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어가는 의사 권력에 X···용역 의사의 ‘시원한 메스질’
SBS 드라마 <닥터 X : 하얀 마피아의 시대>의 주인공 ‘계수정’(김지원)은 부패한 병원에 맞서는 독특한 능력자다. SBS 제공
“저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SBS 금토드라마 <닥터 X : 하얀 마피아의 시대>(닥터X)의 주인공 ‘계수정’(김지원)이 자주 하는 말이다. 구서대 서남병원에서 일하는 수정은 정해진 근무시간 외의 잡무도, 사적인 잡담부터 회식에 이르는 친목도모 활동도 “하지 않습니다”라고 단호히 말한다. 당돌한 선언에도 그를 무시할 수 없는 건 ‘수술을 실패하지 않는다’는 장담, 그리고 말을 뒷받침하는 실력 때문이다.
<닥터X>는 병원 내 권력관계에서 자유로운 ‘용역 의사’라는 설정을 내세워 의료계의 폐부를 거침없이 비판하며 시청률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9일 방영된 1회부터 전국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 11.4%를 기록하더니 4회 시청률은 18.5%에 이르렀다. 방송과 동시에 공개 중인 넷플릭스에서는 10월5~11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비영어권 쇼 1위에 올랐다.
SBS 드라마 <닥터 X : 하얀 마피아의 시대>의 주인공 ‘계수정’(김지원)은 부패한 병원에 맞서는 독특한 능력자다. SBS 제공
의료계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는 김지원의 ‘사이다 연기’가 시청률을 견인하고 있다. 수정은 쿠바 등 외국에서 의대를 나오고 해외에서 의료 봉사를 하며 지냈지만, 의사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지는 않았다. 대학병원 내 외부자인 수정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할 말을 다 한다. “돈 잘 벌고 출세하려고 공부만 한 인간들, 윤리고 신념이고 생각 없이 그저 멍청하게 똑똑한 인간들… 너네 진짜 후져.”
“생명을 다루는 의료 행위조차 돈과 권력의 논리에 의해 굴러가는 이 하얀 마피아의 시대”라는 드라마 속 내레이션이 보여주듯, <닥터X>는 권력화된 의료계를 정면 비판한다. 의사 출신 시장이 선출되고, 의사들의 친목회인 ‘목련회’가 의사들의 정치권력을 대변한다.
수정이 일하는 대학병원은 무능하고 부패한 이들의 공간으로 묘사된다. 교수들은 요직으로 가기 위해 윗사람에게 아부하고, 학회나 회식 참석에는 공을 들이지만 어려운 수술은 망설인다. 사회적으로 손가락질을 받는 병원의 VIP 후원자에게는 쩔쩔맨다. 응급 환자가 발생했는데도 병원 내 고위급 의사들과 경영진은 수술이 실패할 경우 병원의 이미지 실추가 우려된다며, 골든타임을 지나고 있는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자고 재촉한다.
SBS 드라마 <닥터 X : 하얀 마피아의 시대>의 배경인 구서대 서남병원 속 인물들은 무능력하게 그려진다. SBS 제공
수정은 이들과 대척점에 있다.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실력으로 승부한다. 다른 의사들이 자리를 비우거나 수술을 망설일 때 홀로 어려운 수술을 집도해 위독한 환자를 살리며 병원의 ‘해결사’ 역할을 한다. 그런데도 다른 의사들은 그를 ‘개수작’이라 부르며 피한다. 외과 의사인 수정은 응급실로 밀려난다.
한국 의료계 이슈를 반영한 ‘용역 의사’라는 설정이 흥미롭다. 수정은 ‘장희숙 의사용역소개소’를 통해 병원에 소개됐다. 의대생 증원 문제로 촉발된 의료 파업과 의사들의 줄사직 여파로 병원이 겪는 인력난이 이같은 설정에 개연성을 더한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응급실 인력 부족, 낮은 수가·고위험 수술을 기피하는 의사들, 제약회사 직원에 대한 의사들의 갑질 등의 현실적 문제가 매회 등장한다.
의뭉스러워 보이는 인물들은 극의 전개를 궁금하게 만든다. 원장 ‘부승권’(손현주)은 의료계의 부조리에 비판적이며, 병원에서 과로로 쓰러진 응급구조사가 수술 지연으로 사망한 사건에 대한 병원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등 이례적 행보를 보이지만, 병원에 문제가 생기면 수정에게 덮어씌워 내쫓으면 된다고 여긴다. 수정을 병원에 소개한 ‘장희숙’(이정은)은 의료계를 비판하지만, 한편으로는 병원의 약점을 잡아 큰돈을 벌 궁리를 한다. 수정의 과거도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4회에서는 환자의 장기에 자신의 이니셜을 새겨넣은 의사 사례가 등장해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기며 최고 시청률 20.8%를 기록하기도 했다.
SBS 드라마 <닥터 X : 하얀 마피아의 시대>의 배경인 구서대 서남병원 속 의사들은 주인공 ‘계수정’을 미워한다. SBS 제공
<닥터 X>는 능력이 출중한 주인공과 병원 간의 뚜렷한 선악 구도를 형성하며 기존 의학 드라마와 차별화를 꽤한다. 기존 드라마가 병마와의 사투나 의사로서의 고뇌, 사내 정치 속 대결 구도 등을 주로 그렸다면 <닥터 X>는 부패한 병원과 외부에서 온 주인공이 맞서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원작인 일본 드라마 <닥터 X: 외과의 다이몬 미치코>가 7개 시즌이 방영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데다, 2024년 tvN <눈물의 여왕> 이후 입지를 다진 배우 김지원이 원톱 주연으로 나서 시작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드라마평론가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시민들이 ‘강자’인 의료계에 느끼는 답답함을, ‘약자’ 위치인 비정규직을 자발적으로 택한 주인공이 뚫어주는 모습이 인기의 요인”이라며 “업무 외의 일로 회사와 얽히기 싫어하는 젊은 세대가, 시원하게 할 말 다 하면서 병원에 구속되지 않는 주인공에 호응하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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