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MaverickLOCAL ELECTIONS 2026: Ramaphosa admits shortcomings, Hill-Lewis woos Mamelodi, Malema condemns murder while Zuma revenge-rantsThe Jerusalem PostFormer IDF chief Halevi says Oct. 7 was 'preventable,' but was not 'betrayal from within'PunchReferee accidentally breaks player’s leg after collisionColliderChristian Bale’s $214M True-Crime Epic Officially Lands on NetflixZDF heuteEntdecken Sie das ZDF-Nachrichtenstudioالشرقاستطلاعان: رئيسة بلغاريا بالإنابة تتصدر جولة الإعادةQuemMárcia Goldschmidt preocupa fãs ao surgir hospitalizada e desabafar sobre resultado de examesWirtualna PolskaMetalowe ostrze w halloweenowym cukierku. Policja bada sprawęRMF24„Rozpoczął rozmowy z partiami arabskimi”. Niepokojące doniesienia z IzraelaPopular ScienceAmazon’s early Black Friday deals have started and these 21 products are at their 2026 lowsVarietyOscar-Nominated Director James Longley Talks His Afghanistan Documentary ‘Mohabat’ and Why His Next Film Will Center on the Rohingya Genocide (EXCLUSIVE)TagesschauAusschreitungen nach Protesten: Unterwanderung oder spontane Eskalation?
The Daily Newsstand · Free, Always
Sunday, November 1, 2026

노리치의 달콤한 향기 [이대한의 낭만연구실]

Translate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광고

이대한 |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교수

역사는 공동체의 운명을 돌이킬 수 없이 뒤바꾸어 놓는 사건들의 연속이다. 잉글랜드의 역사에서 ‘노르만 정복’이 그러한 사건 중 하나일 테다. 1066년,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서 출발한 군대가 잉글랜드 남부 해안에 상륙한다.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이 이끄는 군대는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앵글로색슨 군대를 격파하고, 그해 크리스마스 윌리엄은 잉글랜드 국왕으로 즉위한다. 잉글랜드 왕좌의 주인이 바뀐 것이다.

광고

새로운 지배계급이 된 노르만인들은 그들의 힘과 권위,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잉글랜드 곳곳에 거대한 성과 성당을 세운다. 노르만 정복으로부터 30년이 지난 1096년, 잉글랜드 동부의 노리치에도 노르만 양식의 대성당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천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대성당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광고

광고

케임브리지에서 한시간 반 기차를 타고 고풍스러운 노리치역에 도착했다.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들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시내를 가로질러 대성당에 도착할 즈음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잿빛 하늘 아래 우뚝 솟아 있는 대성당의 위용에 압도되었다. 고층빌딩이 흔해 빠진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인 나에게도 이 정도의 위압감을 주는데, 당시 이 대성당을 보거나 직접 지어야 했던 백성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노르만 지배층이 이토록 거대한 건축물을 세운 이유를 절로 체감하며 대성당으로 걸어 들어가자, 제일 먼저 황금빛의 거대한 물그릇이 나를 맞이했다. 세례식에 쓰이는 세례반이었다. 천년 역사의 성당에 어울리지 않게 반질거리는 구리 세례반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바로 이 세례반이 20세기 말 문을 닫은 초콜릿 공장에서 토피를 만들던 구리 솥 두개를 합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광고

어쩌면 그 구리 솥들보다 더 나이가 많을 가이드 할아버지가 ‘롤로’(Rolo)라는 초콜릿을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주며 어릴 적 노리치에 풍겼던 달콤한 초콜릿 향기에 대해 들려주었다. 중세부터 직물 산업으로 번성한 노리치에는 근대에 들어 제과업이 발달했다. 특히 19세기 후반부터는 초콜릿 공장이 도시 한복판에 자리 잡았고, 많은 노리치 사람들이 영국 전역과 전 세계로 팔려나간 초콜릿을 만들거나, 공장에서 풍겨 나오는 초콜릿 향기를 맡으며 자랐다.

하지만 많은 산업이 그러했듯, 20세기가 저물어 가면서 노리치의 제과 산업도 쇠락했다. 롤로를 비롯한 수많은 초콜릿을 만들던 로운트리 매킨토시는 1988년 스위스의 다국적 식품기업 네슬레에 인수되었고, 8년 후인 1996년 노리치의 공장은 결국 문을 닫았다. 그즈음 한때 그 공장에서 달콤한 토피를 만들던 두 개의 구리 솥은 대성당으로 옮겨져 세례반으로 재탄생했다.

금빛으로 반짝거리는 세례반 옆에서 가이드 할아버지가 도시의 역사와 얽힌 에피소드를 그럴듯하게 들려주었다. 토피를 만들던 구리 솥이 본래의 쓰임을 다하고 세례반이라는 성스러운 기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 죽음을 거쳐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는 기독교 세례의 상징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해석을 들으며 예술적 창의성에 감탄하기보다는 오히려 오묘한 비애를 느꼈다. 이 특별한 세례반과는 아마도 다른 운명을 맞이했을 수많은 솥들, 그리고 쓸모를 잃은 솥들처럼 공장을 떠나야 했던 노동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광고

초콜릿 공장이 문을 닫을 때까지 아마도 많은 사람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자신이 일하던 공장을 지키기 위해,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하지만 결국 공장은 문을 닫았고, 공장이 있던 자리는 쇼핑몰이 되었다. 천년 전 잉글랜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8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바이킹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때로는 영토를 빼앗기고 되찾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바이킹의 후손인 노르만인들에게 정복당했다.

거대한 역사적 변화 앞에서 한 개인은 미약하고 무력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 전쟁, 기후변화. 공동체의 운명을 돌이킬 수 없이 바꾸어 놓을 변화들이 연이어 벌어지는 요즘, 나도 그러한 무력감을 많이 느낀다. 어쩌면 세례반이 희망이 아니라 비애의 상징으로 다가온 것은 대성당처럼 크고 강한 것만이 살아남고, 미약한 개인들은 역사의 파도에 휩쓸려 다닌 천년의 역사에 감정이입이 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흥미롭게도 노르만인 시조의 이름 또한 노리치에서 만들어지던 초콜릿 이름과 거의 똑같은 ‘롤로’(Rollo)다. 그 롤로의 후손은 여전히 영국을 통치하고 있고, 노리치 대성당도 천년 동안 위용을 계속 뽐내고 있지만, 그 안에 덩그러니 놓인 세례반은 쓸쓸하게 달콤한 롤로 초콜릿의 향기가 도시를 떠났음을 증언하고 있다.

View the original on 한겨레 →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