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 후 치유…흐릿했던 기억, 미술관서 되살아났다 [건강한겨레]
수도권 치매 환자·보호자 150명 참석
전시 관람 뒤 교구재로 활동 이어가
뜨개질로 지난 삶 표현하며 담소 나눠
“치매 치료사 대상 ‘노하우 공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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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 작가에게 집은 단순히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라 살았던 기억과 추억, 사랑하는 그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공간입니다. 작가가 작품을 위해 공간을 짚어나가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듯, 우리도 그간 거쳐온 집들을 돌아보며 기억의 끈을 이어가봅니다.”
9월30일 설치미술가 서도호 작가의 개인전이 진행 중이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강사의 말이 끝나자 대한치매학회의 ‘2026 일상예찬-함께 만드는 미술관’ 프로그램에 참여한 서울 강동구치매안심센터 소속 경도인지장애(초기 치매) 환자와 보호자들은 알록달록한 단추를 그간 거쳐 간 집으로 생각하고 뜨개실로 이어나갔다.

뜨개질이 이어지면서 참가자들의 흐릿했던 기억의 타래도 함께 풀어져 나왔다. 무엇을 표현해야 할지 몰라 정적이 흐르던 장내는 손끝에서 되살아난 옛 기억과 이야기로 이내 시끌벅적해졌다. 한 60대 남성 환자는 과거 직업을 살려 정교한 기와집을 그려냈고, 70대 여성 환자는 잊고 지내던 바느질 재주를 발휘해 정성스레 집 모양을 기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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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예찬’은 대한치매학회가 2012년부터 이어온 환자 프로그램이다. 외부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인지장애 어르신과 보호자에게 문화예술 체험을 통해 정서적 안정과 일상생활 수행 기능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됐다. 2015년부터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협력해 치매 환자와 가족을 위한 미술관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공간과 기억, 정체성을 ‘집’이라는 매개체로 탐구해온 서도호 작가의 개인전과 연계해 9월15일부터 10월1일까지 진행했다. 서울과 경기 지역 치매안심센터를 통해 사전 모집된 60살 이상 치매 환자와 보호자, 학회와 센터 관계자 등 150여 명이 참여했다. 참여자들은 전시장 안에서 작가의 대표 작품들을 관람하며 자신이 살아온 공간과 정든 집의 의미를 돌아봤다. 전시 감상에 이어 진행된 표현 활동에서는 양 기관이 치매 환자의 잔존 기능 유지를 위해 개발한 다감각 교구재인 ‘내 기억 속의 집’이 활용됐다. 교구재는 부드러운 천과 실, 고리, 스냅 단추 등 다채로운 재료를 활용해 환자들의 소근육 운동과 촉각 자극을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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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참가자들도 단추와 실을 이용해 태어나 처음 살았던 고향집부터 신혼살림을 차렸던 집, 자녀를 키워낸 집을 차례로 이어가며 흐릿해지던 옛 기억을 되살렸다. 거실 풍경을 표현하던 한 70대 남성 환자는 곁을 지키던 아내의 손을 꼭 잡은 채 “당시엔 참 고생도 많았지만 행복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다른 환자들도 가족들과 옛이야기를 나누며 연신 밝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단순히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회상하고 이를 손끝으로 직접 표현해내는 일련의 과정은 치매 환자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억눌렸던 감정을 해소하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
대한치매학회와 국립현대미술관은 연내 전국 치매안심센터 작업치료사 등을 대상으로 ‘일상예찬 매개자 교육’을 개최해 교구재 개발과 활용법, 감상·표현 프로그램 운영 노하우를 전국 지역사회로 확산할 예정이다. 미술관을 직접 찾기 힘든 지역의 치매 환자와 가족도 동일한 문화예술 치유 프로그램을 재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는 목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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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형 대한치매학회 이사장(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교수)은 “치매 환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잔존 능력을 계속 유지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며 “일상예찬을 통해 환자와 가족이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삶의 활력을 회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 역시 “미술관이 누구나 예술을 가까이서 향유하고 치유받는 열린 공간이 되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지현 기자 jhcho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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