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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31, 2026

“그는 그늘 넓은 느티나무였다”···‘국민 아버지’이자 ‘좋은 어른’ 최불암 하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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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버지상을 대표해 ‘국민 아버지’로 불린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별세했다. 향년 87세. 연합뉴스

한국의 아버지상을 대표해 ‘국민 아버지’로 불린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별세했다. 향년 87세. 연합뉴스

‘국민 아버지’로 불린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우리 곁을 떠났다. 향년 87세.

30일 유족에 따르면 최불암은 전날 밤 10시쯤 서울 강서구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지난해 3월 허리디스크 수술 후 거동이 불편해져 KBS1 <한국인의 밥상>에서 하차한 후 재활했으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1939년생(호적상 1940년생)인 최불암은 인천 제물포구(당시 동구)에서 태어나 서울 중앙고와 서라벌예대·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연출가를 꿈꿨으나 1959년 극단 ‘실험극회’에서 연극 <햄릿>으로 데뷔해 1965년 국립극단 단원으로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967년 서울중앙방송(현 KBS) 특채 6기 탤런트로 뽑혔다. 연기인생 67년 동안 영화와 드라마, 연극 등을 오가며 활약했다.

최불암은 한국형 수사물의 시초 격으로 18년간 방송된 MBC <수사반장>(1971~1989)에서 ‘박영한’ 반장 역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며 ‘국민 배우’로 거듭났다. 박영한 반장은 급속한 산업화·도시화가 초래한 범죄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동료들과 함께 현장을 발로 뛰며 정의감과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수사반장>은 그가 “젊은 시절 열심히 한 작품”이라며 자신의 ‘인생작’으로 수차례 꼽은 작품이다.

그는 2024년 <수사반장>의 프리퀄 드라마 <수사반장 1958> 방영에 맞춰 제작된 MBC 다큐멘터리 <돌아온 레전드 수사반장>에서 “<수사반장>을 본 육영수 여사가 전화를 걸어 담배를 줄이라고 권했다”는 비화를 전했다. 최불암은 이후 “내가 나쁜 행위를 하면 국민들도 따라서 한다”며 행실을 조심히 했다고 한다.

배우 최불암(오른쪽)이 국내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 출연진과 함께 기념 촬영하는 모습. 연합뉴스

배우 최불암(오른쪽)이 국내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 출연진과 함께 기념 촬영하는 모습. 연합뉴스

22년간 방송된 MBC <전원일기>(1980~2002)에서는 ‘양촌리 김 회장’으로 열연하며 ‘국민 아버지’ 반열에 올랐다. 최불암은 2007년 낸 에세이 <인생은 연극이고 인간은 배우라는 오래된 대사에 관하여>(샘터)에서 김 회장을 가리켜 “‘그늘 넓은 느티나무’ 같은 아버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크고 작은 일에 용기와 지혜를 빌려주던 어른의 모습을 드라마에서라도 그려 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배우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을 대신해야 한다”며 진실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을 철학으로 삼았다.

마지막 회 시청률 67.6%를 기록한 MBC <그대 그리고 나>(1997~1998)에서의 마초 ‘캡틴 박’, SBS <식객>(2008)에서의 꽁지머리 숙수 ‘오성근’ 등 연기 변신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2006년 <샘터> 2월호 대담에서 “연기자는 백지 같아야 한다”는 지론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다큐 <돌아온 레전드 수사반장>에서 후배 배우들에게 “국민이 가야 할 길 위에 가시덤불이 있으면 그걸 치우는 게 광대정신”이라며 “배우지만, 광대지만, 사회 비리를(고발하는 데) 힘을 보태고 좋은 일은 따르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2008년 “‘연기자는 사회의식이 수반돼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라고도 했다. <수사반장>의 마지막 회 대사 또한 빈부격차에 따른 사회 갈등 우려를 뜻하는 “빌딩이 높아지면 그림자도 길어진다”였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권유로 잠시 방송계를 떠나 정계에 발을 들이기도 했다. 그는 1992년 통일국민당 전국구 의원(현 비례대표)으로 14대 국회에 입성했다. 15대 총선에서는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영등포구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이후 연기에 집중했다.

최불암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회에 들어간 것은 욕심이 아니라 약속이었다. 도와달라고 해서 나섰다가 국회의원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 보면 정주영 회장은 양촌리 김 회장의 연기 선생님이었다”며 “교육 등에 관심이 많았지만 어디까지나 제 인생의 길은 연기”라고 했다.

한국의 아버지상을 대표해 ‘국민 아버지’로 불린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별세했다. 향년 87세. 연합뉴스

한국의 아버지상을 대표해 ‘국민 아버지’로 불린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별세했다. 향년 87세. 연합뉴스

“파하~” 소리와 함께한 웃음은 최불암의 상징이었다. 많은 방송인들이 그의 웃음을 모사해 개인기로 삼았다. 그가 등장하는 ‘최불암 시리즈’도 1990년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최불암 시리즈’는 당시 신세대가 확산하면서 기성세대를 조롱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며 “최불암은 자신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분노하지 않고 아버지처럼 받아냈다”고 말했다. 최불암은 출판사에서 ‘최불암 시리즈’를 책으로 펴내는 것 또한 허락했다.

그는 연기 인생 막바지까지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2018), 유작이 된 드라마 MBC <수사반장 1958>(2024)에 출연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KBS <한국인의 밥상>도 14년간 진행했다. 지난 5월 방영된 MBC 2부작 다큐 <파하, 최불암입니다>에도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건강 문제로 고사했다.

윤석진 교수는 “최불암은 <수사반장>에서도 범죄자들의 배경이나 동기를 살피며, 범죄의 이면을 보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며 “범죄자를 낙인찍기보다 아버지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최불암은) 산업화·근대화 속에서 묵묵히 자신을 희생했던 전형적인 아버지상이자 시대의 초상”이라며 “시대의 흐름이나 정서를 받아내는, 품이 넓은 배우였다”고도 했다.

초록우산 전국후원회장으로 41년간 활동하며 국내외 소외 아동을 위한 나눔에 앞장선 고 최불암 배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공

초록우산 전국후원회장으로 41년간 활동하며 국내외 소외 아동을 위한 나눔에 앞장선 고 최불암 배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공

고인은 어린이 봉사와 후월활동에 앞장 서기도 했다. 1985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으로 위촉된 후 41년 간 봉사활동을 이어 왔다. 국내 아동복지 지원이 부족하던 1990년대 미주와 유럽을 찾아 해외후원회 구성을 도왔다. 최불암의 활동을 바탕으로 8개국 25개 해외후원회가 마련됐다

2007년 에티오피아, 2014년 우간다, 2015년 케냐 등 해외 아동 지원을 위해 직접 해외에 방문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위기 청소년과 학교 밖 청소년의 자존감 회복과 사회 복귀를 돕는 사단법인 제로캠프를 설립하기도 했다. 최불암은 “진정한 봉사는 비 맞고 있는 사람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라는 후원 철학을 밝혔다.

고인의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위원장은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이 맡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됐다. 유족으로는 아내 김민자씨와 아들 최동녘, 딸 동비씨가 있다. 발인은 11월2일 오전 7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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