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목도리 뜨던 여성들이 세상을 바꿨다고?···뜨개질에 숨겨진 저항의 역사
2024년 12월 ‘12·3 불법 계엄’을 규탄하는 시위대가 ‘내란 수괴 처벌 하라’는 문구가 쓰인 뜨개 담요를 덮고 있는 모습. 정효진 기자
2025년 5월 서울 은평구에서 열린 ‘광장에 나온 뜨개’ 전시에 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우혜림 기자
추운 겨울, 거리를 걷다 보면 색색깔 뜨개 옷을 입은 나무들이 눈에 띈다. 뜨개질로 만든 작품을 가로수나 벤치 등 공공 조형물 위에 씌우는 거리 예술 ‘얀바밍’이다. 게릴라 니팅, 니트 그라피티라고도 불리는 이 활동은 2005년 미국 텍사스주의 예술가 마그다 세이에그로부터 시작됐다. 삭막한 거리에 다양한 색감을 덧씌워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같은 행위는 단순히 예술적 의미만 가지지 않는다.
여성적 행위, 가사노동의 하나로만 여겨지던 뜨개질을 거리에 내놓으며 공동체 일원으로서 여성의 존재를 드러낸다. 뜨개는 환경, 평화, 인권, 정치 등 다양한 사회적 의제에 목소리를 내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2024년 12·3 불법 계엄을 규탄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 이들도 뜨개를 둘렀다. 시위대는 ‘탄핵’, ‘내란 수괴 처벌하라’는 글씨를 뜨개로 떠 몸에 덮고 광장의 추위를 버텼다. 이때 뜨개는 개인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매개로 작용한다.
이 같은 뜨개의 의미를 역사적·사회적으로 풀어낸 책이 같은 시기 나왔다. <실을 잇는 여자의 손>, <어떤 뜨개도 개인적이지 않다>이다.
실을 잇는 여자의 손
니콜 네리그 지음 | 이영아 옮김 | 돌고래 | 368쪽 | 2만2000원
<실을 잇는 여자의 손> 저자는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는 심리학자이자 뜨개 애호가다. 파국을 맞은 결혼, 새로 시작한 일에서 오는 불안감 등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느꼈을 때 그는 취미용품 가게에서 뜨개질 키트를 집어 든다. 손을 움직인 만큼 결과가 보이는 뜨개질은 그에게 “실체가 있”는 행위였고 “복잡다단한 심리치료 업무에서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힘이었다. 그는 뜨개가 무엇이기에 이 같은 위로가 되는지 찾아 나선다.
오랜 옛날부터 뜨개질과 여성은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직물 노동은 비교적 안전한 데다 언제든 중단할 수 있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거나 아이를 돌보는 일과도 병행” 가능하다는 점에서 여성의 일로 여겨진다. 실패를 뜻하는 영어 단어 ‘distaff’는 여성, 모계를 가리키는 데도 쓰인다.
여성의 일이었기에 오랫동안 평가절하되기도 했던 뜨개질은 1800년대 후반부터 사회로 나오기 시작한다. 여성들은 다양한 무늬와 직조감을 보여주는 크레이지 퀼트를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미술사학자 재닛 캐서린 벌로는 <퀼트 수업>에서 1880년대 크레이지 퀼트 열풍과 미국에서 부상한 제1물결 페미니즘을 연결해 “(여성들은) 무규칙하고, 다채롭고, 자유분방하고, 개성 넘치고, 종잡을 수 없는 디자인들. 먼저 그것을 직물에 적용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그들 자신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사직단 인근 서촌 거리에서 나무가 뜨개질로 뜬 옷을 입고 있다. 우혜림 기자
뜨개질 하는 여성의 모습. 이윤정 기자
페미니즘 운동에서 여성의 직물 노동이 환영만 받았던 것은 아니다. 일부 페미니스트는 뜨개와 바느질을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라 여겨 멀리하기도 했다. 예술을 통한 사회 운동이 가진 가치를 폄훼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예술과 결합한 사회운동만큼 공동체를 정서적·인간적으로 연결하기 쉬운 것은 없다고 말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미국의 니트웨어 디자이너 린지 디건이 만든 온라인 플랫폼 ‘니트닷클럽(KNIT.club)’은 그러한 예 중 하나다. 18~35세 뜨개인을 대상으로 한 니트닷클럽은 퀴어와 BIPOC(흑인·원주민·유색인종)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연대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안전한 취미 공동체 안에서 그들은 사회적 재난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나눴다.
1910년 영국의 여성사회정치연합은 여성의 투표권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다 투옥된 적이 있거나 투옥 중인 여성 80명의 서명이 수놓아진 현수막을 만들었다. 현수막은 1910년 6월 약 1만명의 여성들이 글래스고 거리를 약 3㎞ 행진하며 벌인 ‘감옥에서 시민권으로’ 시위에서 사용됐다.
어떤 뜨개도 개인적이지 않았다
로레타 나폴레오니 지음 | 장상미 옮김 | 유유 | 232쪽 | 15300원
정치경제학자이며 뜨개인인 로레타 나폴레오니가 쓴 <어떤 뜨개도 개인적이지 않다>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한다. 저자 역시 자신의 삶에 ‘재앙’이 닥쳤다고 느꼈을 때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배웠던 뜨개를 통해 절망에서 빠져나온다. <실을 잇는 여자의 손>이 여성과 직물의 관계를 돌아보기 위해 페루 안데스 지방을 비롯해 다양한 지역에서 직물을 짜는 여성들을 만나는 등 역사적 맥락에 초점을 맞춘다면 <어떤 뜨개도 개인적이지 않다>는 개인과 주변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뜨개 문화에 대해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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