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는 사라지는 ‘돌담 쌓기’를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돌챙이·돌담 가치 재평가 받아야 할 때”
조환진 돌빛나예술학교 교장이 보수한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 문수동에 있는 4·3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화산섬 제주는 바다부터 산까지 사람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돌담이 존재해왔다. 제주 돌담은 쓰임과 장소, 쌓는 방법 등에 따라 저마다 이름도 지녔다. 바다에서 고기를 가두어 잡는 ‘원담’, 해녀들 쉼터인 ‘불턱’, 방어용 성곽인 ‘환해장성’과 ‘성담’이 있다. 집 주변 ‘집담’과 좁은 골목길 ‘올렛담’부터 밭 경계에 쌓은 ‘밭담’, 목장 울타리인 ‘잣성’에 이르기까지 제주 돌담에는 농경부터 어로·목축 문화까지 다양한 영역이 녹아 있다.
그러나 급격한 도시화와 개발 탓으로 전통 제주 돌담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제주 한림읍 동명리 문수동에 2015년 문 연 ‘돌빛나예술학교’는 제주 전통 돌담을 지키기 위해 누구나 쉽게 돌담 쌓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지난 8일 학교에서 만난 조환진 돌빛나예술학교 교장(52)은 오는 17~18일 마을에서 열리는 ‘돌 자파리 축제’ 준비로 분주했다. 조 교장은 “올해는 축제 참가자들과 함께 쓰레기·수풀로 가득했던 마을 공터에 돌담을 쌓아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소공원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돌빛나예술학교는 돌담 쌓기 아카데미와 찾아가는 수업 등을 운영해 왔다. 최근에는 제주 전역을 돌며 보수가 필요한 돌담을 무료로 고쳐주는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하효마을 4·3성(4·3 당시 마을 방어를 위해 쌓은 높은 담)을, 9월에는 용눈이오름의 무너진 산담을 교육생들과 함께 보수했다. 산담은 방목한 가축 침범이나 산불 피해를 막기 위해 무덤 주변에 쌓은 돌담으로, 국내외에서 보기 드문 제주만의 독특한 양식이다.
조 교장은 “봉사 겸 실습 교육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회당 5명 안팎의 소수 인원만 받는다”면서 “저를 포함한 ‘돌챙이’(석공을 뜻하는 제주어) 5명이 교육생을 1대 1로 지도한다”고 밝혔다. 교육은 무료로 진행되며,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하고 있다. 돌담을 화폭에 담으려는 화가부터 직접 밭담을 쌓으려는 농부, 돌 문화에 매료된 일반 시민까지 참여 동기도 다채롭다.
그는 지난해 돌담 기술 전승과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주도 명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처음부터 돌챙이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대학 졸업 후 정원사가 되기 위해 일했던 정원 관광지에서 돌담 쌓기 보조 역할을 맡은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고 김영갑 사진작가와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마당 돌담을 쌓으며 본격적인 돌챙이가 됐다.
조 교장은 “김영갑 갤러리 정원이 돌챙이로서 첫 일당을 받고 쌓은 돌담”이라면서 “당시 김영갑 선생님한테 오름과 같은 제주 돌담 특유의 자연스러운 곡선과 미학을 배웠는데 큰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 역시 평생을 돌챙이로 살아온 석공이었다. 조 교장은 “과거 돌챙이는 고된 직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천대받기도 했다”면서 “아버지는 아들이 같은 길을 걷는 것을 반대하셨지만, 설득 끝에 3년 동안 함께 돌집을 지으며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했다. 최근에는 친구인 소통전문가 김창옥씨 일을 도우며 돌담의 미학적 영감을 주고받기도 했다.
돌빛나예술학교에서 방사탑과 주변 돌담을 쌓고 있다. 돌빛나예술학교 제공
조 교장은 제주처럼 돌담 문화가 있는 해외와의 교류도 지속해왔다. 그는 “2017년부터 아일랜드·오스트리아 등 여러 유럽 국가의 돌 문화 축제에 참가하면서 국내외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제주 돌담만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의 여러 돌 유산 중에서도 제주 돌담은 표면이 거칠고 덩어리감이 큰 현무암의 마찰력을 활용해 시멘트나 흙 없이도 튼튼하게 담을 쌓는다”고 설명했다. 제주 돌담은 모난 자연석을 그대로 활용해 언뜻 얼기설기 쌓은 듯 보이지만 돌 틈새로 바람의 통로를 만들어 거센 태풍과 폭우도 견디는 견고한 구조를 지닌다.
조 교장은 “제주 바다에 강인한 여성 공동체인 해녀가 있다면 육상에는 척박한 돌밭을 일구고 그 돌을 지혜롭게 활용한 돌챙이가 있다”면서 “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제주와 해녀의 위상을 높였듯 제주 돌담 문화 역시 세계적으로 그 고유한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 조 교장은 2024년 민간 전문가들과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제주 전통 돌담의 무형유산 지정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필요성을 피력해왔다.
이에 제주 돌담 쌓기는 지난해 ‘제주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제주도 관계자는 “내년 3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신청, 2028년 등재를 목표로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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