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는 사람들]⑮ 잘 끊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상)
[끊는 사람들]은 기자가 오랜 기간 지켜봐 온 마약류 중독 당사자들이 약물을 끊으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연재입니다.
중독 당사자의 회복은 아직도 쉽지 않습니다. 약물 중독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 도움을 받으면 끊을 수 있지만 여전히 지원이 부족합니다. 중독 당사자들이 공적 도움을 받으려면 여론이 있어야 합니다. ‘왜 약쟁이에게 세금을 써야 하느냐’는 힐난이 아니라, 이들을 돕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더 큰 어려움에 빠진다는 현실 인식이 필요합니다. [끊는 사람들] 연재를 보시는 분들을 감히 설득하고자 합니다.
중독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처방약에 의한 중독 문제, 중독 당사자 가족들의 공동의존 문제, 여성 중독 당사자들이 겪는 막막한 현실 등의 문제를 전합니다. 나아가 우리 사회 회복 시스템의 문제를 말합니다. 연재를 보시는 분들이 중독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⑭편에서 이어짐)
[지난 이야기]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마퇴본부)는 중독 당사자들을 회복시킬 수 있는 조직일까. 세 가지 장면을 살펴본다.
장면 하나. 2023년의 어느 날, 마퇴본부 당시 사무총장과 센터장 등 주요 관계자들이 모여 있다. 회복계 유명인사의 행실 문제가 잇따라 터져나오던 시점이다. 사무총장을 포함한 주요 참석자들이 입을 모은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보호해야 돼” “설사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보호해 줘야 돼요”. 문제를 덮자는 내부 논리만이 힘을 얻었다.
장면 둘. 그날 회의 자리에도 있었던 박모 전 마퇴본부 센터장은 졸피뎀을 상습 투약한다는 의혹이 파다하다. 마퇴본부 전 사무총장은 박 전 센터장을 가리켜 “재활의 아이콘”이라고 했다. 그는 여전히 ‘회복판’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장면 셋. 2025년 12월, 정부 부처별 업무보고에서 서국진 마퇴본부 이사장의 답변이 헛돈다. 이재명 대통령은 원하는 답을 듣지 못했다. 대신 마이크가 넘겨받은 국장도 상황을 수습하지 못했다.
끊는 사람들을 표현한 일러스트. 김상민 화백
마약 중독자가 극적으로 약을 끊어낸다. 중독을 극복한 개인사로 이름을 알린다. 회복의 상징이 된다. 떠받들어진다. 회복자의 높아진 명성은 점차 불가침한 것이 된다. 이 명예에는 이용 가치가 있다. 강렬한 회복 스토리는 이목을 붙잡고, 사람들을 이끌게 마련이다.
어느 날 회복자의 행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그의 명망에 의지하고 있다. 당장 드러내고 바로잡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처럼 보이게 된다. 때로는 당사자보다 주위에서 더 덮고 싶어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 마약 중독 회복의 세계에서 반복돼 온 패턴이다. 경기도 다르크의 임모 전 센터장, 인천 다르크 최모 전 센터장,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마퇴본부)의 박모 전 센터장. 대표적 ‘회복의 아이콘’들은 누군가 냉소하는 이름이 됐다. [끊는 사람들] ⑫편, ⑬편, ⑭편에서 이 문제를 짚어냈다.
[끊는 사람들]⑫ 이런 판에서 누굴 살려요?
https://www.khan.co.kr/article/202610130601001
[끊는 사람들]⑬ 그 회복 공동체는 왜 사이비 집단이 됐나
https://www.khan.co.kr/article/202610171305001
[끊는 사람들]⑭ 마약퇴치운동본부, 살릴 수 있나요?
https://www.khan.co.kr/article/202610241304001
잘 끊으려면 오답노트를 적어야 한다. 대표적 ‘회복의 아이콘’들이 왜 잇따라 넘어졌는지, 이들의 이름이 자랑에서 오명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이것이 중독 당사자 개인의 문제로 여겨지고 말아서는 안 된다. 회복한 중독자의 귀결인 것처럼 여겨져서도 안 된다. 회복자를 전면에 내세워서 누가 이익을 봤는지, 누구의 일이 얼마나 더 쉬워졌는지 뜯어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중독 당사자 개인의 행복이나 진정한 회복이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됐는지도.
무엇보다 끊을 수 있다는 희망에 흠집이 나서는 안 된다. 중독과 순전하게 결별할 수 있다. ‘끊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끊은 사람들’이 된다는 것을 의심 없이 믿어야 한다.
그 선봉에 마퇴본부가 있다. 보완해 나갈 점들이 많지만 이러나저러나 우리 사회 마약류 중독 문제 최일선에 선 유일의 공공기관이다. 잘 끊을 수 있게 도울 수 있는 건 현 시점 마퇴본부다. 마퇴본부를 향한 제언들을 모았다. 중독 당사자들의 회복을 생의 업으로 삼은 이들의 말들을 들었다.
회복자, 신중히 다뤄주세요
회복한 중독 당사자는 중요한 자원이다. 중독자들에게 그 누구도 주지 못하는 경험과 지혜를 전할 수 있다. 희망이자 롤모델이다.
마퇴본부는 회복자를 ‘회복 지원가’라는 이름으로 위촉한다. 마퇴본부 관계자는 “중독을 먼저 끊은 선배로서, 중독 당사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회복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이끌어주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재발이 발생할 때다. 회복 지원가가 활동 중 중독이 재발하거나 구속되는 일들이 생긴다. 약을 끊은 지 5년 안팎이 지난 회복 지원가가 활동 중 재발하는 사례가 꾸준히 나온다. 회복을 꿈꾸는 중독자들에게 안 좋은 경험이라는 점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마퇴본부에 30년 가까이 몸담았던 이철희 부산시약사회 마약류 및 약물중독 예방센터 센터장은 회복 지원가로 활동하기 위해 인정되는 단약 기간을 늘리고, 단약 기간별로 가능한 활동 내역을 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현재는 단약한 지 5년 정도가 지나도 회복 지원가로 활동하지만, 이 기준을 최소 10년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특히 SNS 활동이나 언론 노출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가장 조심하고 겸손해야 할 시기에 공적 역할을 섣부르게 맡는 일은 위험하다”며 “초기 회복 단계에서는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는데, 언론 노출이나 SNS 홍보는 일상의 긴장을 높여서 재발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NA(익명의 약물중독자) 모임에서 어떤 어르신을 만났는데, 40년 만에 재발했대요. 너무 마음이 힘들었어요.” 한 중독 당사자가 들려준 말이다. 단약 기간이 회복 지원가의 자격을 보증하지 못한다. 회복 지원가를 합리적으로 관리·감독해야 한다. 위험 신호가 보이면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회복 지원가들의 자조모임도 필요하다.
친소관계는 OUT
박 전 센터장의 행실 문제(⑭편 참조)를 제기한 한 회복자가 있다. 2020년쯤부터 회복자 출신 강사로 활동했다. 마퇴본부에서도 일을 받아 강의를 다녔다. 2023년 박 전 센터장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2024년부터는 마퇴본부에서 받던 일이 끊겼다. 작은 회복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 준형(55·가명) 이야기다.
준형은 박 전 센터장에게 싫은 소리를 했던 것, 어느 시점 이후로 마퇴본부에서 강의가 배정되지 않은 것이 인과관계에 있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마퇴본부는 준형에게 ‘명시적으로 강의 배제를 한 결정은 없다’고 회신했다. 준형의 강의는 줄곧 좋은 평가를 받았다. ‘솔직한 경험담이 좋았습니다’ ‘강사님의 생생한 이야기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강의평가표를 들여다보며 준형은 답답해했다. 마퇴본부는 배제한 적 없다고 하지만 강의는 들어오지 않는다. 어떤 부분에서 자격이 미달한지 알려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시원하게 납득되는 설명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2023년의 그 날이 떠오른다.
1997년부터 마퇴본부에서 일한 한 인사는 마퇴본부에서 영항력이 있는 박 전 센터장이 준형을 배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역시 마퇴본부 초창기부터 관여한 다른 인사도 박 전 센터장이 자신의 방향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배척해 왔다는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
이철희 센터장은 “일부 강사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로 세를 형성하고, 자기편과 다른 편을 나누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넓혀 왔다”며 “결과적으로 회복 중인 사람들 사이에 서로 불신과 반목이 생기고, 새로 들어온 사람은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고 했다.
다혜가 생각났다. 몇 안 되는 귀중한 여성 회복자 다혜(⑨편 및 ⑩편 참조)는 잘 회복했고, 여성 중독자들을 돕고 싶다는 꿈도 꿨지만 현재 회복판에 발을 들이지 않고 있다. “저는 편가르기에 지쳤어요. 일을 하려다 보면 서로 사이 나쁜 집단이어도 두 군데에 다 있을 수도 있는 건데, 그러면 눈빛이 이상해져요. 어느 편이냐고 묻는 것처럼요. 정치판 같아서 너무 머리가 아파요.”
지난 17일, 인천에서 NA 컨벤션 행사가 열렸다. 준형은 자신을 포함해 그와 가까운 이들은 초대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최 센터장 주도로 열린 행사였다. 행사 포스터에는 참여 대상이 ‘약물 사용 경험자 누구나’라고 적혀 있었다. 친소관계에 따른 배제나 포섭은 NA의 기본 정신(⑧편 참조)과 어긋난다. NA 공식 홈페이지 설명은 “NA 회원이 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약물을 끊겠다는 열망뿐”이라고 강조한다. “그 어느 조직과도 연대관계나 동맹을 맺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하다. NA 컨벤션은 누구를 위한 행사였을까.
이 센터장은 이런 문제가 개인의 성품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강사에게 공적 역할과 언론 노출의 기회가 주어지는 구조가 결과적으로 편가르기나 불화를 조장하는 행동을 부추길 수 있다”며 “집단 내 관계, 공적 노출의 적절성을 검증하고 편가르기, 과도한 자기노출이 확인되면 활동을 조정하고 교육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⑯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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