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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9, 2026

똥·오줌·냄새, 그리고 존엄…돌봄 사회가 숨기지 말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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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출신 외국인 요양보호사 찬티안이 2026년 6월1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원하트 노인전문 요양센터에서 입소자를 돌보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베트남 출신 외국인 요양보호사 찬티안이 2026년 6월1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원하트 노인전문 요양센터에서 입소자를 돌보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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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돌봄은 똥과 오줌, 그리고 체액 분비물에 대한 것이다.”(진은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청강문화산업대학 ‘돌봄과 서사’ 강의 중에서)

돌봄에 대한 숭고한 이야기는 많다. 돌봄의 가치와 의의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인류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돌봄 사회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은 이념을 떠나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 기후위기, 초고령인구 사회로의 진입, 전통적 가족과 친족의 해체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당대에 돌봄은 가장 시급한 문제이자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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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돌봄이 사회의 필수노동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돌봄의 실상은 저임금의 글로벌 착취 구조이며 이는 만성적인 돌봄의 위기와 공백을 만들어낸다. 잘사는 나라에서 가정, 병원과 요양시설 등 돌봄이 필요한 곳의 노동은 대부분 저개발국에서 온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수행한다. 저임금뿐만 아니라 이들을 위협하는 추방에 대한 공포는 안정되고 지속적인 돌봄을 불가능하게 한다. 또한 돌봄을 수행할 노동 역량이 있는 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거 국외로 떠남으로써 저개발국 역시 돌봄 공백이 발생했다.

저임금 글로벌 착취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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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임금 글로벌 착취 구조는 진은선 활동가가 말한 돌봄의 핵심인 똥과 오줌을 인간의 존엄이 걸린 최전선이 아니라 ‘더러운 것’과 관련된 일로 여기게 한다. 똥과 오줌은 ‘더러운 것’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일에 비용이 지급되지 않으면 봉사와 희생이라는 숭고한 일로 여겨진다. 부모의 똥과 오줌을 받아내는 ‘효자’, 타인의 항문을 닦아주는 자원봉사자의 이미지가 그렇다. 그러나 돈이 지급되는 순간, 이는 ‘배우지 못한’ 이들이 몸으로 수행하는 더럽고 천한 일이 된다. 돌봄과 숭고에 천함의 이미지가 겹치는 이유는 바로 똥과 오줌 때문이다.

따라서 돌봄에 관한 이야기에 똥과 오줌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몸에서 배설되는 것과 인간의 배설기관을 이야기에서 다루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이다. 예를 들어보자. 중증장애인은 배설할 때마다 활동을 보조하는 돌봄 노동자의 보조를 받아야 한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의 배설기관과 성기를 타인에게 노출해야 한다. 배설과 배설기관은 인간의 존엄과 인격이 지켜지는가 아닌가를 가르는 최전선이다. 인간은 여기서 수치심과 모멸감에 치를 떨 수도 있고 자신의 존엄이 돌봐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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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뿐만 아니다. 배설은 냄새와 깊이 연관돼 있다. 대부분의 배설은 역한 냄새를 만들고 그 냄새는 당사자가 위생에 관해 어떤 관념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여겨진다. 냄새는 문명, 야만과 미개함을 가르고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일례로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의 가해자와 방관자들이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가장 대표적인 말이 “선생님, 쟤 몸에서는 냄새가 나요”이다.

사람들이 노인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 역시 몸에서 나는 냄새다. 노화의 자연스러운 결과이지만 사람들은 노인이 감각이 둔해지고 자기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냄새가 난다고 여긴다. 내가 아는 한 노인은 요양보호사가 늘 집에 들어오며 냄새를 이유로 인상을 찌푸리자 날마다 때수건으로 몸을 강박적으로 씻다 피부가 헐어버린 일도 있었다. 돌봄은 똥과 오줌, 땀 등 배설에 대한 것이며 모멸과 존엄을 가르는 최전선임을 방증하는 명확한 사례다.

돌봄의 상호성이 중요한 이유

돌보는 이의 존엄 역시 똥과 오줌, 배설기관과 관련된다. 보여주는 쪽만 아니라 봐야만 하는 쪽도 성기와 배설기관에 수치심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돌보는 이가 느끼는 수치심의 이유는 돌봄을 받는 이와 다르다. 돌봄을 받는 이의 수치심은 가장 내밀한 부분을 타인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자기 몸에 대한 통제력, 즉 능동성을 상실했다는 데서 온다. 반면 돌보는 이는 자신의 내밀한 부분을 보여주면서도 돌봄을 받는 이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데서 수치심을 느낀다. 이것은 그를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존재, 즉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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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존재가 고대의 노예였다. 주인들은 노예들 앞에서 무슨 짓을 하더라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 발가벗고, 성행위를 하더라도 마치 그들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겼다. 그들의 온갖 시중과 돌봄을 다 받으면서 말이다. 한 철학자는 노예들에게 둘러싸여 산책하면서도 마치 자기 주변에 아무도 없이 홀로 걸었던 것처럼 묘사하기도 했다. 돌봄을 받는 이가 수치심을 의식하지 않을 때 돌보는 이는 ‘노예’로 여겨진다고 생각한다. 이때 돌보는 이는 행위의 능동성이 아니라 존재함의 능동성이 부정되는 데서 수치심을 느낀다.

바로 이런 점에서 돌봄의 상호성은 양쪽 모두의 존엄을 돌보는 문제가 된다. 돌보는 이가 돌봄을 받는 이의 똥과 오줌을 돌볼 때 돌봄을 받는 이의 존엄을 생각해야 하는 것만큼이나, 돌봄을 받는 이 역시 돌보는 이의 존엄을 생각해야 한다. 진은선 활동가도 강의에서 이 점을 명확하게 강조했다.

중증장애인은 기저귀를 갈 때마다 최대한 활동을 보조하는 이의 편의를 위해 조금이라도 몸을 뒤틀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지 않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활동을 보조하는 이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기 위해 애쓰는 몸짓이다.

돌보는 이는 이 몸짓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린다. 그가 지금 왜 이런 소리와 몸짓을 하는지 말이다. 그럴 때 돌보는 이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오게 된다. “고마워요.” 이 순간이 바로 장애인이 돌보는 이의 존엄을 돌보는 순간이며, 돌보는 이의 존엄을 돌보는 것을 통해 자신의 존엄을 돌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의 배설을 도와주고 돌봐주는 이에게 몸짓을 통해 편의를 돌보려고 했다는 것, 여기서 돌봄은 서로의 인격과 존엄에 대한 상호 돌봄이 된다.

2025년 10월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돌봄 사회로의 전환 ‘10·29 국제돌봄의 날’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펼침막을 들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2025년 10월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돌봄 사회로의 전환 ‘10·29 국제돌봄의 날’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펼침막을 들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존재 부정당할 때 느끼는 수치심

상호 돌봄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만이 아니다. 서로의 인격과 존엄을 배려하는 상호 돌봄은 돌봄을 주는 이와 돌봄을 받는 이가 모두 돌봄을 의식할 때 성립한다. 이 의식은 돌봄을 주고받는 것이 권력적이라는 사실에 긴장할 때만 떠오른다. 서로가 그렇게 긴장한다는 것을 의식할 때 내 존엄이 배려받고 있음을 알게 되고 비로소 받은 존엄을 돌려주려고 한다. 돌봄은 권력에 대해 의식하고 있어야 상호적인 것이 되는 매우 피곤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상호성은 깨지고 권력은 바로 상대의 존엄에 대한 폭력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진은선 활동가는 이렇게 되묻는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똥과 오줌에 대해 늘 의식하고 사시나요?” 냄새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과민성대장 증상에 고통받는 이가 아니라면(이들의 수는 매우 많다) 대부분 똥과 오줌을 의식하지 않는다. 진은선 활동가는 여기서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권력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가장 큰 특권은 별생각 없이 살아도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권력의 아래쪽에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늘 의식하고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장애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똥과 오줌을 의식하며 어디를 갈지/가지 않을지, 언제 움직일지/움직이지 않을지, 어떻게 할지/하지 않을지를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상호 돌봄은 자기 몸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존재에게서만 가능하며 그것은 관계의 불가피한 권력적 속성이 폭력이 되지 않게 하려는 몸부림이다.

진은선 활동가의 말은 이야기를 창작하는 이들이 인물을 창작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한다. 바로 행위와 행동의 차이다. 창작자는 자기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행위를 넘어 행동하게 해야 한다. 행위가 단순한 신체적 움직임인 데 비해, 행동은 동기와 목적을 갖고 주변에 영향을 미쳐 변화를 일으키려는 능동적인 것이라고 정의했다. 행위가 몸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것이라면, 행동은 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마음을 이해해야 비로소 그를 살아 움직이는 존재, 행동하는 존재로 그려낼 수 있다.

앞의 장면을 한번 보자. 외적으로 보기에 중증장애인은 그저 한 번 미세한 몸짓을 했을 뿐이다. 연극으로 친다면 배우는 몸을 한 번 꿈쩍거리면 된다. 문제는 그가 왜 그랬냐는 것이다. 자기 성기를 보여주기 싫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반사적 행동일 수도 있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돌보는 이를 배려하는 몸짓일 수도 있다. 밖으로 드러낸 행위는 그저 몸 한 번 꿈쩍거린 것이지만 동기와 목적은 완전히 다르다. 그 몸짓을 어떻게 해석하고 의미화하는가에 따라 연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소설이라면 이야기 안에서 묘사가 달라질 것이고, 만화라면 컷 연출을 다르게 할 것이다. 인물의 몸과 마음, 즉 행동에 대한 이해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게 된다. 이렇게 행동은 몸과 마음이 합쳐지는 지점에서 태어난다.

덜 폭력적인 존재가 되려면

이 장면을 형상화하려면 장면 안에 있는 장애인의 몸과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마음을 이해해야 마음에서 일어나는 ‘행동’을 이해할 수 있고 돌보는 이와 돌봄을 받는 이가 서로의 존엄을 돌보며 ‘만남’이 일어나는 순간을 극적 장면으로 형상화할 수 있다. 외로움과 어긋남이라는 인간의 운명을 기어코 인간이 이겨내는 장면으로 탄생시킬 수 있다. 이 극적인 장면이 뚜렷하게 서야 다른 장면들이 이 장면을 향해 달려가며 배치되는 촘촘한 서사가 만들어진다. 창작자에게 자신이 창작하고자 하는 인물의 마음과 몸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필수적인 이유다.

돌봄은 묻는다. 돌봄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반드시 답해야만 하는 시급한 정책적인 질문들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돌봄은 묻는다. 단지 정책의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엄을 배려하기 위해 자신과 타인의 똥과 오줌에 대해 늘 의식하는지, 그리고 그런 마음을 의식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돌봄은 답한다. 우리가 조금이나마 덜 폭력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의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여기가 이야기의 자리다. 이야기는 의식하지 않는 폭력을 의식의 수면 위에 띄우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권력을 의식함으로써 덜 폭력적이 될 수 있다. 이 점이 돌봄이 이야기에 가르쳐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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