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구 10월 항쟁’ 유족의 집념…15년간 9차례 재판 끝에 국가배상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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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6월 경북 칠곡군 지천면에 살던 정아무개(당시 27살)씨는 칠곡경찰서로 끌려갔다. 경찰은 대구 철도 화물 노동자였던 정씨 형이 ‘대구 10월 사건’ 관련자라고 했다. 사건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경찰은 정씨와 이웃 마을 주민들을 칠곡군 석적읍 유학산 골짜기로 데려가 사살했다. 그에겐 아내와 어린 아들 하나가 있었고, 아내 뱃속엔 둘째 아들이 있었다.
대구 10월 항쟁은 1946년 9~10월 미군정의 친일 관리 고용과 토지개혁 지연, 강압적 식량 공출에 항의하는 노동자와 농민 등이 파업과 시위를 벌인 사건이다. 미군정 휘하 경찰이 대구역 등지에서 발포했고, 시위가 확산하자 10월2일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강경 진압이 이뤄졌다. 경찰은 7500여명을 붙잡아 가혹 행위 등을 하고 일부는 사살했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60명 이상이 경찰과 군에 의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정씨의 둘째 아들 정도곤씨는 2011년, 정씨의 아내(도곤씨 어머니)는 2012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각각 제기했다. 둘은 1·2심에서 승소했으나 대법원에서 도곤씨는 패소, 정씨 아내는 승소했다. 당시 도곤씨 재판부는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서에 기록된 대구 10월 항쟁 희생자 명단에는 정씨 아버지 이름이 올라 있지 않고, 결정서 첨부 자료의 ‘희생 거명자(이름이 언급된 사람들)’ 명단에 이름이 있기 때문에 대구 10월 항쟁 희생자로 인정할 수 없다. 또 소멸시효(손해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 행위 발생일로부터 10년)가 지났다”고 했다. 소송 원인이 된 피살자는 한명인데 다른 결과가 나온 이상한 판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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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곤씨는 재심을 청구했으나 1~3심 모두 기각당했다. 포기하지 않고 3기 진실화해위에 다시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3기 진실화해위는 2024년 7월 도곤씨 아버지를 10월 항쟁 희생자로 인정했다. 같은 해 9월 서울중앙지법에 다시 대한민국을 상대로 2억5천만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2심은 또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앞선 소송에서 패소한 만큼 다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도곤씨는 대법원에 다시 상고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지난 8일 원고 승소 취지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지금까지 심급별로 9개 법원을 오간 끝에 나온 결과다. 처음 소송을 제기하고 15년 만에 승소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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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개정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 도곤씨의 최종 승소를 이끈 계기가 됐다. 개정법은 ‘진실화해위가 국가 폭력 희생자로 인정한 사람은 배상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 소멸시효를 이유로 기각 확정판결을 받았을 때는 법 개정일로부터 3년 안에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도곤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15년이나 걸렸다. 다시는 나 같은 억울한 사례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15년 동안 도곤씨를 변론한 법무법인 민심의 변영철 변호사는 “희생자는 아버지이자 남편인데 대법원이 다르게 판결하는 바람에 유족한테 오랜 세월 고통을 줬다. 아홉차례 소송 끝에 최종 승소한 보기 드문 사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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