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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20, 2026

수목원 오리 쉼터, 황금능수버들의 시간 [황금비의 수목원 가드닝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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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능수버들 아래 쉬고 있는 천덕꾸러기들. 천리포수목원 제공
황금능수버들 아래 쉬고 있는 천덕꾸러기들. 천리포수목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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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비 | 천리포수목원 나무의사

 요즘 천리포수목원을 방문하면 산책로 곳곳을 일렬로 행진하는 오리들을 만날 수 있다. 흰 깃털을 뽐내는 오리들의 이름은 ‘천리포 오리들(duck)’이라는 의미의 ‘천덕꾸러기’. 천덕꾸러기는 매해 오리농법을 하는 수목원에서 고용한 오리들이다. 5월 말 수목원으로 이사 온 새끼 오리들은 두달간 열심히 논의 잡초를 뽑아 먹고 똥을 싸며 통통하게 살을 찌운다.

황금능수버들 아래 쉬고 있는 천덕꾸러기들. 천리포수목원 제공
황금능수버들 아래 쉬고 있는 천덕꾸러기들. 천리포수목원 제공

무더위가 잦아들고 벼의 낟알이 영글기 시작하는 시기가 되면 천덕꾸러기들이 이삭을 뜯어 먹지 않도록 매일 아침 논 밖으로 꺼내둔다. 오전 8시에 집 밖을 나와 수목원으로 출근한 뒤 오후 4시쯤 퇴근하는 일상이 얼핏 보면 직장인과 비슷하지만, 하루 종일 진흙을 뒤적이며 먹이를 찾고 연못에서 물장구를 치는 모습은 한량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에 ‘팔자 좋은 오리 콘테스트’가 있다면 당당히 천덕꾸러기가 우승할 것이다. 다년간 천덕꾸러기들의 생활을 관찰한 결과 이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 바로 큰연못 모퉁이, 서늘한 초가을 바람에 가지를 하늘하늘 흔드는 황금능수버들 아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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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연못에 새로 심은 황금능수버들. 천리포수목원 제공
큰연못에 새로 심은 황금능수버들. 천리포수목원 제공
노란 빛이 나는 황금능수버들의 어린 가지. 천리포수목원 제공
노란 빛이 나는 황금능수버들의 어린 가지. 천리포수목원 제공

큰연못에서 수영하다 쉬러 나온 천덕꾸러기들은 이 나무 아래에서 털을 고른다. 마치 만리포 해변에 펼친 파라솔 같은 황금능수버들은 버드나무과 버드나무속에 속하는 키큰나무다. 1년생 어린 가지가 밝은 노란 빛을 띠어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바람이 부는 날이면 노란 가지와 잎들이 바람의 방향에 맞춰 좌우로 흔들리며 멋진 풍경을 빚어낸다. 수목원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황금능수버들은 흰버들과 수양버들의 인공교배종으로, 흰버들에서는 노란 가지의 특성과 추위에 강한 특성을, 수양버들에서는 가지가 아래로 떨어지는 특성을 물려받았다. 가을이 지나 잎을 다 떨구면 아래로 축 처진 가지의 모습만 남아 마치 귀신의 머리채 같은데, 황금능수버들은 그중에서도 특별하게 노란 염색을 한 귀신같아 상상력을 자극하곤 한다.

황금능수버들의 축 처진 가지. 천리포수목원 제공
황금능수버들의 축 처진 가지. 천리포수목원 제공
겨울철 잎이 떨어지고 나면 가지의 노란 색상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천리포수목원 제공
겨울철 잎이 떨어지고 나면 가지의 노란 색상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천리포수목원 제공

천리포수목원에서는 1976년 뉴질랜드의 한 양묘장에서 들여온 황금능수버들을 1981년 큰연못 주변에 심었다.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의 특성상 강변이나 연못 주변처럼 1년 내내 습하면서도 배수가 잘되는 토양에서 잘 자라고, 해가 잘 드는 양지를 좋아한다. 버드나무과 식물은 비교적 빠르게 성장하고 높이도 크게 자라기 때문에 심을 때부터 가지가 충분히 아래로 늘어지도록 넓은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좋다. 수목원에서는 황금능수버들 아래 꽃무릇 같은 키가 작은 화초를 심거나, 줄기 주변으로 붉은색의 홍가시나무 울타리를 가꿔 색상의 대비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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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의 천리포수목원 풍경. 오른쪽에 가장 크게 자란 나무가 바로 황금능수버들이다. 천리포수목원 제공
1990년대 후반의 천리포수목원 풍경. 오른쪽에 가장 크게 자란 나무가 바로 황금능수버들이다. 천리포수목원 제공

버드나무는 비교적 관리가 어려운 수종에 속한다. 왕버들을 제외하고 버드나무의 일반적인 수명은 30~50년 정도로 비교적 짧다. 빠르게 자라는 속성수인 만큼 가지의 강도와 내구성이 떨어지는데, 부러진 가지에서 생긴 상처에서 부패가 시작되거나 병해충의 피해를 보기 쉽다. 태풍 피해에도 매우 취약하다. 천리포수목원에는 1980년대 초반에 심은 거대한 황금능수버들이 큰연못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수목원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30년 넘게 자란 이 나무는 2010년대 중반부터 연이은 태풍으로 인해 큰 가지가 차례로 부러지기 시작하면서 고풍스러운 풍채를 잃어 갔고, 결국 2019년 태풍 링링으로 인해 쓰러져 고사했다.

‘전 직원이 비상근무를 했다’는 태풍 링링 당시 수목원 작업일지를 살펴보면, 피해 이후 2주간 피해목과 부러진 가지를 제거하고, 피해를 본 수목의 씨앗을 받고, 삽목 작업(식물의 가지 등을 잘라 흙에 꽂고 뿌리를 내리게 하여 새로운 개체로 번식시키는 일)을 진행했다는 등의 긴박한 흔적들이 보인다. 이때 쓰러진 황금능수버들의 가지를 삽목해 키워 다시 심은 개체가 바로 지금 천덕꾸러기들의 그늘이 되어주고 있는 나무다. 어떤 이유로든 수목원에 있는 나무들은 수명을 다하고 죽을 수 있지만, 언제든 다시 키울 수 있도록 미리 종자를 모으고 삽목묘를 키워 미래를 대비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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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오리에 비해 성격이 좀 소심하다’는 직원들 평가와는 달리, 수목원을 거니는 천덕꾸러기들의 꽥꽥거리는 울음소리는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우렁차다. 모험심이 강한 대장 오리의 뒤를 따라 수목원을 거닐던 오리들은 겨울이 되면 천리포 농가 곳곳으로 분양되어 알을 낳기 시작할 것이다. 연못에 빠져 숨을 헐떡이는 두더지는 뜰채로 구조해 흙밭에 놓아 주고, 길을 잃고 건물 로비에서 헤매는 제비나비는 잘 유인해 다시 문밖으로 날려 보낸다. 생명을 돌보는 일이 일상인 가드너에게는 수목원을 찾은 작은 손님을 세심하게 살피는 일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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