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은 한국 생태문화 뿌리…‘계원필경’에만 나무 135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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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읽는 최치원 풍류길’(도서출판 책과나무).
나무를 통해 우리 고전에 나타난 생태 문화적 상상력을 좇는 작업을 꾸준히 해온 김재웅 천년숲학교 대표가 최근 낸 책이다. 그는 앞서 ‘나무로 읽는 삼국유사’, ‘나무 따라 경주 걷기’, ‘김시습과 떠나는 조선시대 국토기행’ 등의 책을 낸 바 있다.
이번 책은 그가 2023년 3월 경주에서 처음 문을 연 ‘천년숲학교’ 교재로 쓸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회원이 40명인 이 학교에서 그는 ‘나무 따라 경주 걷기’, ‘나무 따라 삼국유사 걷기’, ‘나무 따라 최치원 걷기’ 등의 생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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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 책을 위해 신라 말기 학자이자 대문장가인 고운 최치원(857~?)의 흔적이 남은 기록을 토대로 문학 창작은 물론 구비 전설이 전해지는 현장까지 거의 다 찾았다.
“모두 63곳의 최치원 유적과 문학 창작 현장을 천년숲학교 회원들과 답사했어요. 전국적으로 스무 군데가 넘는 최치원의 사우와 사원 중에는 그의 흔적과 연관되면서도 영정이 보관된 상서장, 문창후영당, 고운영당, 무성서원, 부성사, 옥구향교, 두곡서원 7곳을 다녀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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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이메일로 만난 김 대표의 전언이다.
책에는 그가 고운 탄생 전설이 전해지는 전북 군산 내초도의 금돈시굴을 두번의 도전 끝에 가까스로 찾아내고 짜릿해하는 대목이 나온다. 푯말이 없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위험한 절벽과 맞닿은 해안선을 내려가다 ‘끄러렁끄러렁’ 하는 강한 파도 소리의 공명음을 듣고 찾아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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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는 국내에만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천년숲학교 회원들과 최치원이 율소현위로 부임한 중국 장쑤성 양저우를 찾아 최치원 기념관을 둘러봤고 최치원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는 난징 가오춘현 쌍녀분도 답사했다.
그가 “생태 문화의 원류”로서 최치원을 주목한 데는 고운이 9세기에 편찬한 문집 ‘계원필경’이 있다. 최치원이 조기 유학을 떠난 당나라에서 과거 급제한 뒤 관리로 있을 때 지은 시 1만여수를 선별해 편찬한 이 문집은 한국의 첫 개인 시문집이다.
“계원필경에는 34종 135그루의 나무가 나옵니다. 뽕나무(27), 계수나무(18), 대나무(14), 소나무(10), 버드나무(10), 가시나무(6), 차나무(5), 오얏나무(5), 복사나무(4), 향나무(4) 순이죠. 이 나무들은 고운의 문학세계를 빛나게 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다양하게 활용되었어요.” 덧붙였다. “최치원은 당나라 절도사 고변의 종사관으로 다양한 문서 작성과 글쓰기 양식에 통달한 대문장가입니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뿐 아니라 사상적 깊이, 사회 개혁을 향한 치열한 고민도 그의 문장에 스며있죠. 그럼에도 제가 보기에 최치원 문장의 가장 뛰어난 점은 다양한 나무의 상징과 상상력을 활용하여 작가의 의도를 생태 문화적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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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운의 나무 상징 중 하나로 계수나무를 들었다. 계수나무는 최치원이 가장 좋아한 나무였단다. “계수나무는 당나라 과거시험에 급제하고 싶은 작가의 소망에 더해 늘 푸른 충절과 절개를 상징하죠. ‘계원필경’ 제목에도 계수나무가 나오고요.” 그는 이어 “계원필경에서 소나무와 대나무는 세상의 변화에도 한결같이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충절의 상징으로 등장한다”면서 최치원이 지리산 화개동 쌍계사 계곡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 ‘호중별천’에도 이러한 소나무와 대나무의 생태 문화적 상징이 잘 드러나 있다고 했다.
“고운이 왕명을 받아 893년에 완성한 지증대사적조탑비에는 닥나무와 대나무, 종려나무가 문학적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지증대사의 입적을 두고 쌓인 눈이 소나무를 부러뜨렸다고 비유했죠.”
그는 최치원의 가장 빛나는 생태적 업적으로 함양 태수로 부임해 인공 숲 상림을 조성한 것을 꼽았다. “최치원이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물길을 돌리고 제방을 쌓아서 그 위에 나무를 심은 게 지금의 상림 숲이죠. 백성을 위해 상림을 조성한 지방관의 애민 정신이 천년 숲으로 살아남았어요.”


그는 이번 책에서 고운이 태어난 경주 독서당의 향나무, 고운 영정을 모신 정읍 무성서원의 팽나무, 고운이 만년에 은둔한 해인사 전나무 등 최치원의 발자취와 연결되는 많은 나무 이야기를 풀었다.
앞으로 ‘나무로 읽는 춘향전’을 쓰고 싶다는 김 대표에게 왜 고전에 나타난 생태 문화적 상상력에 주목하느냐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고전에 숨은 생태 문화적 상징과 상상력을 나무 인문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창조 학문’을 할 수 있어요. 학문의 융복합 시대에 고전을 통해 역사, 문학, 철학을 생태 문화적 관점으로 분석하면 새롭게 학문의 패러다임을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2023년 경북 의성 고운사 초입에 자리한 최치원문학관에서 열린 ‘최치원과 불교’ 학술대회에서 최치원의 문학을 생태 문화적 상상력으로 접근한 논문을 발표했다. 안타깝게도 최치원문학관은 지난해 3월 덮친 화마에 뼈대만 남고 불탔다. 고운사 역시 다수 전각과 사찰림이 피해를 보았다.
김 대표는 “고운사 주변에 계원필경에 나오는 나무 34그루를 심어 최치원을 생태 문화로 이해하는 산책 코스를 만들면 좋겠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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