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가고 지역은 남는다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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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준 | 전국팀장
10월이면 전국 지방자치단체 달력이 축제로 빼곡해진다. 주말마다 음식축제, 문화축제, 거리축제가 열린다. 좋은 날씨와 수확의 계절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가을은 사람을 모으기 좋은 때다. 축제로 지역을 알리고 상권을 살리려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사람을 모으는 데 집중하다 보면 축제가 지역을 보여주는 창이 아니라 사람을 모으는 상품으로 변질되기 쉽다.
한 지역에서 출렁다리가 인기를 끌면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다리가 생기고, 야간경관이 관광객을 모으면 유사한 조명이 들어선다. 축제도 다르지 않다. 성공 사례를 참고해 유명 가수 공연과 먹거리 장터, 체험 행사를 더 한다. 음악축제와 맥주축제, 먹거리축제도 뒤따른다. 이른바 ‘미투 축제’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데도 비슷한 풍경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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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 성공 사례를 참고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형식을 가져오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지역만의 무엇을 담을지 고민하자는 얘기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많이 오게 할까’에 앞서 ‘우리 지역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마쓰리(전통 축제) 가운데는 신사나 사찰, 마을공동체와 연결돼 오랜 세월 이어져온 축제가 있다. 물론 일본은 전통, 한국은 기획이라고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다. 참고할 것은 축제 형식보다 지역공동체와 축제가 맺어온 관계다. 중요한 것은 형식보다 축제를 이어갈 만한 지역 고유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음식에는 음식의 역사가 있고, 장터에는 장터를 오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강과 오래된 길, 나루터, 장인과 농민, 어촌과 시장, 사투리와 민요도 지역의 자산이다. 오래된 국숫집이 있는 지역이라면 국수축제를 여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왜 그곳에서 국수가 발달했는지, 지역 농산물과 식문화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 이야기를 음식과 공연, 전시와 체험으로 엮는 것이다. 지역 역사와 생활에서 출발하면 다른 곳이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축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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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꼭 새로운 랜드마크를 세울 필요는 없다. 오래된 기록을 읽고 주민들의 기억을 듣고 시장 상인들의 이야기를 모으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사라져 가는 음식과 기술을 찾아 현대적인 기획과 디자인을 입히는 방법도 있다. 기획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인 동시에 이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새롭게 보여주는 능력이기도 하다.
최근 케이(K)-푸드의 인기는 익숙한 일상도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면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인에게 평범한 한강 라면이나 김밥이 외국인에게는 한국을 경험하는 관광 콘텐츠가 된다. 주민에게 익숙한 지역의 음식과 풍경, 생활방식도 외지인에게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데만 힘을 쏟기보다 이미 있는 것의 가치를 발견하는 데서 출발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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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숫자와 지역 상권 활성화도 중요하다. 다만 방문객 수만으로 축제의 성공을 판단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유명 가수의 공연이 끝나면 관광객도 떠나지만, 그 지역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기억에 남는다. 방문객 수뿐 아니라 이들이 지역을 얼마나 이해하고 돌아갔는지, 축제가 주민과 지역 상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새로운 지방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축제를 준비한다. 이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다. ‘다른 지자체가 쉽게 따라 하지 못하는 매력은 무엇일까?’ ‘주민들은 이 축제를 자기 동네의 축제라고 느낄까?’ ‘외지인들은 축제를 통해 이 지역을 기억하게 될까?’ 출렁다리를 하나 더 만드는 대신 지역 이야기를 발견하고, 유명 가수를 한 팀 더 부르는 대신 오래된 노래 한 곡을 되살리는 방법도 있다. 축제를 만들고 사람을 부르는 것과 지역에 이미 있는 것을 나누기 위해 사람을 부르는 것은 다르다. 축제를 만들기 전에 지역을 먼저 발견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100년 뒤에도 이어질 축제를 만드는 첫걸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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