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기지’ 너머 생활 스포츠·산업 융합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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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출전 한국 선수단 성적에서 한국체육대학은 빼놓을 수 없는 상수다. 한국이 출전하는 동·하계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체대 학생이나 졸업생의 입상 비율은 매우 높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긴 선수는 ‘철의 여자’로 부를 수 있는 근대5종의 성승민(한체대)이었고, 막바지 금맥을 추가한 선수는 한체대 졸업생 송다빈(울산광역시)이었다.
2025년 1월 열린 2025 하얼빈 겨울아시안게임에서는 한체대 재학생과 졸업생이 전체 45개 금·은·동 가운데 13개를 따냈다는 발표가 나왔고,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전체 190개의 메달 가운데 25%(48개)를 한체대가 책임졌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 32개 메달 중 14개를 획득한 것을 비롯해 한체대의 올림픽 메달 수는 총 100개를 넘어선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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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선수 출신인 문원재 총장은 이런 성과에 대해 “그동안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동·하계 국제대회에서 한체대 선수들이 딴 메달은 꽤 많다. 100%를 준비해도 변수가 생기는 것이 스포츠 경쟁 무대의 특징인데, 기초와 비인기 종목에서 학생들이 간절하게 준비하고, 지도자들이 합심 노력해 일군 결과”라고 말했다.
국제대회 메달 제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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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감독 시절 ‘메달 제조기’라는 평가를 받았던 문원재 총장은 무수한 태권도 제자를 키워냈다. 태권도가 첫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상에 오른 정재은(57kg)을 비롯해 시원시원한 발차기로 명성을 떨쳤던 황경선(67kg), 힘 있는 동작의 차동민(80kg 이상) 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그의 손에서 조련됐다.
문 총장이 과거 태권도 국가대표팀 코치 시절에 겪었던 일화에는 피 말리는 지도자의 심정이 담겨 있다. “1994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때다. 당시 정광채 선수가 1회전부터 오른쪽 발등이 부어 ‘오른발로 차지 말라’고 여러 번 당부했다. 하지만 남은 경기에서 내 말은 잊어버리고 공격 기회가 오면 무조건 오른발로 찼다. ‘광채야, 발 아껴라’를 수없이 외쳤고, 그때마다 ‘네’라고 한 선수는 또 그 발로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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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012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경선은 독종으로 기억한다. 문 총장은 “황경선은 베이징 올림픽 8강전 때 오른쪽 무릎 안쪽 인대에서 뚝 소리가 나는 부상에도, 진통제를 맞고 뛰었다. 결승전 때 뒤지다가 마지막 뒤차기 한 번에 승패를 냈는데, 남은 20초가 2시간도 더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문 총장은 운동선수는 공부 못한다는 말을 듣기 싫어 영국에서 연구년을 보냈고, 2012 런던 올림픽 조직위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영국 태권도 대표팀 선수들의 올림픽 입상을 돕기도 했다.
물론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빛낸 한체대의 영광 한쪽에는 명과 암이 공존한다. 한국 최고의 체육대학이 출범한 배경에는 권위주의 시대의 국가주의 스포츠 정책이 있기 때문이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양정모 선수가 한국 선수 최초로 첫 금메달을 따냈고, 이를 계기로 한체대가 체육 전문 대학으로 출범한 것이 1977년이다. 국립대학으로 체육 인재 양성을 기치로 내세웠지만, 당시 러시아나 동유럽 국가의 스파르타식 선수 육성 시스템과 다르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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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총 150개 메달(금 39개·은 43개·동 68개)을 수확해, 중국(금 169개)과 일본(금 83개)에 이어 아시아 톱3 국가가 됐는데, 아시아 스포츠 3강의 위상 뒤에는 국가의 투자가 있다.
지금은 국제대회 입상이나 메달 획득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시대가 아니다. 국민체육진흥법상 체육 활동의 최고 목표도 국위선양이 아니다. 한체대의 위상과 역할이 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스포츠 성과 중심 탈피
문원재 총장은 “엘리트 스포츠의 메달 획득 역할을 인정하지만, 지금은 체육 전문 대학의 역할이 스포츠 성과 중심에서 벗어나 산업·행정·외교 등 부가가치를 높이고, 각 부문을 연계할 수 있는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말한다. 학교가 보유한 세계적 수준의 경기력과 전문성을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맞춰 시민들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학교 소재지인 서울 송파구와 강동구와 함께 노인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고령층의 생활체육 참여를 위한 물리적 거점 구실을 할 수 있다. 헬스케어 기업과 협력해 스포츠 선수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 등을 개발한다면 좋은 일이다.
문 총장은 “국립대학이라 스포츠 마케팅이나 비즈니스를 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하지만 엘리트 선수와 생체역학 장비, 풍부한 현장 데이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공공성을 지키면서 스포츠 행정이나 도핑 관리, 운동 능력 향상 등을 위한 제품이나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체대의 자산인 선수, 스타, 시설, 코칭 시스템, 프로그램 등의 가치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의 성과를 통해 확인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학교 안이 아니라 밖의 고객인 기업, 시민, 미디어 등과도 윈윈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
문 총장은 “해외 대학들 사례를 통해 체육대학이 주민과 지역사회에서 상생하고 발전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시민적 덕성과 국제적 마인드를 갖춘 인재 양성을 위해 교양 교육을 강화하고 전공 교육도 혁신하고 있다. 금메달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건강하고,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도록 체육대학의 역할을 확장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금 한겨레 선임기자 kimck@hani.co.kr
1993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했고, 1999년부터 스포츠기자로 재직하고 있다. 스포츠저널리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저서 <한국 스포츠 미디어 담론구조의 변화>(글누림)는 2022년 세종도서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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