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보다 먼저, 산사(山寺)는 붉었다 [정동길 옆 사진관]
전남 함평 용천사 꽃무릇 /김정근기자
가을이 채 여물기도 전에 산은 먼저 붉어졌다. 영광 불갑사와 함평 용천사, 지척에 자리한 두 산사를 감싼 능선은 단풍 대신 꽃무릇으로 물들었다. 초록 잎사귀 하나 없이 붉은 꽃대만 곧게 솟은 모습은, 그 자체로 낯선 계절을 앞당겨 놓은 듯했다.
전남 영광 불갑사 꽃무릇/ 김정근기자
불갑사 꽃무릇/ 김정근기자
불갑사 꽃무릇 / 김정근기자
전남 영광 불갑사 꽃무릇 / 김정근기자
불갑사는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숲길 전체가 붉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참식나무와 비자나무 그늘 아래로 꽃무릇이 군락을 이루며 끝없이 이어졌고, 그 사이로 스며드는 오전 햇살은 붉은 꽃대마다 옅은 빛을 얹었다. 용천사는 저수지를 낀 야트막한 구릉 전체가 꽃무릇 밭이었다. 물에 비친 꽃빛과 실제 꽃빛이 포개져, 마치 산 하나가 통째로 타오르는 듯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전남 함평 용천사 꽃무릇 / 김정근기자
불갑사 꽃무릇 / 김정근기자
전남 영광 불갑사 꽃무릇 / 김정근기자
꽃무릇이 유독 산사 주변에 많이 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알뿌리에 함유된 독성 성분이 좀과 쥐 등의 해충을 막아주어, 옛사람들은 경전과 탱화를 보관하는 사찰 주변에 일부러 이 꽃을 심었다고 전해진다. 실용의 이유로 심어졌던 꽃이 세월이 흘러 신앙과 정서의 풍경이 된 셈이다. 잎과 꽃이 결코 함께하지 못한다 하여 상사화(相思花)라 불리기도 하는 이 꽃은, 그리움이라는 이름값을 하듯 짧고 강렬하게 피었다가 진다.
전남 함평 용천사 꽃무릇 / 김정근기자
전남 영광 불갑사 꽃무릇/ 김정근기자
카메라를 든 채 오래 머물렀다. 붉음이 절정에 이른 그 며칠, 두 산사는 계절의 경계 위에 나란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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