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원전 사업’ 100억달러 선지급 시점 다가오는데···중간선거 민주당 압승에 “계산기 다시 두드려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 9월 22일 국회 산업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 전략적투자의 운영 및 관리를 위한 특별법’에 따른 대미투자 사전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면서 미국 내 원전 8기 건설사업에 연말까지 최대 100억달러(약 13조6400억원)를 선투입하기로 한 정부 방침을 두고 신중론이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 데이터센터 확장세가 둔화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전력수요 급증을 전제로 한 이 사업의 상업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충분한 검증을 위해서는 연말이라는 송금 시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8일 업계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미국 중간선거 결과는 한·미 원전 건설 합의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합의는 한국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약속한 2000억달러 규모의 전략투자 가운데 약 1200억달러를 투입해 미국에 대형 원전 8기를 건설한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양국은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6기와 한국형 APR1400 2기를 세 단계에 걸쳐 건설하기로 했지만, 부지 등 구체적인 사업 조건은 확정되지 않았다. 한국형 원전의 미국 진출 길을 열었다는 의미가 있지만, 실제 투자에 앞서 상업적 합리성을 검증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우선 미국 민주당이 원전 확대에 대체로 찬성한다는 점은 양국 합의에 긍정적이다. 다만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한 안전규제 완화와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독립성 약화 등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 민주당의 견제가 강화되면 개별 원전사업의 인허가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 큰 변수는 데이터센터 전력수요를 둘러싼 불확실성이다. 골드만삭스는 민주당이 개발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의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 용량이 미국 전체의 약 45%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전력수요 급증을 전제로 하는 원전 사업의 상업성을 다시 따져봐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원전사업을 둘러싼 셈법이 복잡해진 가운데 한국 정부가 언급한 100억달러 선투입 시점인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양국은 원전 건설에 필요한 원자로 용기, 증기발생기 등 장주기 기자재를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연말까지 최대 100억달러를 투입하는 방안을 협의했다. 다만 상업적 합리성 검증, 국회 보고 등 국내법상 요건 충족을 전제로 했는데, 연말까지 관련 절차를 모두 마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도 100억달러 선투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 “새 의회 출범을 몇 주 앞두고 100억달러부터 보내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며 송금 보류와 원전 합의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도 연말 일정에 얽매이기보다 충분한 검증을 우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협상 상황을 잘 아는 한 전문가는 “미국이 우리에게 얼마나 지원할 수 있을지, 기본적인 시장 수요가 어떻게 변동될지를 보고 움직이는 게 맞다”며 “섣불리 보내서 좋을 게 없다”고 말했다.
이태호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외교부 2차관)도 “한국형 원전의 미국 진출 의미는 크지만 상업적 합리성은 충분히 따져야 한다”면서 “(양국간 연말 100억달러 투입) 협의는 있었으나 일정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도 있을 수 있으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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