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버터떡·생크림떡·피자설기…오픈런 부르는 ‘퓨전떡’ 공식있다
올해 최대 히트 떡이라면 단연 피자설기. 설기의 단맛과 피자 소스의 짭조름한, 단짠의 조합이 젊은 입맛을 사로잡았다.
아침 6시30분부터 떡집 앞에 줄을 선다. 유명 빵집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SNS에서는 전국의 떡집을 찾아다니는 이른바 ‘떡지순례’가 새로운 먹거리 놀이로 떠올랐다. 앙버터절편, 과일찹쌀떡, 요거트찹쌀떡에 이어 피자설기까지 등장했다. 한동안 ‘어른들이 먹는 간식’ 정도로 여겨졌던 떡이 가장 빠르게 유행을 받아들이는 디저트 중 하나로 변신한 것이다.
실제로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가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분석한 결과 온라인에서 떡을 ‘디저트’로 언급한 게시물은 전년 동기보다 40% 이상 늘었다. 떡과 함께 많이 언급되는 식감 표현도 ‘쫀득’, ‘쫄깃’, ‘부드러운’이었다. 빵이나 과자와는 다른 씹는 느낌 자체가 떡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tvN은 아예 떡집을 소재로 한 예능 <우주떡집>을 내놓았다. 이은지·미미·이영지·안유진이 직접 떡을 만들고 메뉴를 개발해 손님에게 판매한다. ‘떡에서 요리까지’를 내건 프로그램에서 찰떡을 피자 도우처럼 활용한 메뉴까지 등장한다. 떡이 명절 음식이나 전통문화의 소재가 아니라 젊은 출연자들이 가지고 노는 ‘식재료’가 된 장면은 요즘 떡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일을 통째로 넣었더니…‘한정선’은 떡을 프리미엄 디저트로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곳 가운데 하나가 ‘한정선’이다. 전통적인 찹쌀떡 안에 딸기·키위·귤 같은 생과일을 넣는 데서 시작해 요즘에는 복숭아·블루베리·샤인머스캣 요거트 찹쌀떡과 두바이 찹쌀떡 등으로 종류가 늘었다. 공식 채널 기준 요거트 찹쌀떡은 6000원, 두바이 찹쌀떡은 6500원 수준이다.
가격만 놓고 보면 더 이상 ‘동네 떡집 간식’은 아니다. 대신 크고 선명한 생과일 단면, 얇고 말랑한 찹쌀피, 크림을 층층이 보이게 만든 비주얼로 케이크나 고급 디저트와 경쟁한다.
맛과 식감은 ‘쫀득-부드러움-아삭함’이 순서대로 온다는 데 특징이 있다. 얇고 말랑한 찹쌀피를 먼저 씹으면 안쪽의 요거트 크림이 부드럽게 퍼지고, 마지막에 생과일의 과즙과 산미가 터진다. 일반 팥 찹쌀떡보다 단맛이 무겁지 않고, 차갑게 먹을수록 과일과 크림의 대비가 선명하다. 망고나 복숭아처럼 부드러운 과육은 크림과 자연스럽게 섞이고, 샤인머스캣처럼 단단한 과일은 씹는 재미가 더 강하다. 실제 이용자 후기에서도 말랑한 떡피와 생과일의 신선함, 요거트 계열의 맛에 대한 언급이 많다.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구매 수고비를 별도로 받는 ‘한정선 찹쌀떡 대리구매’ 게시물까지 등장할 정도로 인기다.
‘생크림을 떡 안에?’…익산농협이 먼저 보여준 성공 공식
생크림 찹쌀떡 열풍을 이야기할 때 익산농협 떡방앗간도 빠지지 않는다. 익산농협은 조합원들이 생산한 쌀의 소비를 늘리기 위해 2017년 떡 가공 사업을 시작했고, 2022년 생크림 찹쌀떡을 내놓으면서 큰 반응을 얻었다. 한때 하루 최대 9000개를 생산하고도 매진됐고 온라인 판매 역시 시작하자마자 품절되는 일이 이어졌다. 2023년에는 GS25와 손잡고 판로 확대에 나섰다. 지금은 생크림뿐 아니라 흑임자·초코·딸기·고구마·메론·블루베리 등으로 맛이 다양해졌다.
익산농협 생크림 찹쌀떡의 매력은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식감이다. 살짝 얼어 있을 때 먹으면 바깥 찹쌀피는 탱글하고 쫀득한데 속 크림은 아이스크림처럼 서늘하고 단단하다. 조금 더 해동하면 크림이 부드럽게 녹으면서 떡과 한 덩어리가 된다. 전통적인 팥앙금을 크림으로 바꿨을 뿐인데 떡의 소비 연령과 먹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창억떡 호박인절미. 카스텔라 가루와 호박인절미가 마치 쫀득한 케이크를 먹는 느낌.
광주 가면 냉동 말고 ‘갓 나온 것’…창억떡 호박인절미
퓨전떡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전부터 젊은 층에 떡의 맛을 각인시킨 곳으로는 광주의 ‘창억떡’을 빼놓기 어렵다. 대표 메뉴는 호박인절미. 호박을 넣은 노란 인절미에 콩고물 대신 폭신한 카스텔라 가루를 입혔다. 전국 택배와 냉동 제품으로도 쉽게 살 수 있지만 광주 매장을 찾는 발길은 계속된다. 최근 수도권 매장 개점 당시 수백 번대 대기 번호가 나올 정도로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떡 자체의 단맛은 강하지 않은 편이고 카스텔라의 달콤함이 빈틈을 채운다. 그래서 ‘떡인데 케이크를 먹는 것 같은’ 느낌이 젊은층 입맛을 저격했다.
피자를 빵 대신 백설기에…올해 ‘떡지순례’ 불붙인 피자설기
올해 떡 유행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메뉴는 단연 ‘피자설기’다. 시작점으로 꼽히는 곳은 부산 영도의 ‘영도다리떡방’. 1999년 문을 연 동네 떡집으로, 2세가 가게 운영에 합류하면서 기존 떡에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재료를 결합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피자설기가 올해 봄부터 숏폼을 타고 알려지면서 서울과 전국 전통시장 떡집으로 빠르게 퍼졌다.
기본 피자설기는 백설기 위에 토마토소스와 치즈, 햄이나 페퍼로니, 옥수수 등을 올린다. 이후 포테이토·불고기·콘치즈·콰트로치즈 등 피자집에서 볼 법한 변형 메뉴도 쏟아졌다.
이 떡은 ‘쫀득함’보다는 ‘포슬함’이 핵심이다. 백설기를 베어 물면 쌀알이 곱게 부서지는 듯 포슬포슬하고 담백한데, 곧이어 토마토소스의 새콤달콤함과 녹은 치즈의 짭짤함이 들어온다. 밀가루 피자 도우보다 기름기가 적게 느껴지고, 설기의 은근한 단맛 때문에 피자빵과도 다른 맛이다. 포테이토 버전은 감자의 포슬한 질감까지 겹쳐 한 조각만 먹어도 제법 든든하다. 뉴시스 역시 갓 나온 피자설기를 두고 피자 토핑의 짭짤함 뒤에 담백한 쌀맛이 이어지고, 일반 피자보다 포슬포슬한 식감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사과설기·브라우니떡·치즈떡…“안 어울릴 것 같은 것을 넣어라”
최근 퓨전떡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공식은 단순하다. 젊은 층이 이미 좋아하는 맛을 떡에 넣는 것이다. 서울 마포 ‘오병이어’에서는 사과설기와 딸기설기처럼 과일 풍미를 넣은 설기를 판매한다. 사과설기는 백설기의 포슬하고 담백한 식감에 과일 계열의 산뜻한 단맛을 더하는 방식이라 크림이나 치즈가 부담스러운 사람도 접근하기 쉽다.
빵과 떡의 경계를 흐리는 제품도 있다. 명미당의 브라우니 배꼽떡은 찹쌀 반죽에 초콜릿과 코코아, 버터 등 브라우니를 연상시키는 재료를 섞은 제품이다. 브라우니처럼 묵직하고 꾸덕한 초콜릿 맛이 먼저 오다가 씹을수록 찹쌀 특유의 쫀득함이 살아난다. ‘꾸덕’과 ‘쫀득’이라는 요즘 디저트의 인기 식감을 한입에 겹쳐 놓았다는 점이 재미있다.
숙명여대 인근 ‘행복한떡집’에서는 치즈떡이 인기 메뉴다. 기본적으로 달큰하고 부드러운 떡에 치즈의 짭짤함을 겹친 ‘단짠’ 계열이다. 첫맛은 달콤하고 폭신한데 씹을수록 쫀득해지고 끝에 치즈의 짠맛이 남는다. 다만 치즈 향의 강도에 대해서는 소비자 평가가 다소 엇갈린다. 강렬한 치즈맛보다는 ‘달콤한 떡에 치즈가 포인트로 들어간 맛’에 가깝다는 후기도 있다.
서울 이수의 ‘몰랑이수’는 팥과 버터를 넣은 ‘앙버터떡’으로 젊은 소비자를 공략했다. 쑥·자색고구마·딸기·단호박 등을 넣은 부드러운 떡피 속에 팥과 버터를 채운다. 말랑한 떡이 늘어나는 사이 달콤한 팥과 차갑고 고소한 버터가 녹아들어 앙버터빵보다 훨씬 부드럽고 쫀득한 느낌이다.
왜 하필 지금 ‘떡’일까
첫 번째 이유는 단연 식감이다. 최근 몇 년간 디저트 시장에서는 ‘바삭’ 못지않게 ‘쫀득’이 강력한 키워드가 됐다. 두바이 쫀득 쿠키가 유행했고 모찌, 젤리, 베이글처럼 씹는 재미가 강한 제품들이 연달아 인기를 끌었다. 떡은 별도의 기술을 더하지 않아도 원래부터 쫀득하다. 올해 소셜데이터에서도 떡과 연관된 대표적인 표현이 ‘쫀득’ ‘쫄깃’ ‘부드러운’으로 나타난 이유다.
두 번째는 떡에 MZ 저격 입맛을 넣었다는 것이다. 피자·요거트·생크림·과일·앙버터·초콜릿·두바이식 피스타치오처럼 젊은 세대가 이미 검증한 재료가 떡과 만난다. 처음 먹는 떡이라도 ‘무슨 맛인지’ 예상할 수 있으니 도전하기 쉽다.
세 번째는 다른 디저트에 비해 가격 장벽이 낮다는 점이다. 얼마 전 유행했던 두쫀쿠는 저렴한 곳이 한 알에 7천원대였다. 피자 설기는 영도 본점의 피자설기는 한때 개당 1500원에 판매됐고 서울 전통시장에서도 2000원 수준의 제품이 등장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는 ‘유행한다는데 한번 먹어볼까’ 하는 호기심을 실제 구매로 이어지게 한다.
마지막으로 든든하고 건강할 것 같은 이미지도 작용한다. 빵보다 쌀로 만든 떡에 심리적인 부담을 덜 느끼는 소비자가 있고, 소셜 분석에서도 떡과 관련한 간식 이미지 가운데 ‘건강한’이라는 표현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요즘 떡집의 경쟁은 더 이상 “어느 집 송편이 더 맛있느냐”에만 머물지 않는다. 떡을 즐기는 이들은 맛이 강하지 않은 쌀과 변화무쌍한 덧재료가 합쳐지면 무슨 떡이든 ‘꿀떡’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가장 오래된 한국 디저트가 지금 가장 빠르게 변하는 디저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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