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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10, 2026

[산업이(異)면]‘하이리스크’가 ‘전략적 가치’로…트럼프 청구서에 끌려다닌 열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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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스패로우스 포인트에서 워싱턴DC 백악관으로 돌아온 뒤  언론에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스패로우스 포인트에서 워싱턴DC 백악관으로 돌아온 뒤 언론에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청구서는 한 장이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한국의 대미투자 사업을 공개했다. 텍사스 가스화력발전소 220억달러, 대형 원전 8기 1200억달러,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500억달러였다. 석유회수증진(EOR) 프로젝트에 84억달러를 투자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발표 이후 열흘이 지났다. 정부는 미국 측에 유감을 표명했고, 국회는 정부의 비공개 보고 녹취 유출을 둘러싼 고발 공방에 휩싸였다. 지난 6일 시작된 국정감사에서는 협상의 실체와 관세 합의의 한계가 도마에 올랐다. 사업성이 낮다던 알래스카 LNG는 전략적 가치가 있는 사업으로 설명이 달라졌다. 투자 여부와 규모는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다. 남은 질문은 하나다. 한국은 사업성이 부족한 투자를 거부할 수 있을까.

합의는 검토, 발표는 확정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본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재경부 제공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본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재경부 제공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다음 날 미국 측에 유감을 전했다. 원전 사업은 한국형 APR1400 2기와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6기 등 대형 원전 8기 건설을 위한 협력체계에 양국이 합의한 사안이다. 다만 사업 추진의 틀에 합의한 것과 개별 원전의 투자·건설이 확정된 것은 다르다.

알래스카 LNG는 간극이 더 컸다. 지난 1일 발표된 한미 공동 팩트시트에는 상업적 합리성과 국내법 요건 충족을 전제로 사업 검토에 착수한다는 취지만 담겼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팩트시트에 나온 것이 알래스카와 합의한 내용의 전부”라고 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것처럼 발표했다. 미국 측이 제시한 사업비는 670억달러에서 540억달러, 500억달러로 바뀌었다. 사업 전체 비용과 한국이 실제 부담할 투자액도 구분되지 않았다.

야당은 ‘굴종·무능 외교’라며 협상 전모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김성원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은 정부가 미국과 투자 규모를 협의해 놓고도 국회에는 검토 단계라고 설명한 것이냐고 따졌다.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어디까지 동의했고 미국의 발표를 사전에 인지했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유출된 보고, 드러난 협상 간극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발표 일주일 전 불거진 국회 비공개 보고 녹취 유출 논란도 국감에서 다시 소환됐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국회 산자위와 재정경제위원회에 대미투자 현안을 비공개로 보고했다. 텍사스 가스발전소를 1호 사업으로 추진하고, 원전과 알래스카 LNG는 아직 추진 의사를 결정하지 않은 사업이라는 내용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녹취록이 기자단에 유통됐다고 주장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거의 간첩 행위”라고 말했다. 누가 녹음해 누구에게 전달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보고에서 미정이었던 사업은 미국 대통령의 발표에서 투자계획이 됐다. 그 차이가 협상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 정부가 국회에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결과인지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출자 수사에만 관심이 쏠리면 협상 내용을 검증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다.

15% 관세의 불완전한 안전판

국내 공방이 커지는 사이 미국의 압박은 거세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시간) 한국이 합의하지 않으면 비용을 두 배로 청구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통상 협상의 성과로 내세운 관세 15%도 논란이 됐다. 김 장관은 미국이 15%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면서도 합의문에 상한을 직접 명문화하지는 못했다고 인정했다. 관세 15%를 얻었다고 해서 사업성이 부족한 투자를 거부할 안전판까지 확보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위험은 그대로인데 전략적 가치는 커졌나

김정관 산업통산부 장관이 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산자중기위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관 산업통산부 장관이 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산자중기위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일 산자위 국감에서 김 장관은 알래스카 LNG에 대해 “사업성이 분명히 낮아서 그동안 안 됐던 건 맞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중동 전쟁을 거치면서 새로운 전략적 가치가 생긴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했다. 투자 확정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아직 아니다”라고 답했다. 김 장관은 지난해 11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알래스카 가스관을 ‘하이리스크’ 사업이라며 투자 대상으로 들어오기 쉽지 않다고 했다. 사업성이 낮다는 판단은 그대로 둔 채 에너지 안보 측면의 가치를 앞세운 셈이다.

전략적 가치가 커졌다고 건설비와 생산·운송 비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장기 구매계약과 LNG 수요 전망, 사업 지연 가능성까지 따져야 투자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다.

여당 내에서도 우려가 나왔다. 박지혜 민주당 의원은 LNG 수요가 예상보다 빨리 줄면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하는 좌초자산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략적 가치를 내세운다면 그 값이 얼마인지, 손실은 누가 부담할지도 따져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은 거부할 수 있는가

여야는 국익을 지켰느냐, 협상 참사냐를 두고 맞섰다. 비공개 보고의 유출 경위를 밝히는 데는 힘을 모았다. 하지만 사업성이 부족한 투자를 한국이 실제로 거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국감에서도 명확히 나오지 않았다.

형식적인 거부 조건은 있다. 팩트시트는 알래스카 LNG 사업 검토에 상업적 합리성과 국내법 요건 충족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미국 측의 구체적인 사업 조건을 바탕으로 경제성을 검증하고 국내 절차를 마친 뒤 투자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원전 선급금 100억달러 역시 상업성 검증과 국내 절차 완료가 전제라고 밝혔다.

문제는 거부에 따르는 대가다. 김정관 장관은 양해각서상 사업에서 철수하면 미국이 관세를 올리는 등 보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최종 실효 관세율이 15%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보장하는 명시적 상한은 합의문에 담기지 않았다. 투자하지 않을 권리는 남아 있어도 그 권리를 행사할 때 감당해야 할 통상 부담은 불확실한 셈이다.

한국은 이미 한 차례 알래스카 LNG 사업에 선을 그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사업의 상업적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후 미국이 연방정부 관여와 기자재 관세 인하, 장기 구매계약 등 지원책을 제시하면서 사업은 다시 검토 대상에 올랐다. 이번에 달라진 것은 사업의 경제성이 입증됐다는 사실이 아니라 투자 규모가 적힌 미국 대통령의 발표가 먼저 나왔다는 점이다. 통상업계에서는 투자할 이유뿐 아니라 투자하지 않을 조건까지 확보하는 것이 이번 협상에서 한국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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