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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11, 2026

소녀 28명 살았던 ‘수풀원’…“알몸인데 때리고 가사도우미로 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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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경기 시흥에서 운영된 보육원 수풀원의 원생 28명. 고아권익연대 제공
1963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경기 시흥에서 운영된 보육원 수풀원의 원생 28명. 고아권익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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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들이 모이면 어린 시절 겪은 고통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요. 좋은 말만 하고 싶은데, 아직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지난 7일 서울 중구에 있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근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장년의 여성 6명은 모두 경기도 시흥의 아동양육시설 ‘수풀원’(이사벨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동료들이다. 갓난아기 때 부모와 떨어져 원래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이들은 수풀원에서 ‘자매’가 됐다.

수풀원은 미국인 선교사 황자넷 여사가 운영한 보육원이다. 황 여사는 한국계 미국인인 남편 황성택 목사와 1952년 부산에 정착해 ㄱ사회복지재단과 이사벨보육원을 세워 아이들을 돌보며 선교 활동을 벌였다. 보육원은 1963년 시흥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름을 수풀원으로 고쳤다. 황 여사는 남편이 1968년 세상을 떠난 뒤에도 마지막 남은 여자아이 28명을 정성껏 길렀다. 자신의 성인 ‘황’과 남편의 본래 성인 ‘송’을 붙여 아이들의 이름도 지어줬다. 아이들도 황 여사를 ‘할머니’라고 부르며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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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의 행복한 삶은 황 여사가 신학생 정아무개씨와 그의 부인 송아무개씨를 1973년께 관리자로 들이면서 무너졌다. 당시 수풀원 원생들은 두 부부가 가혹 행위를 일삼았다고 증언한다. 송미령(가명·62)씨는 “눈이 많이 오는 날, 자매들이 각목으로 맞은 적 있다. 나는 당시 생리통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넘어졌는데, ‘왜 넘어지느냐’며 하복부를 강하게 얻어맞았다”고 말했다. 황애선(가명·64)씨는 “중학교 2학년 때, 목욕 중에 정씨가 갑자기 들어와 내 젖은 머리를 잡고 끌고 가 바닥에 내던지고 알몸인 나를 구둣발로 때렸다. 밥을 나중에 먹겠다고 했다는 이유였다”고 증언했다. 이런 일은 할머니의 눈을 피해 이뤄졌다고 한다. 김연자(가명·63)씨는 “보복이 두려워 할머니에게 학대 사실을 말할 용기도 없었다. 할머니 앞에선 화평한 척하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지난 7일 서울 중구 소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고아권익연대가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수풀원 피해자인 황애선(가명)씨가 발언하고 있다. 장종우 기자
지난 7일 서울 중구 소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고아권익연대가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수풀원 피해자인 황애선(가명)씨가 발언하고 있다. 장종우 기자

대부분의 수풀원 자매들은 16살이 되면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가사도우미로 보내졌다고 한다. 대법원장, 은행장, 사립학교 교장 등 부유한 집에서 일했지만, 정씨 부부에게 돈을 줘야 해 가질 수 있는 돈은 거의 없었다고 자매들은 입을 모았다. 1982년 추석께 황 여사가 세상을 떠나자, ㄱ재단이 운영하던 수풀원의 자매들은 더 위태로워졌다. ㄱ재단 관계자들이 수풀원을 처분하려 했기 때문이다. 자매들은 전국으로 흩어졌고, 머물 곳이 없어 노숙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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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수풀원 이야기는 2020년 황애선씨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당시 목사였던 정씨는 황애선씨를 정보통신망법의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다행히 2022년 1월 검찰이 정씨의 고소 사건과 관련해 ‘일부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중요한 부분은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황애선씨를 무혐의 처분했다. 고소를 계기로 아픔을 삼키고 살던 자매들이 뭉쳤다. 자매들은 2023년 정씨가 속한 교단인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 징계를 요구했다. 그러나 교단은 “교단에 입교하기 전에 발생한 일은 징계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제 자매들이 기댈 곳은 진실화해위뿐이었다. 한번은 좌절했다. 수풀원 자매 4명이 지난 2기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지만 각하됐다. 당시엔 집단수용시설이 조사 범위에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아, 일부 시설의 인권침해 사건만 조사가 이뤄졌다. 다만, 지난 2월 과거사정리법이 개정되면서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관리·감독을 받은 민간 사회복지시설도 진실화해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이에 지난 2월26일 3기 진실화해위 출범에 맞춰 4명의 자매들이 진실규명을 신청했고, 지난 7일 11명이 추가 신청했다. 정씨는 여전히 자매들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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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풀원의 ‘왕언니’ 황현숙(가명·65)씨는 “빨리 자매들이 옛날 생각 안 하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며 진상규명 신청이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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