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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October 7, 2026

서울시는 왜 공익 실천가의 목을 조이는가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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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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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수 | 사회적금융연구원장

 기어이 사달이 났다. 기한의 이익이 상실되었으니 원금과 이자를 한꺼번에 갚으라는 법원의 지급명령서가 날아들기 전까지는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하는 일말의 믿음이 있었다.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청구가 부당하다는 이의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해 사건은 정식 재판으로 넘어갔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대표이사가 연대보증을 섰기 때문이다.

채권자는 서울시, 채무자 한국사회혁신금융과 이 회사의 이상진 대표다. 한꺼번에 갚아야 할 돈만 10억원이 넘는다. 법원이 채권자의 손을 들어주면 채무자는 꼼짝없이 돈을 갚아야 하고, 갚지 못하면 서울시는 강제 추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어쩌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내막을 알려면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사투기금)’의 구조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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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조성된 사투기금은 사회투자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지방정부 최초의 기금이다. 사회투자란 취약계층을 돕거나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기업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일이다. 사회연대경제 기업, 장애인기업, 여성기업, 비영리단체 등에 ‘금융’을 공급해 이들의 지속가능성을 높이자는 포용적 취지였다.

기금은 크게 융자와 투자로 운영된다. 이 가운데 융자 사업은 서울시가 민간 사업 수행기관에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면, 수행기관이 자체 조달한 자금을 보태 연 3% 이내 금리로 현장 기업에 다시 빌려주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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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사회투자기금 사업 운영 방식. 사회적금융연구원
서울시 사회투자기금 사업 운영 방식. 사회적금융연구원

한국사회혁신금융은 이 융자 사업의 수행기관 중 하나였다. 2016년부터 170억원 넘는 대출을 실행하며 사회연대경제 생태계의 든든한 버팀목 노릇을 해왔다. 2020년 서울시 사회적경제 우수기업 선정, 2025년 고용노동부 장관 표창, 같은 해 한국ESG경영대상 우수상 수상이 그 성과를 증명한다.

문제는 서울시가 기금 사업을 시작하며 내건 조건이었다. 서울시는 수행기관에 담보를 요구하거나 대표자 개인의 연대보증을 강제했다. 현장 기업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수행기관 대표가 대신 갚으라는 뜻이다. 채무불이행의 모든 위험을 민간 수행기관과 개인에게 떠넘기는 독소조항이다. 정부는 2018년 신용보증기금 등 금융 공공기관의 중소기업 법인 대표자 연대보증을 전면 폐지했는데, 지자체는 행정 편의를 이유로 구시대의 제도를 버젓이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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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초기부터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사투기금은 제도권 금융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기금인데 이렇게 설계하면 수행기관은 손실을 피하려고 상환 능력이 입증된 ‘소수’에게만 돈을 빌려주게 되고, 정작 지원이 절실한 ‘다수’는 배제되는 모순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서울시와 수행기관이 손실 책임을 나눠 지는 안전장치를 마련하라는 주문이었다.

이 요청은 묵살됐고,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치면서 대면 비즈니스 위주의 수많은 사업체가 도산 위기에 내몰렸다. 그중에는 사투기금의 지원을 받던 건실한 기업들도 적지 않았다.

수행기관들은 전대미문의 재난으로 생긴 손실을 민간이 모두 떠안는 것은 부당하다고 호소했다. 서울시도 “코로나19 피해 기업에 집행된 자금은 대손 위험이 크므로 수행기관이 온전히 책임지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부담 완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내용은 당시 회의록(2020년 7월 3일, 서울시청 제2청사 6층)에도 분명히 남아 있다.

그러나 서울시장이 바뀌고 2023년 3월 사투기금 조례가 폐지되면서, 서울시의 약속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당시 업무를 맡았던 공무원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남은 것은 수행기관 대표가 무한책임을 진다는 금전대차계약서 한 장뿐이다. 그러나 서울시가 스스로 한 약속은 외면한 채 계약서만 내미는 것은, 포용금융에 앞장서야 할 지자체가 ‘공적 자금 회수’라는 명분 아래 공익 실천가를 벼랑으로 내모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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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은 한국사회혁신금융만이 아니다. 사회적기업과 개인투자자를 잇는 대출형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비플러스’도 원금 상환이 어려워지자 서울시에 상환 유예를 간곡히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비플러스 대표는 자기 회사 지분을 팔아 대출금을 갚아야 했다.

무료 변론을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 유욱 변호사는 법원에 낸 답변서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사업 수행기관에 모든 재무적 위험을 지우는 것은 공익기금 사업의 본질에 반합니다. 대출금이 오로지 공익을 위해 쓰였다는 점, 이미 국가적으로 폐지된 연대보증의 사각지대에 기대어 피고에게 가혹한 책임을 지우려는 원고의 부당함을 헤아려 청구를 기각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치명적인 걸림돌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상진 대표를 비롯해 포용금융 현장에서 뛰는 이들은 사익을 좇는 집단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쪽으로 움직여보겠다는 선의로 헌신해온 사람들이다. 10년 넘게 공익을 추구해 온 이들의 끝이 경제적 파산이라면, 앞으로 누가 이 험한 길을 걷겠는가. 법과 제도, 행정 관행이 공익적 삶을 응원하기는커녕 벼랑 끝으로 등을 떠밀고 있다. 정작 책임져야 할 쪽은 헌신한 개인이 아니라 거대한 모순을 방치한 공공이다.

대안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공적 보증기관을 통해 채무불이행 위험을 분산할 수도 있었고, 사투기금 안에 대손충당 계정을 두고 심의위원회를 거쳐 채무를 상각하는 합리적인 길도 열려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감염병이라는 불가항력의 재난 앞에서도 민간에 일방적으로 폭탄을 떠넘기는 가장 ‘쉬운’ 길을 택했다. 공공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이 소송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이 그저 채권자인 서울시와 채무자 수행기관이 ‘대여금 반환을 놓고 다투는 사안’ 정도로 치부된다면 우리 사회의 내일은 밝을 수 없다. 공익적 가치에 헌신하는 이들은 자취를 감추고, 사적 이익에만 매몰된 각자도생의 세상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Tips] 기사 속 금융 용어

△ 대출형 크라우드펀딩: 여러 개인투자자가 온라인 플랫폼으로 소액을 모아 기업에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방식

△ 상환 유예: 당장 갚아야 할 돈(원금이나 이자)을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갚지 못하게 됐을 때, 갚는 시기를 일정 기간 뒤로 미뤄주는 조치

△ 대손충당(금): 빌려준 돈 가운데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있는 금액(대손)을 미리 예상해, 손실에 대비해 쌓아두는 준비금

△ 채무 상각: 빌려준 돈을 회수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될 때, 이를 장부상에서 지워 손실로 확정하는 회계 처리. 채무자 입장에서는 남은 빚을 사실상 탕감(면제)받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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