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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September 25, 2026

삶에 지칠 때 책장을 펼쳐, 마음속 밑줄을 그어 봅니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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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함께 산책하며 삶의 고단함을 잠시 잊기도 하고, ‘반려식물’을 햇빛 잘 드는 창가로 옮겨 주며 그 푸른 생명력에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추석을 맞아 한겨레 .txt(텍스트) 팀 기자들이 자신만의 ‘반려책’을 소개합니다. 삶이 힘들고 막막할 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선 것만 같을 때, 세상사에 치이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실망할 때마다 손에 드는 책들이라고 합니다. 글을 읽으며 ‘나의 반려책’은 어떤 책인지 생각해 보고, 이번 추석에는 그 ‘반려책’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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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의 언어는 놀랍고 아름답다.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는 그 말씀들은 너무도 깊고 오묘해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들릴 정도다. 세상 만물이 있음(有)에서 나오되 있음은 다시 없음(無)에서 비롯한다는 파천황의 선언에서부터 그것은 그러하다. 2500년 전 사람 노자는 이미 우주의 근원이 빅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은 어떤가. ‘도덕경’ 36장에 나오는 이 말은 78장에도 등장하고, 76장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변주된다.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삶의 무리이다.” 노자의 생명평화론이라 하겠거니와, 78장에서는 또 다른 흥미로운 말씀이 이렇게 이어진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는 못한다. 바른말은 마치 반대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바른말이 반대되는 것처럼 들린다는 ‘정언약반’(正言若反)은 ‘도덕경’ 전체를 꿰뚫는 서술 원리와도 같다. “밝은 도는 어두운 듯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도는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며, 평탄한 도는 오히려 어그러진 것 같다”거나 “아주 곧은 것은 굽은 듯하고, 뛰어난 기교는 서툰 듯하며, 잘하는 말은 더듬는 듯하다” 같은 구절들을 보라. ‘도덕경’의 시선은 세속의 판단 기준에 매이지 않고 그것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역설과 반어로 가득한 이 책은 철학서나 사상서라기보다는 차라리 한편의 시로 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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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紅塵)에 찌들고 세사(世事)에 치여 마음이 사뭇 어지러울 때 ‘도덕경’의 아무 곳이나 손 가는 대로 펼쳐 본다. ‘왕필의 노자주’에는 도덕경 전문이 실려 있고, 왕필이 세세하게 주를 달아 놓았다. 이 오래된 책은 준비해 두었다는 듯 새겨들을 말씀을 어김없이 건네준다. 예전엔 무심코 지나쳤던 대목이 문득 새로운 뜻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게 한동안 ‘도덕경’의 책장들에 잠겼다 나오면 맑고 시원한 물 한잔 들이켠 듯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느낌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어렸을 때 라디오에선가 우연히 흘러나온 노래에 마음이 홀렸다. ‘모모’라는 노래였다. 멜로디가 은은하고 경쾌했다. 노랫말은 환상적이었다. 순수한 동심, 이국적 정취, 알 듯 말 듯 철학적인 메시지…. 동요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설핏 피터 팬 신드롬 같기도 했다. 알고 보니 전일방송 대학가요제(1978년) 대상 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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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다//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개짓하며//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모가 14살 소년 모하메드의 애칭이라는 건 한참 뒤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다. 프랑스 작가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1975년)을 읽으면서다. 소설 주인공이자 화자인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가 해주는 니스 이야기, 그러니까 “거리에서 춤추는 광대”, “그곳에 있다는 미모사 숲이며 종려나무들”,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는 것처럼 날개를 파닥인다는 흰 새들”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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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는 아랍계 무슬림 고아다. 홀로코스트 생존 유대인이자 “몸으로 벌어먹고 살았”던 로자 아주머니의 집에 산다. 모모처럼 매춘 여성들이 떠맡긴 아이들 예닐곱명이 우글거린다. 아래층 양탄자 가게의 하밀 할아버지는 세상 모르는 게 없고 눈이 맑다. 모모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사회 밑바닥 인생이다. 모진 기억과 힘든 몸을 달래가며, 때로는 자기 안으로 숨지만 대체로 같은 처지의 이웃들을 아닌 척 보살피며 살아간다.

모모는 또래보다 일찍 세상을 알아버렸다. 영악한 생존 요령도 터득했다. 가난, 차별, 외로움이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로자 아줌마가 늙고 병들어 죽음이 가까워지는데….

살다 보면 지치고 마음이 탁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이 소설은 아무 데나 펼쳐도 마음속 밑줄을 긋게 하는 유머와 따뜻한 문장들이 네잎 클로버처럼 깔렸다. 1975년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돼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았다. 그런데 로맹 가리가 1980년 자신이 에밀 아자르라고 밝히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해 파문을 일으켰다. 앞서 1956년 로맹 가리는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상을 받았다. 남들은 한번 받기도 힘든 공쿠르상을 두번이나 받은 로맹 가리의 삶을 알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오는 28일은 다큐멘터리 ‘코스모스’가 미국에서 처음 방영된 지 46돌이 되는 날이다. 1980년 출간된 동명의 책은 이듬해 한국에서 서광운의 번역과 ‘아폴로 박사’ 조경철의 감수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2004년엔 사이언스북스에서 ‘완전판’이 나왔고 22년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부를 돌파했다. ‘코스모스’는 번역본 논쟁과 다양한 리커버 판본을 낳으며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독보적인 과학 고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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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세대’인 내게 이 책은 삶의 굽이마다 손에 닿는 가장 가까운 ‘반려책’이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힘들 때 이 책을 펴면, 내가 우주의 티끌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별의 자식이며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과학적 진실은 막막한 현실 앞에서 이성을 찾게 하고 다정함을 동시에 건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려놓을 일을 구분하게 해준다.

이 책을 오래 곁에 두면서 자연스럽게 저자 칼 세이건과 삶을 함께한 동지이자 반려자였던 이들도 만나게 됐다. ‘공생자 행성’을 썼고 ‘가이아 이론’에 핵심적 영향을 준 진화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는 1957년 세이건과 결혼했다. ‘보이저호 골든 레코드’ 제작에 참여한 린다 솔츠먼은 세이건의 두번째 배우자였다. 1981년 결혼한 앤 드루얀은 ‘코스모스’의 공동 제작자이자 가장 유명한 헌사의 주인공이다. 이 명석한 세명의 여성은 ‘코스모스’라는 방대한 인류사적 기획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로서 좀 더 인정받고 기억될 만하다. 2020년 앤 드루얀이 지은 후속작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의 한국어판이 발행됐을 때 드루얀과 서면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우주적 사유의 끈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벅찬 느낌을 받았다.

결국 이 거대한 우주의 이야기는 “잠시 지구라 불리는 세계에 몸을 담고” 사는 우리가 외계 생물의 존재를 확인하려 애쓰면서 던지는 단 하나의 본질적 질문,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로 수렴된다. 누구든, 어떤 책이든 끝없이 읽고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본 책을 다시 보는 습관을 잘 기르지 못했다. 길들인 적도 없이, 읽은 책은 읽은 줄도 모르게 잊어버리면서. 한가위 밥상에 함께 오를 정치판도 비슷해 보인다. 실패한 이들이 실패의 백서를 다시 보지 않고, 실패한 줄도 까먹는다. 박근혜 탄핵 뒤, 문재인 정부가 실패하고, 윤석열이 한 일은 계엄이다. 그럼에도 극우보수 세력이 ‘대권 주자 1위’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을 등극시킬 때, 이 진영에선 ‘가치’를 ‘같이’의 반대말로 등재시켰다.

최근 콜롬비아 작가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53)가 “내 나라에선 이제 결코 평화를 이룰 수 없다”고 진단했을 때, 한국 사회에서 더는 불가능할 ‘통합’이 떠올랐다. 김대중이 좌우로, 노무현이 동서로 가로질러 그토록 갈구하던 어젠다. 분열과 혐오, 저주를 연료 삼고, 가치로 포장하는 ‘정치 셀럽들’의 세치 혀만 보인다.

권태와 낙망에 잠식될 때 펴 드는 책이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다. “슬퍼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라고 썼던 철학자(1952~2018). 2017년 7월 암 선고를 받고 쓴 글은 2018년 8월 임종 사흘 전 섬망이 오기 전까지 이어져 있다. “환자의 주체성”을 획득하려는 단 하나의 방식은 ‘고통’이며, 그때 자유, 노동, 사랑과 희망의 가치가 확연하고 존귀하여진다.

“그동안 내가 읽고 생각하고 확신하고 말했던 그것들이 진실이었음을 증명하는 시간 앞에 지금 나는 서 있다…”.

문학과 미학과 철학을 여생을 걸고 사유한 그가 한동안 언론 칼럼을 쓰며 경계한 게 “시민적 비판 정신의 부재”다. 어쩌다 이제 ‘시민’은 셀럽을 부양하는 유튜브 극장 관객이 되었는가. “가을날 마른나무처럼” “때아니게 툭툭 마음이 꺾인다”는 김진영에게 가을은 다시 오지 않았다. 아내를 두고 “나는 이 잘 웃는 여자를 떠날 수 있을까” 탄식한 그가 그럼에도 되새긴 말. “분노와 절망은 거꾸로 잡은 칼이다”를,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를, 다시 펴 읽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멍게는 성체가 되어 바위에 정착하면, 뇌를 포함한 신경계 대부분을 스스로 먹어 치운다. 움직일 필요가 사라지면 뇌도 사라지고, 뇌가 사라지면 더는 움직일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20대에 알게 된 멍게의 뇌과학은 이후 20년 동안 일종의 저주가 되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멍게가 되고 말 거야….

이후 삶은 원삭동물과 고등동물 사이를 끊임없이 오갔다. 때로 나아가고, 때로 멈춰 섰다. 바위에 붙은 멍게처럼, 따개비처럼 웅크린 채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만을 빨아들이고 내뱉으며 지내기도 했고 목적지도 모른 채 전진하기도 했다. 20대에 읽었던 조지 쉬언의 ‘달리기와 존재하기’를 다시 집어 들었을 때 나는 삶이 더는 나아갈 곳 없는 무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쉬언은 우리 각자의 닫힌 철방을 깨고 나오는 방법은 몸을 사용하는 것뿐임을, 정말 그 단 하나의 길임을 거듭 알려주었다.

달리기를 영적인 행위로 끌어올린 조지 쉬언의 책은 ‘의식적으로’ 달리는 세계인의 경전이다. “(러너는) 청교도적인 의미에서 ‘자유인’이 된다. 러너는 완벽한 몸을 만든다”고 말하는 그의 숭고한 철학에 나는 털끝만큼도 다가가 본 적이 없다. 장거리 러너도 아닐뿐더러, (몸이 아니라) 마음이 고통스러우면 이내 달리기를 그만두고 다시 바위에 부착되어버리는 삶에는 그런 숭고함이 없다.

그럼에도 조지 쉬언의 책을 ‘반려책’으로 꼽은 것은 이 책이야말로 내게 ‘존재론적 전환’을 허락한 책이어서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지금”이라는 걸 몸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군중의 일부”인 “구경꾼”이 되는 대신, 길 위에서의 내 모습을 즐길 수 있도록 말이다. 꼭 달리기만이 아니다. 수영장 레인에 서고, 자전거 도로에 서고, 달릴 수 있는 트랙 위에 설 때, 우리는 삶의 추상성을 벗어나 “자신에게 충실해지고 그대로 자신이 된다”고 믿는다.

여전히 때때로 멈춰 선다. 그럴 때 되든 안 되든 ‘달리기와 존재하기’를 펼친다. 다시 러닝화에 발을 구겨 넣는다. 그 이후는 언제나 같다. 삶은 다시 전진한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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