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 배처럼 부푼 따스한 벽…우순옥의 개념미술을 추억하다

광고
미술관 전시장 벽이 산모의 배처럼 둥그렇게 부풀어 올랐다. 어루만지면 따스한 사람의 체온이 와닿는다. 안에 발열장치를 설치해 온기가 스며든 벽 위에는 은은한 조명등 두개가 사람의 두 눈처럼 이미지를 비춘다. 관객들은 이런 벽을 손으로 만지거나 몸을 대며 엄마 품 같은 촉감의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이화여대 서양화과 교수를 지낸 작고 작가 우순옥(1958~2023)의 회고전 ‘예술은 이미 당신의 마음 속에 있다’가 열리고 있는 서울 성곡미술관 본관 2층 안쪽에 가면 색다른 전시 풍경을 만나게 된다. 차갑고 냉혹한 ‘백색공간’으로 흔히 떠올리곤 하는 미술관과 갤러리의 전시장 벽면을 작가는 생명의 기운을 직감하게 하는 온기 서린 공간으로 바꾸는 역설의 상상력을 펼쳐낸다. 작가는 40여년 전 어느 여름날 저녁 서울 망우리 공동묘지의 꼭대기에 올라가 아래 망자들의 무덤 공간과 멀리 한강 너머 산 자들의 동네 불빛을 바라보며 경계를 넘는 감동을 받았던 체험에서 이 작품이 태어났다고 작업노트에 기록했다. 망자들의 무덤 봉분이 자잘한 능선처럼 빚어낸 동그란 윤곽선은 생명을 품은 임산부의 배 모양과 연결된다는 상상력이 발동했다. 이는 곧 죽음과 단절, 차가움을 뜻하는 벽이 거꾸로 인간의 온도를 지닌 유기적 모양의 사물로 변모할 수 있다는 구상으로 이어졌다. 2003년 호암갤러리 전시에 ‘따스한 벽’을 설치해 생각을 실현시킨 작가는 이후 이 작품을 ‘나의 집’ ‘나의 예술적 근원’이라고 불렀다.
새달 3일까지 열리는 전시회는 일상 사물과 물질, 공간을 무대로 세상 만물이 변모하고 사라지는 순환의 섭리, 사물과 장소가 시간 속에서 사람의 기억과 맺는 관계 등을 조명했던 개념적 예술가의 발자취를 담는다. 1980년대 초기 작업부터 작고 직전까지의 회화, 드로잉, 설치물, 영상 작업 등이 망라돼 나왔다. 대개는 관객과 작가의 실제 경험과 성찰 속에서 작품이 끊임없이 형성된다는 특유의 깨달음을 내장한 작품들이다. 몸이 공간에 표현하는 의지·사유·비움의 몸짓을 사진으로 찍은 ‘물질-비물질’ 연작과 전등갓, 거울, 비누, 장난감, 빗 등 일상에서 찾아낸 108개 사물을 바닥의 구획선 위에 배치해 불가의 백팔번뇌처럼 작가와 관객의 서로 다른 기억과 시간의 업을 떠올리게 한 ‘아주 작은 집’(2004~2006), 뜨겁게 달궈진 전기 접시 위로 물방울을 떨어뜨려 허연 연기 같은 수증기로 기화시키며 주변의 철판 위에 흔적을 남기게 한 ‘연기드로잉’(2000)이 이런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광고

퍼포먼스 동영상을 보면, 관념에 매몰되지 않은 현실 수행자로서의 면모가 도드라져 보인다. 서울 성북동 대로변 낡은 건물 창문에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다’란 문장의 글자들을 작가가 일일이 붙이는 퍼포먼스 동영상(2007)이나 작업실의 화초와 작품들 사이를 거닐며 불교의 선시나 게송을 낭송하는 장면을 담은 전시 제목과 같은 동영상 작품(2011)에서 존재의 드러냄을 기다리는 과정으로 예술을 이해한 그의 사유를 짐작하게 된다.
작가는 1985년부터 7년간 독일 뒤셀도르프쿤스트아카데미에서 생각과 의도를 작법보다 중시하는 개념적 미술을 공부했다. 차갑고 딱딱한 서구적 개념미술의 지시적 속성을 벗어나 세상과 사람의 시공간 속에 무한생성하는 과정의 산물로 작품을 인식하고, 이런 경로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꾸준히 창작해왔다는 점에서 한국적 개념미술의 지평을 새롭게 닦은 대가로 평가받는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