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음, 민망함, 열등감…다양한 감정 품은 ‘부끄러움’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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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 문화 특징 가운데 하나가 스몰토크다. 날씨나 주말 계획, 취미나 음식 등 가벼운 주제로 잠깐 나누는 대화다. 스스로 적대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는 최소한의 관계적 안전장치이자 사회적 의례인데 둘 사이에 빠르게 물꼬를 트는 데는 좋지만, 그 이상으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한국인 같은 동아시아 사람들에게도 이런 문화가 어색하지만, 다른 서양 문화권 사람들도 대개 그런 대화가 피상적이고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영어권 전반의 문화가 그래서 유별난데 물론 개인차도 크니 그 안에서도 성격이 내향적이라면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가벼운 칭찬도 여기에 들어간다. 옷차림이 멋있다든가 하는 소소한 방식이 많고, 받는 쪽에서 고맙다며 화답하고 때로 상대에게 칭찬을 돌려주기도 한다. 꼭 스몰토크 형식이 아니더라도 일상 전반에서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도 이와 유사하게 관계에서 윤활유 구실을 한다. 미국은 개인주의가 워낙 강조되다 보니 자존감을 적당히 서로 높여주는 게 예의인 셈이다. 반면 동아시아는 위계질서 유지나 화합 차원에서, 북유럽은 평등주의에서 유래했다는 게 좀 다르긴 해도, 겸손이 미덕인 사회에서 칭찬을 받으면 부끄럼을 타는 이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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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형용사 ‘부끄럽다’ 또는 동사 ‘부끄러워하다’는 크게 세가지 감정 상태를 포괄한다. 남들 앞에 나서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성격 때문에 스스럼을 느껴서 수줍거나 남들이 너무 추켜세워서 쑥스러울 때, 길을 가다가 넘어져서 속된 말로 쪽팔리거나 혹은 웬만하면 알아야 할 상식 같은데 모른다는 게 들통나서 민망할 때, 자격지심이나 열등감 혹은 양심의 가책으로 떳떳하지 못할 때 등이 있다. 각각의 경우에 두가지 사례를 들었듯이 여기에서 더 세분할 수도 있겠다. 뒤로 갈수록 좀 더 오래 이어지고 무거운 감정이다.
‘부끄러움’ 하나가 이런 여러 감정을 다 감싸는 것은 한국어에서만은 아니다. 대다수 언어에서도 비슷하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수줍다’나 ‘민망하다’처럼 각각을 따로 일컬을 수도 있으나, 큰 틀에서 ‘부끄럽다’의 지붕 아래 다 들어간다. 무게와 지속성이 다를지언정 기본적으로 남들 앞에서 제 마음이 웅크려진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어나 스페인어 같은 유럽 언어 다수도 부끄러움을 뭉뚱그릴 때가 많은데, 유독 영어는 이런 세세한 감정들을 한 낱말로 묶지 않고 나누는 경향이 크다. 즉 shame(셰임, 부끄러움·수치)의 파생어 ashamed(어셰임드)는 이유가 어떻든 떳떳하지 못해서 수치심을 느끼는 무거운 상황에서만 쓰고, 수줍어할 때의 shy(샤이)나 일시적으로 창피하거나 민망할 때의 embarrassed(임배러스트)는 다른 칸에 둔다. 후자 두가지는 어느 정도 겹치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누가 자신을 추켜세우는 상황에서 원래 수줍은 성격이 아니더라도 멋쩍거나 어색해서 수줍어하다 보면 민망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부끄러움을 나타내는 말로 self-conscious(셀프-컨셔스)도 있다. 글자 그대로는 ‘자기를 의식하는’이니 자의식이 강하다는 뜻으로 자칫 오해하기 쉽다. 이 말은 수동적 의미의 자의식 과잉과도 비슷해서 남들의 눈으로 보는 나를 의식한다는 뜻이라 결국은 남을 의식하는 것과도 같다. 자기 내면을 자기 객관화해서 의식하는 self-aware(셀프-어웨어)와는 생김새가 언뜻 비슷해도 사실상 정반대에 가깝고, 남들이 나의 외모나 언행, 능력 등을 어떻게 볼지 신경 쓰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종류의 부끄러움에 영어는 shame이나 그 파생어를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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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shame의 범주를 매우 무겁게 한정한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다소 가벼운 감정적 평가를 넣은 탄식에도 쓴다는 점이 특이하다. 심심찮게 보이는 오역 가운데 하나가 It’s a shame(이츠 어 셰임)을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기계적으로 옮기는 것이다. ‘버리면/썩히면 아깝다’를 뜻하는 a shame to let it go to waste(어 셰임 투 렛 잇 고 투 웨이스트)를 ‘낭비하면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옮기면 원뜻에 없는 도덕적 판단을 넣은 꼴이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기계번역은 한국어의 맛을 다 구별해서 웬만하면 제대로 옮긴다. “아직 쓸 만한데 버리면 아깝다, 네가 못 온다니 아쉽다, 그런 사고가 생겨서 안타깝다”를 영어 It’s a shame that(이츠 어 셰임 댓) 구문으로 만들어 다시 구글 번역에서 돌리면 ‘아깝다, 아쉽다, 안타깝다’라는 세 낱말이 다 따로 나온다.
한국어와 영어의 감정과 관련된 어휘는 이와 관계된 상황의 범위가 사뭇 다르다. 예컨대 sorry(소리)는 ‘미안하다/죄송하다’만이 아니라 ‘안쓰럽다/안됐다’를 뜻하기도 한다. regret(리그렛)은 ‘후회’만이 아니고 ‘유감’도 뜻하는데, 전자의 뜻은 화자 스스로가 겪는 마음을 나타내고 후자의 뜻은 흔히 타인의 상황을 두고 느낀 바를 전할 때 쓰인다. 공감의 여지는 있어도 지나친 감정 이입은 자제하고 거리 두기를 하는 뉘앙스다. 이와 비슷하게 shame도 공감보다는 다소 관조적인 상황 평가에 더 가깝다.
아까움, 아쉬움, 안타까움을 한발짝 떨어져 무겁지 않게 탄식할 때 영어처럼 ‘부끄러움’이란 단어를 활용하는 언어는 드문 편이다. 독일어는 손해( schade), 스페인어는 벌(pena), 이탈리아어는 죄(peccato)로 나타낸다. 다른 유럽 언어들도 이와 비슷하다. 앞서 소개한 표현도 원뜻의 무거움은 희석된 쓰임인데, 원뜻을 살려 ‘아직 쓸 만한 물건을 버리면 손해다’, ‘벌/죄받을 일이다’로 이해해도 다 말은 된다.
‘아깝다, 안타깝다, 아쉽다’는 서로 구별되지만, 어느 정도 호환도 된다. 쓸 만한 것을 버리면 일단 아깝지만, 안타깝거나 아쉽기도 하다. 아직 더 활약할 사람이 세상을 뜨면 매우 안타깝지만, 재능이 아깝고 부재가 아쉽다. 앞서 ‘낭비하면 부끄러운 일이다’란 말을 ‘버리면 아깝다’의 오역으로 소개했으나 우리가 지구 자원의 낭비를 지속한다면 지구적 수치(global shame)라는 오욕을 남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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