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는 사람들]⑨ 그 많은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상)
[끊는 사람들]은 기자가 오랜 기간 지켜봐 온 마약류 중독 당사자들이 약물을 끊으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연재입니다.
중독 당사자의 회복은 아직도 쉽지 않습니다. 약물 중독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 도움을 받으면 끊을 수 있지만 여전히 지원이 부족합니다. 중독 당사자들이 공적 도움을 받으려면 여론이 있어야 합니다. ‘왜 약쟁이에게 세금을 써야 하느냐’는 힐난이 아니라, 이들을 돕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더 큰 어려움에 빠진다는 현실 인식이 필요합니다. [끊는 사람들] 연재를 보시는 분들을 감히 설득하고자 합니다.
중독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처방약에 의한 중독 문제, 중독 당사자 가족들의 공동의존 문제, 여성 중독 당사자들이 겪는 막막한 현실 등의 문제를 전할 예정입니다. 나아가 우리 사회 회복 시스템의 문제를 말합니다. 연재를 보시는 분들이 중독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⑧편에서 이어짐)
[지난 이야기] 끊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끊는가. 익명의 약물중독자(Narcotics Anonymous·NA) 모임에서 따르는 ‘NA 12단계’를 알게 됐다. 언뜻 종교적이기도 하다. 중독자가 12단계를 하는 과정은 구도와도 닮았다. 1단계, 4단계, 8단계가 난관이다. 내 의지로는 중독을 절대 끊을 수 없고(1단계),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낱낱이 성찰하며(4단계), 자신의 잘못을 관련자들에게 직접 찾아가 참회하는 것(8단계)이 쉽지 않다. 12단계 수행자들은 자기 삶에 정말로 열심이었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 자기 삶을 점검하고, 행동을 삼가고,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흡사 수도자처럼 살았다. 그들의 삶을 통해 오히려 내 생활을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비로소 알았다. 중독 당사자들이 깊고 내밀한 이야기까지 기꺼이 들려준 것도 12단계 덕분이라는 것을.
다혜(32·가명)는 귀한 여자다. 지금까지 알고 지낸 중독 당사자들 중 한 번도 연락이 끊기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다. 긴 시간 만나 온 유일한 여성 당사자이기도 하다.
약물 중독 문제 취재를 시작한 이후 남성 당사자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남성 당사자들을 숱하게 보는 동안 여성 당사자들은 드물게만 만났다. 중독자 중 여성 비율은 명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략 30~40%선일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익명의 약물중독자(Narcotics Anonymous·NA) 모임이나(⑧편 참조) 재활 공동체에서 만난 사람의 90% 이상은 남성이다.
그래서 묻게 된다. 그 많은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혜는 드문 사람이어서도 귀하지만 장기간 잘 회복하고 있어서도 귀하다. 투약 3년, 단약 6년. 처음 만난 2023년 12월부터 다혜는 이미 안정적이으로 회복 중이었다. 다혜는 희망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다혜와 연락할 때마다 존경과 감사를 느낀다.
귀한 사람 다혜는 자신을 귀하게 대해주지 못했다. 그 정점에 약물이 있다. 다혜는 마약 중독이라는 수렁에 스스로 들어갔지만, 빠져나오는 것도 스스로 해냈다. 다른 중독 당사자들을 돕기 위한 만반의 준비도 마쳤다. 귀한 여자, 다혜의 이야기다.
외로웠던 소녀 다혜는 스스로를 원망했다
다혜는 외로운 소녀였다. 불화가 많은 집이었다. 다혜가 초등학생 때부터 엄마와 아빠는 자주 다퉜다. 사는 곳은 엄마의 시댁이었다. 엄마의 노동력은 시집살이가 무지막지하게 착취했다. 엄마는 시집 축사에 사는 돼지를 치고, 삼시세끼 밥상을 차리고, 농사일을 거들었다. 아빠는 아내를 시집살이로부터 지켜주는 남편은 아니었다. 다혜의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했는데 거기서도 싸웠다. 고기 자르는 칼이 날아다닐 때도 있었다. 엄마의 손맛이 좋아 장사는 곧잘 됐다. 지금도 다혜의 엄마는 전북의 한 지역에서 동네 맛집을 운영 중이다.
돈이 잘 벌렸지만 쌓일 새도 없이 엄마의 시댁에 보태지거나 다혜의 오빠가 벌인 말썽을 뒷수습하는 데 쓰였다. 다혜의 다섯 살 살 위 오빠는 밖으로 나돌며 일탈을 일삼았다. 폭행 사건에 휘말리거나 큰 사고를 쳐서 합의금을 물어줘야 하기 일쑤였다. 번 돈을 다 까먹고도 모자라 엄마는 울면서 어디든 전화해 돈을 빌렸다. 엄마가 울면서 전화하는 걸 들으며 다혜도 옆방에서 울었다. 엄마가 며칠씩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졌다. 집에서 혼자 울던 초등학생 다혜는 눈물 많은 중학생이 됐다.
다혜는 주위를 원망하는 대신 스스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걱정과 불안이 자기파괴가 됐다. 부모님이 싸우는 게 꼭 내 탓 같았다. 내가 이 집에 있는 게 죄스럽고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엄마를 내가 지켜야 한다고, 아무도 주지 않은 짐을 스스로 지기도 했다. 그게 잘 안 되면 누구를 비난해야 할지 몰라 스스로를 벌주게 됐다. 집은 늘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곳이었다. 나쁜 짓을 하든, 바보 같은 짓을 하든 밖으로 나도는 시간이 가장 나답게 있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느꼈다. “꾸밀 필요가 없고, 애써서 뭔가를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되는 대로 살아도 되고. 그래서 바깥이 편했던 것 같다”고 다혜는 말했다.
학교는 학교대로 쉽지 않았다. 사춘기 소녀의 예민한 감성에 교우관계가 잘 풀리지 않는 경험은 지나치게 큰 상처로 다가왔다. 이미 스스로를 미워하기 시작한 다혜에게 자존을 위협하는 사건이었다. 학교에 안 가기 시작했다. 가출을 했다가 아빠에게 잡혀 돌아오기도 했다. 방황은 고등학생 때까지 이어졌다. 학교 가는 척 문밖을 나섰다가 조용히 옥상에 올라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엄마가 일을 나가는 걸 확인하면 다시 집으로 내려와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들이 가정 방문을 했다. 엄마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지만 혼자 울며 자란 소녀는 누구에게 자기 속을 터놓는 방법을 몰랐다.
방학 중 어느 날에는 갑자기 사무치고 서럽게 외로웠다. 엄마는 아빠와 갈라서 새 연애를 시작한 참이었다. 엄마도 고되기만 했던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처가 필요했다는 걸 지금은 이해한다. 고등학생 다혜는 늦은 밤에도 엄마가 없다는 것이,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 “엄마, 나랑 하루만 같이 있어주면 안 돼?” 우는 다혜를 뒤로 하고 엄마는 그날 밤도 외출했다. 삼키다 삼키다 더 넘길 울음이 없어서, 다혜의 마음에는 우울증이 자리잡았다. 집은 떠나야 할 곳이었다.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자마자 다혜는 돈이나 벌겠다며 상경했다.
다혜에게 약 권한 남자
지낼 곳과 일자리를 함께 해결해야 했기에 경기도 평택의 한 기숙사 딸린 공장에 취직했다. 몇 달은 성실하게 다녔다. 마음이 텅 비어버린 다혜는 착실한 노동과 돈벌이에 아무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쓸 데도 없고, 갚을 것도 없고, 목표도 없고.” 공장에서 알게 된 친구를 따라 인천으로 집을 옮겼다. 부평역 근처에 있는 방이었다. “별천지였다”고 다혜는 말했다. 즐거움이라고는 모르고 살던 20대 초반의 다혜에게 밤문화로 가득한 이 동네는 처음 경험한 도파민이었다.
기댈 곳은 술이었다. 술을 마시면 흥이 올랐고 현실을 잊을 수 있어 즐거웠다. 매일 마셨고, 아침까지 마셨고, 감당 못할 때까지 마셨다. 하루에 소주를 7~8병까지 들이켰다. 술 마시고 놀 돈이 떨어지면 일하고, 돈이 모이면 일을 쉬었다. “지금 생각하면 알코올 의존이었던 것 같다”고 다혜는 말했다.
술을 마시다 알게 된 남자친구를 따라 경남 창원으로 갔다. 창원에는 약이 많았다. 부산과 가까운 도시에는 약이 많다. 마산, 김해, 진해, 구미… 창원도 그랬다. 창원에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같이 술 마시며 어울리던 무리에서 만난 남자들이 있었다. 남자들은 다혜에게 필로폰을 권했다. 총 세 번의 권유. 세 번 다 다른 남자들에게서였다. 취재하며 만난 여성 중독자들의 대부분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모아 ‘남자에게 권유받아서 마약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한다. 다혜도 그랬다.
두 번째까지는 거절했지만, 세 번째가 되니 ‘이게 대체 뭐길래 다들 이러나’ 싶었다. 약을 권한 남자는 “딱 한 번만 해보고 앞으로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가증을 떨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인 줄 몰랐을 리가 없다.
첫 투약 후 한 달이 지났다. 계속 생각이 났다. 처음 약을 준 남자는 잠적해 있었다. 다혜는 자기도 모르게 텔레그램으로 약을 구하고 있었다. 방법은 인터넷에 차고 넘치게 나와 있었다. 두 번째 필로폰.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을 투약했다. 초보 사용자라 적정량을 알지 못했다. “그날 제가 죽을 뻔했거든요.” 세상이 물고기 비늘처럼 조각나 보이기 시작했다. 마주앉아 있던 사람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입에서 뱀 혓바닥이 기어나왔다.
과한 투약의 후유증은 엄청난 금단증상이었다. 팔에 핏줄이 다 터지는 기분이 들었고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살려고 응급실에 뛰어갔다. 다혜를 수상하게 보던 의료진은 링거를 꽂아줬다.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본다는 생각(쭈라)이 들었다. 링거를 뽑아버리고 도망나왔다. “말 그대로, 정말 죽어버릴 것 같았어요.”
어떨 땐 자기에게 처음 약을 준 남자를 찾아가 죽여버리고 싶었다.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왜 나한테 이런 인생을 살게 했을까 죽도록 원망했어요. 이제는 그래도 제가 선택했다 생각해요. 안 그러면 참지를 못하겠어서.” 3년 전, 처음 다혜를 만났을 때 들은 말이다. 썬과 같은 아픔을(⑤편 참조) 나누고 있는 셈이다. 썬은 이렇게 말했다. “내 손에 칼이 쥐어져 있고, 나한테 처음 투약한 사람이 앞에 있다면 지금이라도 찔러 죽이고 나도 죽을 거라는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그랬던 마음이, 내가 용서를 해야 너도 나도 좀 덜 괴롭겠구나 싶더라고요.”
그 남자가 다혜에게 선사한 삶은 이런 것이었다. 약을 하느라 일을 나가지 못해 월세가 밀렸다. 집주인에게 독촉 문자가 오면 집을 버리고 달아났다. 약을 찾아 전국을 떠돌았다. 다혜는 “충청도 빼고는 다 가봤다”고 했다. 어느 날은 엄마가 자궁암일지 모른다는 연락을 받았다. 혹이 너무 커서 자궁을 통째로 들어내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다혜는 회피했다. 죄책감은 다시 약을 할 핑계가 됐다. 엄마와의 연락은 끊어버렸다.
부산에 있던 어느 날, 다혜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같이 약을 하던 남자의 번호로 언제 어디서 약을 줄 테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다혜는 약속장소에 나가 남자를 찾았다. “이다혜씨.” 누군가 불렀다. 경찰이었다.
(⑩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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