 관장도 강연 자리에서 두 차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박물관과 유 관장이 네 차례 사과하는 동안 이 작품이 관장 개인 소장품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민의힘 조은희·정연욱 의원실이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관련 보도가 나오면서 소장자가 드러났다. 유 관장이 2019년 미술품 경매사 아이옥션에서 5만원에 낙찰받은 작품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유 관장은 경매 당시 ‘조선통신사 일행 박덕원’의 작품으로 소개된 글씨를 자신이 박원근의 작품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별도의 감정을 받았느냐는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는 “저 자신이 서예사의 전공자이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확신을 했던 겁니다”라고 답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두고 전시를 통해 개인 소장품의 가치를 높이려 한 것 아니냐는 ‘세탁’ 의혹까지 제기됐다. 유 관장은 이날 해당 작품은 부여문화원에 기증하려던 것이었다며 금전적 이득을 취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혹시 저 개인의 자랑이 될까 봐” 밝히지 않았다며, 박중양의 작품으로 확인된 뒤에는 “한 사람의 미술사가로서 좀 부끄러운 마음이 있어서 그냥 지나가 줬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저로서는 부끄럽고 참 깊이 뉘우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작품이 전시에 포함된 경위에 대해서는 밥상이라는 물질문화를 정신사·문화사의 맥락으로 확장하려는 기획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동학의 ‘밥이 하늘’이라는 사상이나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영규대사의 ‘일반시국은’이라는 말을 통해 밥의 의미를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해당 문구를 패널로 소개할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소장한 글씨를 제시했다고 했다. 유 관장은 “작품이 없으면 몰라도 작품이 있으면 유물로 하는 게 원칙”이라며 “마침 제가 부여에 보내려고 했던 작품이 있어서 그걸로 출품하게 됐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소장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사과를 거듭한 태도와 전시품 검증 과정을 강하게 질타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비겁한 처신” “이중적 태도”라고 비판했다. 조 의원은 유 관장의 해명을 두고 “그냥 회피하시는 것”이라며, 기획 단계에 없던 개인 소장품이 ‘관장 찬스’로 전시에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문화계 안팎에선 국립중앙박물관 수장으로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유 관장은 이날 질의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거듭 사과했지만, 사퇴 요구에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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