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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September 19, 2026

성평등가족부가 해야 할 일을 논하라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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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에 ‘박사방'을 열고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박사' 조주빈이 2020년 3월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가운데 경찰서 앞에서 조주빈 및 텔레그램 성착취자의 강력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텔레그램에 ‘박사방'을 열고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박사' 조주빈이 2020년 3월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가운데 경찰서 앞에서 조주빈 및 텔레그램 성착취자의 강력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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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의 읽고사니즘

여기 하나의 타임라인이 있다. 2021년 4월7일, 비서 성추행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박원순 서울시장과 부하 직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퇴한 오거돈 부산시장의 공석을 채우는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자당의 귀책사유로 인한 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겠다던 당헌·당규까지 바꿔가며 후보를 냈다. 결과는 서울과 부산 모두 국민의힘의 압승이었다.

놀랍게도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은 민주당의 패인을 페미니즘 탓으로 돌렸다. 더 놀랍게도 민주당은 이를 수용했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우리가 20대 남성의 지지를 잃은 건 페미니즘 때문”이라는 주장이 당내에서 공공연히 인정되었다. 신이 난 이 전 최고위원은 선거 종료 일주일 만에 편의점 이벤트 홍보 포스터의 집게손가락 아이콘이 ‘남성혐오’라는 음모론을 제기했고, 이는 무려 문화방송(MBC) 100분 토론 주제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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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프로그램에서 그해 7월에는 ‘여성가족부 폐지’가 주제였고, 11월에는 한 패널이 공무원 시험의 양성평등채용목표제가 마치 여성할당제인 것처럼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5년간 이 제도로 추가 합격한 인원은 72%가 남성이다. 이즈음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는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주셔야 한다”는 커뮤니티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12월에는 ‘엔(n)번방 방지법’을 언론 자유 침해와 사전 검열이라며 공격하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주장이 한국방송(KBS) 열린토론에 등장했다. 이듬해 1월7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 공약이 올라왔다.

대통령이 된 윤석열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가부를 무력화하기 위해 여가부 폐지에 동의하는 장관을 임명했고, 그 장관은 2년 만에 사퇴했다. 12·3 내란으로 윤석열이 탄핵된 후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격상했지만 초대 장관으로 지명된 강선우 전 민주당 의원은 갑질 논란으로 낙마했다. 다음으로 지명된 원민경 장관은 여성계에서 오래 활동해 신망 높은 인물로 무리 없이 임명되었으나,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과제는 ‘남성 역차별’ 대책이었다. 원 장관 취임 1년 즈음하여 청와대는 갑작스레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을 신임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용 후보자는 지명 2주 만에 자진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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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타임라인도 있다. 대학생 기자 신분으로 2019년부터 엔번방 사건을 파헤친 ‘추적단 불꽃’의 한 사람인 원은지는 2022년 1월에 성착취범 ‘엘’의 피해자로부터 “도와달라”는 메일을 받는다. ‘엘’은 추적단 불꽃을 사칭해 중학생 피해자에게 접근해 온갖 성착취를 벌이는 고약한 수법을 썼다. 이 사건을 계기로 원 작가는 기자로서 디지털 성착취 취재를 넘어 실시간 성착취 피해자 지원에 뛰어든다. 온갖 기지를 발휘해 제보 3주 만에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지만, 기대와 달리 “경찰 수사는 엉망 그 자체였다.”

“2021년, 엘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기 엘은 본인이 잡히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2022년 8월, 나는 미진한 수사의 한계를 느끼고 고민 끝에 당시 근무하던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에 엘 사건을 보도했다.” 그제야 여론이 다시 비등했고 정치권도 반응했다. 2022년 11월23일, 경찰은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한 지 한달 만에 엘을 검거했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지명으로 세상이 한참 시끄러운 와중에 출간된 원 작가의 신간 ‘불꽃이 꺼지지 않게: N번방 이후 6년, 추적단 불꽃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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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적힌 원은지의 타임라인은 눈물겹다. 2023년 2월, 그는 나중에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로 알려진 사건의 피해자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그동안 추적단 불꽃 단님이 여러 디지털 성범죄 사건 수사에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만날 수 있을까요? 수사는 종결되었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범인을 찾고 싶습니다.” 피해자는 2021년께 영화 예매 정보를 받아보기 위해 텔레그램에 가입했다가 가해자로부터 자기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성범죄물과 함께 성희롱과 협박이 담긴 메시지 폭탄을 받는다. “신고해 봤자 어차피 나 못 잡는다.”

원 작가는 엘 사건을 해결하려 애쓰던 2022년에 이미 다른 피해자로부터 이 사건을 제보받고 가해자를 추적한 적이 있다. 범인과 대화 가능한 계정까지 경찰에 넘겼지만 이렇다 할 진척 없이 종결되었다. 그래도 다시 한번 피해자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로 했다.” 원 작가와 피해자는 피해 사실과 이후의 일상을 기록한 ‘지인능욕이 웬말이야’라는 온라인 연재를 시작하고 증거를 다시 모아 2023년 12월에 기적처럼 경찰 재수사를 이끌어내고, 경찰과의 공조 속에 마침내 범인을 체포한다. 2024년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작가는 울먹이며 말한다. “(지인 능욕) 관련 수사 반려 제보를 5년 내내 받고 있습니다. 범죄가 이렇게 방관되고 있다는 사실을 범죄자들도 압니다.”

책은 2020년의 엔번방 사태 폭로 이후 6년간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계속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맞서 싸워온 원 작가와 피해자들의 분투와 제도적 변화, 한계와 과제를 꼼꼼히 다룬다. 모 아니면 도 식의 서술은 지양한다.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 미온적인 경찰을 비판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꼭 짚는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의 과정을 건조하게 서술하면서도 “검찰이 미더운가가 아니라, 경찰 수사에 대한 외부 통제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피해자와 연대자들의 인터뷰도 담겨 있다. 엔번방 사건 당시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피해자 변호인으로 만난 원민경 장관과의 대화를 정리한 편지는 그 일부다. “10년 뒤에도 저는 옆에 있을게요”라는 원 장관의 말에 원 작가는 다음 세대에 넘겨준다는 말 대신 계속 함께하겠다는 말에 큰 의미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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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게 쏟아진 관심과 대조적으로, 지금 성평등가족부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얘기는 드물다. 이 책은 바로 그 본질을 다룬다. 이재명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모든 국회의원은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장혜영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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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이 꺼지지 않게 l 원은지 지음, 돌고래(2026)
불꽃이 꺼지지 않게 l 원은지 지음, 돌고래(2026)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0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자신과 기본소득당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해명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물을 마시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0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자신과 기본소득당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해명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물을 마시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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