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워야 할 대통령의 말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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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 사회정책·젠더팀장
지난 10월28일 대통령이 자신의 엑스(X)에 글을 올렸다. “다문화가족들이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을 넘어 우대까지 할 필요성이 큰지, 우대제도 폐지가 필요한지 등에 대해 지방정부와 협의는 물론 시행령 개정까지 포함해 깊이 검토해 보겠습니다.” 대통령은 2030 남성 이용자 비율이 높은 ‘에펨코리아’ 글을 공유했다. 해당 글에는 다문화 가정 비하 표현도 담겨 있었다. 지금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원글은 삭제되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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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시행령 개정을 포함한 검토’라는 이 한마디는 힘이 셌다. 바로 다음날, 청와대 담당 비서관은 “더 절실한 산모에게 우선 혜택을 줄 수 있도록” ‘모자보건법 시행령 개정’을 검토한다고 했고, 모자보건법의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공 산후조리원 이용 순위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높일 수 있도록 현행 법령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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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은 늘 힘이 세다. 대통령이 한마디하면, 정부 부처 수장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지난 7∼8월에는 대통령이 노란봉투법에 따른 노동조합의 쟁의 범위가 모호하다며 노동쟁의 대상을 명확히 하라고 주문하자, 노동부는 한달 반 만에 시행지침을 내놨다. 이미 해석지침이 있었고, 노동계가 ‘노동권 퇴행’이라며 반발했지만, 노동부는 서둘러 뭐라도 했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도 결국 ‘하향을 향한’ 공론화를 위해서인지 주무 부처를 성평등가족부에서 법무부로 바꿔 추진하고 있다.
성급한 ‘대통령의 주문’도 많았다. 대통령이 검토를 지시한 ‘청년 탈모 건강보험 적용’은 국민 토론회까지 잡았다가 직전에 공론화를 멈췄다. 청년 당사자들조차 ‘중증질환 건보 적용률 확대’가 먼저라는 의견을 내놨다. 기초연금 ‘하후상박’ 개편도 대통령이 방향을 먼저 던졌지만, 충분한 협의 없이 추진되다 사실상 유야무야됐다. ‘상박’에 따른 여론 부담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꼭 필요하지 않은 정책도,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정책도 대통령의 입으로 발화되고 나면 그를 둘러싼 논의와 혼란이 일파만파다. 하다가 중단할 때 사회적 비용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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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엑스 글들은 사실 공포스럽다. 대통령이 엑스에 글을 올리기 하루 전 국무회의에서 이주노동자가 “국가 경제에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취지의 말을 했고, 다문화 가정과 내국인 가정을 가르는 발언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유럽을 필두로 극우화되는 세계에 한국 대통령이 보태는 신호는 정녕 아닐 것이다.
이주민이 한국 사회에서 겪는 현실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지난 1년간 전체 임금체불액 증가율보다 이주노동자 임금체불액 증가율이 14배 높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 열에 일곱은 200만∼300만원대 임금을 받는다. 계절노동자는 200만원대 초반이다.
직전 부서였던 한겨레21은 2024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동료시민 이주민’이라는 기획을 연재했다. 김숨 등 소설가들이 이주민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 에세이 등의 형태로 보내왔다. 임금을 받지 못해 법정에 선 노동자, 미등록 이주아동이어서 할 수 없는 것투성이인 청소년 등이 주인공이었다. 이야기는 매번 달랐지만, 연재마다 겪은 일은 같았다. 독자 의견을 듣고자 열어둔 댓글창을 혐오 댓글 탓에 대체로 닫아야 했다. 필자들은 대부분 부탁했다. “인터뷰하신 분들이 상처받을까 봐 걱정돼요.”
한겨레 취재에 따르면 공공 산후조리원을 다문화 가정이 이용하는 비율은 서울은 3%(올해 6∼9월), 다른 지역도 5% 이내였다. 이런 상황에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우대 필요성’을 따지는 게 시급한 일일까. 뚜렷한 데이터 없이 이들이 마치 큰 우대를 받는 양 오해를 부르는 대통령의 말은 이미 불길이 거센 ‘이주민 혐오’에 기름을 들이붓는다. 대통령이라면 커뮤니티 글을 인용해서 자기 의견을 보탰다가 논란이 일자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이기 전에, 행정부 수반으로서 관련 데이터를 확인해 검토하고 책임 있는 발화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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