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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September 26, 2026

짐도 계획도 없이 떠나 ‘책’과 마주한다…달라지는 여행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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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객실 침대 위에 시집들이 놓여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객실 침대 위에 시집들이 놓여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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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먹고 많이 돌아다니는 여행은 이미 충분히 하지 않았나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만 읽으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지난 8월 경기도 포천시 ‘책방 밤나무 북스테이’에서 만난 안효원(47) 대표는 북스테이(독서 중심의 숙박) 공간을 연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밤나무 북스테이는 약 1700권의 책이 비치된 서점 겸 서가 공간을 중심으로 양옆에 객실이 하나씩 자리 잡은 구조다. 서가에서는 큰 통창으로 종자산과 보개산이 나란히 보인다. 이곳을 찾는 손님 대부분은 혼자 온다. 주변 관광지나 맛집도 묻지 않는다. 서가에 머물며 책을 읽거나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객실에서 깊은 잠에 빠져든다. 안 대표는 “새로 지은 건물이라 휴대전화 데이터 통신이 원활하지 않은데, 손님들은 와이파이 연결도 마다한다”며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느리게 머물고 싶은 마음은 커지기 마련”이라고 했다.

최근 북스테이를 다녀온 조아무개(33)씨는 “평소에는 주말에도 메신저 알림을 확인하느라 온전히 쉬지 못했는데, 티브이(TV)도 없고 조용한 시골 책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둔 채 밤새 책장을 넘기다 보니 비로소 머릿속 소음이 멈추는 기분”이라며 “관광지를 바쁘게 돌아다니는 여행 대신 한 공간에 머물며 휴식하니 제대로 회복을 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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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책방 밤나무 북스테이’. 1·2인용 두개의 객실과 약 1700권의 책이 비치된 서가로 이뤄져 있다. 안효원 대표 제공
경기도 포천시 ‘책방 밤나무 북스테이’. 1·2인용 두개의 객실과 약 1700권의 책이 비치된 서가로 이뤄져 있다. 안효원 대표 제공

유명 관광지를 바쁘게 오가는 대신 책 한권과 함께 머물며 여유와 사색을 즐기는 ‘북케이션’(독서 여행)이 일상의 피로를 덜어내는 휴가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북케이션의 원류 격인 북스테이는 지방 소도시와 농촌에 둥지를 튼 독립서점에서 시작됐다. 대형 온라인 서점과 전자책의 확산 속에서 도서 판매만으로 운영하기 어려워진 독립서점들이 단순 판매를 넘어 체류와 독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영역을 넓힌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국 독립서점 지도 플랫폼 ‘동네서점’에 등록된 북스테이 41곳의 분포를 보면, 경기(22.0%, 9곳)가 가장 많았다. 출판 인프라를 갖춘 파주(3곳)를 중심으로 여주·이천·용인 등에 분포했다. 이어 서귀포 중심의 제주(14.6%, 6곳), 강원과 경북(각 12.2%, 각 5곳) 순이었으며, 인천(9.8%, 4곳) 북스테이는 모두 강화도에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밖에 전북 3곳, 충남 2곳 외 서울·대구·세종·충북·경남·광주·전남(각 1곳) 등 전국에 북스테이가 자리 잡고 있다. 실제 운영 중인 북스테이는 플랫폼 집계치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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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경기도 포천시 ‘책방 밤나무 북스테이’ 서가 공간.  열람용 책 1000권, 판매용 책 700권이 비치돼 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지난 8월 경기도 포천시 ‘책방 밤나무 북스테이’ 서가 공간. 열람용 책 1000권, 판매용 책 700권이 비치돼 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북스테이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숙소에 책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행객으로서는 무거운 책을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되고, 운영자가 공간의 성격에 맞게 큐레이션 한 책을 현장에서 골라 읽을 수 있다. 평소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책을 우연히 만나면서 독서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관광지를 찾아다니는 대신 책 읽기 자체를 여행의 일정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골목책방에서 시작된 독서 체류 문화는 최근 호텔과 지역 관광, 도심 속 독서 공간으로까지 무대를 넓히며 다양한 형태로 변하고 있다.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앤리조트는 공간의 성격과 투숙 목적에 따라 세곳의 독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본관에 있는 ‘워커힐 라이브러리’에는 책 약 3천권이 비치돼 있다. 문학과 예술, 여행뿐 아니라 그래픽노블과 만화, 어린이 도서까지 다양하다. 한쪽에는 소파를 둬 사색과 독서를 즐길 수 있도록 했고, 다른 쪽에는 책상을 마련해 업무와 독서를 병행하는 ‘워케이션’(여행지 원격 근무) 공간으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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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앤리조트의 더글라스하우스 1층 ‘더글라스 라이브러리’ 내부가 문 너머로 보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일 오후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앤리조트의 더글라스하우스 1층 ‘더글라스 라이브러리’ 내부가 문 너머로 보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투숙객과의 상호작용이 두드러지는 공간은 더글라스하우스의 ‘더글라스 라이브러리’다. 2018년 문을 연 이곳에는 약 1천권의 책이 마련돼 있다. 매달 투숙객의 추천을 바탕으로 지배인이 직접 책을 선별해 서가를 채운다. ‘노화에 대한 마음가짐’, ‘불안과 번아웃 내려놓기’, ‘읽고 쓰기’, ‘통찰력 키우기’ 등의 주제로 꾸며졌다. 특히 도서대여록에 남겨진 높은 이용 빈도가 눈에 띈다. 다 읽지 못한 책은 한권씩 객실로 빌려 갈 수 있다. 통창 너머 숲을 바라보며 해먹이나 빈백에 몸을 맡길 수 있는 환경도 책을 오래 쥐게 하는 요소다.

최근에는 야외로도 서가가 확장됐다. 워커힐 야외공간인 포레스트 파크에 지난 8월 문을 연 ‘숲속 책방’은 카라반을 개조한 공간이다. 독립서점 ‘땡스북스’와 협업해 시·소설·에세이 등 가볍게 읽기 좋은 책 120여권을 큐레이션했다. 자연 속에서 캠핑과 독서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꾸민 공간으로, 오는 12월1일까지 운영된다.

20일 오후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앤리조트의 야외 공간인 포레스트파크에 마련된 ‘숲속 책방’에 책들이 진열돼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일 오후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앤리조트의 야외 공간인 포레스트파크에 마련된 ‘숲속 책방’에 책들이 진열돼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수도권뿐 아니라 주요 관광지의 호텔들도 북케이션 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롯데호텔부산은 오는 11월30일까지 지역 독립출판사 ‘하마터면’과 협업한 가을 시즌 패키지를 제공한다. 하마터면이 고른 책 한권을 표지가 안 보이게 포장해 손글씨 편지와 함께 준다. 제주신라호텔은 야외 수영장 ‘어덜트풀’ 속에서 읽을 수 있는 방수책과 칵테일을 제공하는 ‘풀&북카페’를 운영한다.

지방정부들도 독서와 지역 공간을 접목한 여행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전북 전주시는 지역 특화도서관과 관광 자원을 엮은 여행상품 ‘전주 리브립(Librip)’을 지난 8월 ​출시했다. 도서관(Library)과 여행(Trip)을 결합한 프로그램으로, 덕진공원 연화정도서관, 한옥마을도서관, 동문헌책도서관, 아중호수도서관 등 특색 있는 도서관을 둘러보며 책과 함께 쉬도록 구성했다. 강원 춘천시도 지난 18~20일 김유정문학촌과 공지천 일대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독서대전’에서 공지천 산책로에 야간 야외도서관 ‘별빛 아래 북캠프’를 운영하는 등 체류형 독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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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앤리조트의 더글라스하우스 1층 ‘더글라스 라이브러리’에서 이용객이 해먹에 누워 책을 읽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일 오후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앤리조트의 더글라스하우스 1층 ‘더글라스 라이브러리’에서 이용객이 해먹에 누워 책을 읽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원거리 여행이나 숙박이 부담스러운 이들을 중심으로 일상에서 책에 몰입할 수 있는 ‘초단기 북케이션’도 주목받고 있다. 예약제 북카페 등이 대표적이다. 일반 카페와 달리 2~3시간 단위 이용권 형태로 운영돼 온전히 자신만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 리클라이너나 좌식 소파 등이 비치돼 편안하게 머물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입장할 때 휴대전화를 거두거나 내부에서 대화를 제한해 독서에 집중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숙박이나 장거리 이동 없이도 잠시 일상을 멈추고 책과 휴식에 집중하려는 수요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흐름이 하나의 체류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책을 매개로 한 휴식 공간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는 게 현장의 시각이다. 안 대표는 “섣불리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북스테이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라며 “지난 수천년 동안 인류가 겪은 변화보다 최근 수년간 겪은 변화가 훨씬 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멈춰 서는 휴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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