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딸 행위, 사회에 큰 해악”…4년 전 연구자들 성명 낸 까닭

광고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윤석열 정부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2022년, 한 의원 딸의 ‘허위 스펙’ 의혹 수사하던 경찰이 요청한 국제형사사법공조(사법공조)를 검찰이 법무부에 전달하지 않고 ‘불송부’(반려)한 사실이 최근 한겨레 보도로 드러났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검찰 결정에 한 의원의 영향력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11일에는 ‘벤슨’을 들고 나왔습니다. 벤슨은 케냐 국적의 대필 전문 작가로 한 의원 딸의 논문을 대필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입니다.
한겨레는 한 의원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 시절이던 2022년 5월 한 의원 딸의 논문 대필 등 ‘허위 스펙’ 의혹을 연속 보도했는데요. 당시 국내 연구자들은 “한 후보자 딸의 행위는 학문 생태계를 교란하고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친다”며 한 의원에게 후보자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최근 논란을 이해하기 위해 이들 연구자가 왜 한 의원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자격을 문제 삼았는지, 4년 전 그때를 다시 돌아봤습니다.
한 의원 딸을 둘러싼 의혹의 출발점은 이른바 ‘엄마 찬스’ 의혹이었습니다. 2022년 5월4일 한겨레는 한 의원 딸 한아무개씨가 2020년 11월 기업 임원인 어머니 지인을 통해 노트북 50대를 한 복지관에 기부한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2022년 당시 한씨는 고등학교 2학년으로 인천의 한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에 한겨레는 “국외 대학 입시에서는 봉사를 포함해 수험생의 사회적 활동을 중요하게 본다”며 한씨의 ‘스펙 쌓기’에 어머니 인맥이 동원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 의원은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해당 기업은 내규에 따라 공정한 심사 절차를 거치고 복지시설 측과 기증 절차를 협의한 후 직접 기업 명의로 기증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문제 될 것이 아니고 장려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광고
한겨레는 이런 ‘엄마 찬스’ 의혹 보도 다음 날, 한씨가 2021년 하반기에 6개의 논문을 작성해 4개 저널에 게재하고 2020~2021년 10개의 영어 전자책을 출판했다고 검증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논문 가운데 3개는 2021년 11월에, 2개는 2021년 12월에 작성됐고 다른 하나도 2021년 하반기에 작성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주제는 ‘반독점법’, ‘국가채무’, ‘코로나19’, ‘분쟁지역 교육 및 의료개혁’ 등으로 다양했고 모든 논문에서 한씨는 ‘독립 연구원’이라는 칭호를 쓰며 단독 저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논문들은 모두 투고의 문턱이 낮은 오픈 액세스 저널에 실렸습니다.
한 의원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3년에 걸쳐 학교 리서치 과제, 고교 대상 에세이 대회 등을 통해 작성한 에세이, 보고서, 리뷰 페이퍼 등을 모아 2021년 11월경 이후 한꺼번에 오픈 액세스 저널이 요구하는 형식에 맞게 각주, 폰트 등을 정리해 업로드한 것”이라며 “대략 4~5페이지 분량으로 해당 ‘오픈 액세스 저널’은 간단한 투고 절차만 거치면 바로 기고가 완료된다”는 설명입니다.
광고
광고
그러면서 “장기간에 걸쳐 직접 작성한 고등학생 수준의 글들을 ‘두 달간 논문 5개, 전자책 4권 썼다’라면서 마치 고등학생이 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들을 한 것처럼 표현한 것은 의도적인 프레임 씌우기용 왜곡 과장이자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논문 대필’ 의혹은 ‘벤슨’이 등장하면서 보다 구체화 됩니다. 사흘 뒤 한겨레는 한씨의 논문 6개 가운데 하나를 벤슨이라는 케냐 출신의 대필 작가가 작성했다는 진술과 관련 정황이 나왔다고 보도했습니다. 문제의 논문은 4쪽짜리 ‘국가 부채가 중요한가-경제이론에 입각한 분석’(Does National Debt Matter?-Analysis Based On the Economic Theories)입니다. 앞서 한씨는 2021년 11월26일 오픈 액세스 학술지(저널) ‘에이비시 리처치 얼러트’(ABC Research Alert)와 2022년 2월2일 사회과학 분야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 ‘에스에스아르엔’(SSRN)에 이 논문을 올린 바 있습니다.
광고
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논문의 문서정보에 ‘지은이’로 이름을 올린 벤슨은 ‘(이 논문을) 당신이 작성한 것이 맞는가’라는 한겨레 질의에 “2021년 11월 초에 했다”며 자신의 컴퓨터 문서 목록을 찍어서 보내왔습니다. 벤슨은 미국에서 운영하는 한 누리집에 자신을 ‘노련한 대필 작가’(experienced ghostwriter)라고 소개했으며, 영국·그리스·인도에 기반을 둔 한 프리랜서 누리집에서는 “6년간 글쓰기와 과외 경험이 있다. 블로그, 기사 작성, 학술연구 작성, 숙제 등을 할 수 있다”며 논문이나 과제를 의뢰받았습니다.

벤슨이 논문을 작성했다고 진술한 데다, 작성 시점도 논문 게재 시기인 2021년 11월로 특정하면서 한 의원의 해명을 둘러싼 의구심도 커졌습니다. 그제야 한 의원은 딸 논문 작성 과정에 ‘외부 조력’이 있었다는 점을 시인했습니다. 다만 해당 글은 논문이 아닌 ‘온라인 첨삭 등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연습용 리포트 수준의 글”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글은) 실제로 입시 등에 사용된 사실이 없으며 사용할 계획도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반면 당시 학계에서는 “학술지에 게재한 이상, 글의 수준과 별개로 논문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입시에 사용할 의도가 없는데 고등학생이 “연습용 리포트 수준의 글”을 쓰면서 별도로 첨삭을 받아 저널이나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에 올릴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국내 연구자들은 한 의원이 딸의 논문 작성·게재와 관련해 내놓은 해명이 학문 생산과 오픈 액세스 운동을 왜곡하는 궤변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새로운 학문 생산체제와 지식공유를 위한 학술단체와 연구자연대,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 지식공유 연구자의집,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전국교수노동조합, 인문학협동조합 등 6개 단체는 그해 5월8일 공동성명을 내어, 한 의원의 오픈 액세스 저널에 대한 인식을 ‘무지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와 함께 한씨의 논문 게재 행위는 학문 생태계를 교란하고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친다고 비판했습니다.
광고
특히 연구자들은 오픈 액세스 저널을 간단한 투고 절차만 거치면 바로 기고가 완료되는 사이트로 폄훼한 점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오픈 액세스 저널은 대형 학술 출판사들이 연구 자료를 독점하고 연구자와 대학도서관 등에 높은 구독료를 강요하는 데 반발해, 이런 폐해를 극복하고자 시작된 오픈 액세스 운동의 일환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연구자들은 “오픈 액세스 저널은 결코 간단한 투고 절차만 거치면 바로 기고가 완료되는 사이트가 아니”라며 “이런 식으로 오픈 액세스 저널을 이해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고 (오픈 액세스 저널 가운데) 국내외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약탈적 학술지의 잘못된 행태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연구자들이 문제 삼은 약탈적 학술지 사례로 지목된 곳이 바로 한씨가 논문을 게재한 ‘에이비시 리서치 얼러트’였습니다. 이 저널이 논문 투고 과정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들지 않고, 비용도 50달러에 불과하다고 광고하는 등 전형적인 ‘약탈적 학술지’의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설명이었습니다. 한씨는 이 저널에 벤슨의 대필 의혹이 제기된 논문 등 총 3편을 게재했습니다.
연구자들은 당시 “이런 학술지와 여기에 돈을 내고 기고하는 행위가 얼마나 학문 생태계를 교란하고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는지 한 후보자와 그 가족들이 아는지 궁금하다”며 “딸의 표절과 ‘논문’ 게재 등의 의혹과 그에 대한 해명에 비춰볼 때 나라의 헌법과 법률을 지키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서 완전히 부적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성명에 참여한 한 교수는 당시 한겨레에 “특권층이 교육을 통한 계급 재생산을 위해 국제적인 학문 시스템을 악용하고 있다”며 “진심으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의 성과가 오히려 평가를 못 받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입시 활용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연구자들의 공동 성명이 나온 이튿날,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습니다. 논문 대필 의혹은 청문회장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청문회장에서도 한 의원은 “(논문이) 입시에 사용된 사실이 전혀 없고 입시에 사용할 계획도 없다”며 ‘정식 논문’이 아니라는 주장을 고수했습니다. ‘허위 스펙’ 쌓기에 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두고서도 “수사를 말하는 것은 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경찰은 한씨의 ‘허위 스펙 의혹’ 등을 둘러싼 여러 의혹에 대해 수사에 나섰고, 이듬해인 2023년 12월28일 한 의원 부부와 한씨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앞서 2022년 5월8일 민생경제연구소·개혁국민운동본부 등 시민단체는 한 의원 부부와 한씨가 공모해 △논문 대필 △국외 웹사이트 에세이 표절 △봉사활동 시간 ‘2만 시간’으로 부풀려 봉사상 등 수상 △전문개발자가 제작한 앱을 직접 제작한 것처럼 제출 등을 실행해 공무집행방해 및 업무방해 혐의가 있다며 경찰에 고발장을 낸 바 있습니다.
불송치 이유서를 보면, 경찰은 국외 기관들의 ‘미응답’을 불송치의 주요 근거로 삼았는데요. 에이비시 리서치 저널의 경우 ‘구체적인 심사 규정을 보내달라’는 요청에 답이 없었기 때문에 경찰은 ‘미회신=심사 규정 부존재’로 결론냈다고 합니다.
특히 2022년 11월21일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서울중앙지검에 사법공조를 요청했는데, 이는 여러 의혹 가운데 한씨가 다른 사람의 수학 문제 등을 이용해 만든 전자책을 미국 아마존에서 0.99달러에 판매했다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2일 서울중앙지검은 이 요청을 미국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고 경찰에 통보합니다. 경찰에서 요청한 서법공조를 대검찰청과 법무부로 전달하기도 전에 검찰이 자체 중단한 것인데, 이는 이례적인 일로 평가됩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 의원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한 의원은 2022년 5월17일 취임해 2023년 12월21일 퇴임할 때까지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했습니다. 한씨는 미국 엠아이티(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 입학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시 ‘벤슨’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박성준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1일 서면브리핑에서 “한동훈은 4년이 지나도록 벤슨의 정체에 대해 비겁한 침묵과 구차한 변명(을 이어올)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박 대변인은 4년 전 한 의원의 해명을 언급하며 “비정상적인 스펙 쌓기가 단순 ‘습작’이라니? 궁색한 핑계로 피해 갈 수 없다”며 “남에게 들이대던 잣대가 제 가족 앞에서만 멈춘다면, 그것은 공정이 아니라 특권”이라고 했습니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