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뭔데]분기에 100조 버는데 외국인은 왜 삼전닉스를 파는 걸까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들이 쓰는 [경제뭔데] 코너입니다. 한 주간 일어난 경제 관련 뉴스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전해드립니다.
1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와 코스닥,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분기에 100조원을 버는 등 역대급 실적을 내놓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의 ‘팔자’ 행렬은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6일엔 외국인이 8거래일 만에 ‘사자’로 돌아섰지만 올 한 해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팔아치운 순매도 금액의 대부분은 ‘삼전·닉스’였습니다.
두 기업이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외국인의 매도세는 국내 증시 전체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요.
이번 주 [경제뭔데]에서는 외국인이 왜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국내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는지, 외국인 자금이 국내 증시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살펴봤습니다.
외국인 순매도에 ‘40만전자’ ‘200만닉스’를 바라보다 내리막길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는 지난 8일 역대급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연결 기준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107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82.5%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했습니다.
국내 기업이 분기 영업이익 1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를 제외하면 글로벌 주요 기업 중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인 거죠.
그러나 호실적에도 실적 발표 당일 삼성전자 주가는 2.42% 하락했고, 코스피 역시 2.62% 내렸습니다. 기록적인 실적이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한 겁니다.
이후에도 반도체 대형주의 하락세는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15일 전장보다 9.48% 내린 21만원에, SK하이닉스는 11.06% 내린 126만20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지난 7월28일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한 겁니다.
두 반도체 기업의 주가가 호실적에도 부진한 배경에는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세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대차증권 집계에 따르면 외국인은 올해 들어 코스피 시장에서 약 203조원을 순매도했습니다. 이 중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의 순매도액만 약 176조원이었습니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금액의 86.7%에 달한 거죠. 외국인 매도세가 반도체 대형주에 집중된 셈입니다.
외국인의 지속적인 매도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외국인 지분율도 하락하는 추세입니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지난 8일 기준 46.38%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월 이후 약 18년 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외국인 매도세 받아낼 ‘구원투수’도 없다
문제는 외국인의 매도세를 받아낼 국내 매수 주체가 마땅치 않다는 점입니다. 개인 투자자들은 코스피가 7000포인트 이상을 웃돌던 시기에 매수를 대거 늘렸습니다. 하지만 이후 증시가 급락하면서 고점 부근에서 주식을 사들인 개인 상당수가 손실을 입은 상황입니다. 현재 개인의 추가 매수 여력은 제한적이란 얘기죠.
기관과 연기금 역시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국내 증시의 ‘큰손’인 국민연금은 올해 상반기 국내 증시 상승으로 국내 주식 비중이 확대됐지만 리밸런싱(자산 재배분)을 유예했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 하락장에서 국내 주식을 추가로 사들일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증시 수급을 뒷받침하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처럼 개인과 기관·연기금의 매수 여력이 약해지고 기업의 자사주 매입까지 줄어들면서 외국인의 매도세가 국내 증시에 미치는 충격이 커지고 있습니다. 국내 증시가 반등하기 위해서는 외국인의 매도세가 진정되고 다시 매수세로 돌아서는 것이 중요해진 상황이 돼버린 거죠.
외국인이 국내 반도체주를 파는 이유
그렇다면 외국인은 왜 반도체 기업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내놓고 있는데도 국내 주식을 팔아치우는 걸까요.
우선 미국 장기 국채 금리 상승이 주요 배경으로 꼽힙니다. 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5%를 웃도는 높은 수준을 유지해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주식의 투자 매력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면서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겁니다.
통상 미국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 글로벌 투자자들은 위험자산인 신흥국 주식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면서도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미국 국채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에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 장기화와 고유가에 따른 물가 상승·금리 인상 우려도 겹쳤습니다. 이처럼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외국인이 위험자산 투자 비중을 줄이면서 국내 증시에서 자금을 회수할 유인이 커지게 되는 거죠.
반도체 업황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입니다. 시장에서는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 인프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가운데 실제 투자 수익이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투자 대비 수익이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이 확산되면 빅테크 기업들이 투자를 축소하고 반도체 수요도 둔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창신메모리 등 중국 반도체 기업의 기술 발전과 경쟁 심화 가능성 역시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는 부담입니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을 내놓고 있음에도 시장의 관심은 실적 자체보다 앞으로도 이러한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로 옮겨가고 있는 겁니다.
외국인이 돌아오려면 필요 조건은?
역대급 실적에도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는 국내 증시가 다시 상승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외국인의 귀환에 달려 있는데요.
그렇다면 외국인 자금이 국내 증시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일단 정치적으로는 다음달 3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미국 중간선거가 주요 분기점으로 꼽힙니다.
선거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되고 미국과 이란 간 긴장까지 완화된다면 외국인의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회복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지정학적 긴장 완화가 국제유가 안정으로 이어질 경우 미국의 물가와 금리 상승 압력을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달 말 예정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발표도 관건인데요. 두 회사의 향후 반도체 수요 전망과 중국 반도체 기업과의 경쟁에 대한 입장 등이 외국인의 투자 판단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두 기업의 추가 자사주 매입을 비롯한 주주환원 정책도 변수로 거론됩니다. 기존 자사주 매입이 종료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주주환원책이 발표된다면 주가 하락을 방어하고 투자심리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10월 말 실적 발표와 11월 초 미국 중간선거, 11월 중순 앤트로픽 상장까지 이벤트를 소화하면서 외국인 순매수가 점차 돌아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공포에 눌리지 말고 변화의 시점을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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