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알레르기 없는데 왜?” 부침개 먹고 호흡곤란 온 일본인…원인은 따로 있었다
전통시장 풍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밀가루 알레르기가 없는데 전을 먹은 뒤 입술이 붓고 숨이 가빠진다면? 밀가루나 달걀, 새우가 아니라 부침가루에 숨어 있던 진드기가 원인일 수 있다. 개봉한 밀가루를 상온에 오래 보관하면 진드기가 번식할 수 있는데, 이 진드기의 알레르기 유발 물질은 조리 과정에서 완전히 제거되지 않을 수 있다. 평소 먹던 음식이라도 재료의 보관 상태에 따라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2020년 국제 학술지 ‘호흡기 의학 사례 보고’에는 부침개를 먹고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한 15세 일본 여성 청소년 사례가 실렸다. 아나필락시스는 특정 물질에 노출된 뒤 전신에 급격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는 것으로, 호흡곤란이나 혈압 저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응급 상황이다.
사례로 보고된 해당 청소년은 집에서 만든 부침개를 먹은 직후 두드러기와 피부 홍조, 목의 불편감, 호흡곤란, 심한 쌕쌕거림을 보였다. 부침개에는 달걀과 새우, 부추가 들어갔지만 이들 식품을 이전에 먹었을 때는 문제가 없었다. 검사 결과 밀과 달걀, 새우 등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은 확인되지 않았다. 대신 부침가루를 현미경으로 살펴보니 다수의 살아 있는 진드기가 발견됐다. 연구진은 진드기에 오염된 부침가루가 증상의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이처럼 진드기에 오염된 밀가루나 가루 제품을 먹은 뒤 발생하는 알레르기 반응은 ‘경구 진드기 아나필락시스’라고 불린다. 팬케이크를 먹고 발생한 사례가 알려지면서 ‘팬케이크 증후군’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팬케이크뿐 아니라 부침개처럼 밀가루를 섞어 만드는 음식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진드기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밀가루나 부침가루에 벌레가 보이지 않고 냄새나 색깔에 이상이 없어도 진드기에 오염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에서 보고된 관련 사례 36건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34건이 개봉한 뒤 상온에 수개월간 보관한 오코노미야키용 또는 타코야키용 가루 제품을 사용한 뒤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진드기에 오염된 조미 밀가루 제품이 경구 진드기 아나필락시스의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전을 충분히 익혀 먹으면 괜찮을까. 진드기 자체는 가열 과정에서 죽을 수 있지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까지 반드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구 진드기 아나필락시스가 가열한 음식을 먹은 뒤에도 발생하는 이유다. 세계알레르기기구에 실린 관련 논문도 조리된 음식으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열에 강한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관여할 가능성을 설명했다. 따라서 가열 여부에 기대기보다 애초에 진드기가 번식하지 않도록 가루 제품을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집먼지진드기 알레르기나 천식, 아토피 질환이 있는 사람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진드기 오염 식품을 먹었다고 모든 사람에게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관련 연구에서는 아토피 질환이 경구 진드기 아나필락시스의 위험 요인으로 거론됐다. 평소 밀가루 음식을 문제없이 먹었다고 해도 갑작스러운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예방의 기본은 개봉한 밀가루와 부침가루, 튀김가루 등을 상온에 오래 두지 않는 것이다. 제품 포장에 적힌 보관 방법을 확인하고, 개봉 후에는 밀폐해 냉장 보관하는 것이 좋다. 관련 연구에서도 개봉한 밀가루를 냉장고에 보관하면 진드기 번식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권고했다. 대용량 제품을 오래 두고 쓰기보다는 필요한 만큼 구매해 가급적 빨리 소비하는 편이 안전하다. 오래 보관한 가루 제품은 아깝더라도 상태를 확인하고, 보관 상태가 의심스럽다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음식뿐 아니라 화장품도 예상치 못한 알레르기 원인이 될 수 있다. 립스틱을 바른 뒤 입술이 붓거나 입 주변에 가려운 발진이 생겼다면 색을 내는 성분을 포함해 제품의 성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부 화장품에 쓰이는 붉은색 색소 ‘카민’은 코치닐이라는 곤충에서 얻는다. 카민은 식품과 화장품 등에 사용되며, 이 성분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2009년 학술지 ‘더마타이티스’에는 카민이 든 아이섀도와 립스틱을 사용한 뒤 6~24시간 안에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이 발생한 28세 여성의 사례가 보고됐다. 연구진은 카민이 화장품에서 나타나는 접촉성 알레르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부침가루 속 진드기와 립스틱 속 카민은 서로 다른 알레르기 원인이다. 두 사례가 보여주는 공통점은 원인을 음식이나 화장품 자체로만 생각하면 실제 유발 물질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 음식을 먹거나 제품을 사용한 뒤 반복적으로 증상이 나타난다면 사용한 재료와 보관 상태, 제품 성분을 기록해 의료진에게 알리는 것이 원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입술이 붓는 증상만으로 원인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음식 섭취 후 입술이나 혀가 붓고 목이 조이는 느낌, 호흡곤란, 심한 어지럼증 등이 함께 나타난다면 아나필락시스 가능성이 있으므로 즉시 119에 연락해 응급진료를 받아야 한다. 알레르기 반응이 의심될 때는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음식을 다시 먹거나 의심되는 제품을 일부러 재사용해서는 안 된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